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불씨들이 모여 완연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될 수 있을까. 2025시즌 막바지 중상위권 순위권 살얼음판 경쟁 중인 프로야구 KT가 가을야구 진출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스포트라이트에서 비켜 있던 선수들이 힘을 보태는 중이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팀 최고 동력 중 하나인 불펜, 특히 필승조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마무리 박영현은 전반기 2.60을 마크했던 평균자책점이 후반기 한정 5.60까지 치솟았다. 그럼에도 KT는 크게 무너지는 일 없이 5할 승률을 유지, 가을야구 안정권을 사수하고 있다.
1년 내내 야속하기만 했던 타선이 조금씩 부침을 털어낸다. 9월 들어 점수 쟁탈전 구도에서도 곧잘 따라가거나 심지어 이겨내는 모습이다. 12일 기준 이달 5경기에서 3승2패, 경기당 최소 4점, 평균 7점을 올렸다.
‘약점’이라 불리던 포지션에서도 뜻밖의 활약이 이어졌다. 지난 11일 잠실 LG전 6-4 역전승을 이끈 내야수 권동진이 그중 한 명이다. 데뷔 5년 차인 올 시즌 팀의 새 주전 유격수로 우뚝 섰다. 자유계약(FA)으로 떠난 심우준(한화)의 공백을 메웠고, 7월 올스타전에도 출전하는 등 연착륙을 알리고 있다.

수비에 강점이 있는 유형이다. 타석에선 아쉬움이 있다. 실제로 KT의 유격수 포지션 OPS(출루율+장타율)는 0.646으로 10개 구단 중 9위다. 권동진은 8월 이후 27경기서 타율 0.175에 그쳤다.
타격으로도 ‘주역’이 될 수 있다. 거함을 무너뜨리는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리그 선두 LG 상대로 경기 후반 대주자로 중도 투입된 권동진은 이어진 8회 1사 1, 2루에서 우익수 3루타를 때려 역전타를 써냈다.
지난 2021년 4월18일 수원 키움전에서 1군 첫발을 뗐고, 이후 4년여 만에 나온 데뷔 후 첫 결승타다. KT는 이날 승리로 4위 자리를 지켰다.
역전의 토대를 마련한 벤치의 판단도 좋았다. 이날 7회 대타 강백호의 추격 적시타(2-4)를 빚어낸 게 대표적이다. 9월 이후 대타 성적만 놓고 보면 이호연(5타수 3안타)과 강백호(2타수 2안타), 문상철(2타수 1안타) 등이 번뜩였다.
올 시즌 초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전반기 기준 대타 성공률은 0.177로 리그 9위였다. 후반기(0.313) 들어 바짝 끌어올렸다. 이 시점 KT보다 대타 성공률이 높은 팀은 KIA(0.359) 한 팀뿐일 정도다.

외야수 안치영은 앞서 9일 수원 두산전(8-1)에서 결승타를 때려내며 프로 무대 첫 손맛을 봤다. 2017년 데뷔 이후 9년 만에 나온 데뷔포를 역전 투런(2-1)으로 장식한 것. KT 외야는 올 시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익수 안현민을 빼곤 초토화다.
멜 로하스 주니어의 대체 선수로 합류한 앤드류 스티븐슨은 여전히 기대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OPS가 0.713에 머물렀다.
설상가상 배정대와 김민혁은 부상 이탈이다. 이에 최근 출전 빈도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안치영이 좋은 타격감을 자랑 중이다. 9월 5경기서 정확히 5할 타율(10타수 5안타)이다.
KT는 올 시즌 득점을 포함, 각종 타격 지표에서 하위권을 전전했다. 불펜이 그동안 다소 강한 업무 강도를 수행해야 했던 이유다. 적은 점수 차를 지키기 위해, 또 추격 상황을 위해 뒷문의 체력 소모가 많았다는 진단도 뒤따랐다.

이젠 바톤이 넘어간 격이다. 정규리그 종료가 임박한 시점, 타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팀 잔루는 시즌 전체 3위(1016개)로 빈공에 시달렸지만, 8월 이후만 따지면 224개로 이 기간 공동 8위다. 마법사의 집중력이 살아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대로 만족하기엔 풀지 못한 갈증이 아직 수두룩하다. 타선 곳곳에서 다양한 길을 열어줄, 또 다른 ‘난세 영웅’의 등장이 필요하다. 중심타선에게만 늘 승부처를 맡긴 뒤 해답을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예상치 못한 얼굴들도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권동진과 안치영이 보여줬다. KT가 무뎠던 방망이를 반격의 무기로 삼아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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