“문 닫으라는 거냐”... 정부 산재 근절 강공에 건설업계 ‘패닉’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건설 산업재해 근절 강공 드라이브에 건설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안전 강화와 산재 예방이라는 정부의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안 그래도 업황이 좋지 않아 건설사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건설현장의 복합적 특성상 건설사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도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사고 없는 일터, 안전 대한민국’을 위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사업장은 3년간 고용이 제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질병·부상이 발생한 경우에는 1년간 외국인 근로자 고용을 제한한다. 고용 제한 단위도 현장 단위에서 사업주 단위로 변경해 산업재해가 발생하거나 불법체류자를 고용할 경우 제재 강도를 한층 높였다. 건설업계는 이러한 외국인 근로자 관련 대책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이번 대책이 시행되면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은 국내 건설 공사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건설현장 근로자 가운데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최근 발간한 ‘건설현장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현장 전체 근로자 156만400명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가 22만9541명(14.7%)을 차지했다. 건설업에서 일한 외국인 근로자는 2020년(11.8%) 이후 매년 증가해 4년 만에 3%포인트 가까이 늘어났다. 고령화와 내국인 기피 속에 외국인 근로자 비중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처럼 외국인 인력 비중이 큰 상태에서 고용제한이 3년간 이어지면 소규모 건설사는 폐업 위기에 직면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현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외국인 근로자 사망사고라도 나면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릴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는 공사 기간 연장, 공사비 상승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현장은 만성적인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대책은 현재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기조와도 배치되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건설업계는 선분양(先分讓) 제한 규제에 관해서도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사망사고로 영업정지 부과 시 선분양 제한 기간 및 분양 시점 등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세부 방안을 논의 중으로 이르면 하반기에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선분양은 건설사가 아파트를 짓기 전에 분양하고 소비자가 공사 기간 2~3년 동안 내는 계약금·중도금 등 분양대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제도다. 건설사가 대규모 자금을 직접 조달하지 않아도 공사비를 마련할 수 있다. 선분양으로 미리 입주자를 확보해 아파트 건설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미분양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선분양 제한 규제에 걸리는 건설사는 아파트 자금을 대출이나 채권 발행을 통해 직접 마련해야 해 영업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선 사망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건설현장의 복합적 특성상 건설사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사고를 막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업계가 지금보다 더욱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근본 원인과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뒤따라야 재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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