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2세 스타, 한국선 안통한다?

미국 대중문화지 할리우드리포터가 8월29일(현지시간) ‘네포: 차세대(Nepo: The Next Generation).’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다. 홈페이지 캡처

미국 대중문화지 할리우드리포터에서 8월29일(현지시간)자로 흥미로운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네포: 차세대(Nepo: The Next Generation).’ 여기서 네포란 네포티즘(nepotism), 즉 족벌주의 내지 친족중용주의 정도로 해석되는 단어다. 대중문화계에선 이미 업계 스타인 부모를 둔 자녀들이 쉽게 업계에 진출해 주목받고 스타덤에 오르기도 쉬운 구조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2세 연예인’들 얘기다. 기사는 그렇게 마야 호크, 잭 퀘이드, 조이 크래비츠, 존 데이비드 워 싱턴, 마거릿 퀄리, 다코타 존슨 등 근래 할리우드서 주목받는 젊은 스타들 상당수가 2세 연예인, ‘네포-베이비(nepo-baby)’라 지적한다.

 

이런 현상은 물론 할리우드서 과거에도 있었다. 그중 코폴라 집안, 폰다 집안, 배리모어 집안 등은 3대까지 내려오는 스타덤을 자랑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2세 스타덤 등극이 빈번하고, 또 당연시되는 분위기까진 아니었다. 오히려 유명한 성(姓)이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부담스러운 면이 많다고 여겨 니콜라스 케이지나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처럼 부모의 성 내지 활동 성을 따르지 않는 2세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유명한 성이 확실한 자산으로서 탄탄대로를 열어주는 만능열쇠처럼 돌변했단 것. 위 기사는 이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원인을 든다.

 

먼저, OTT 등 뉴미디어 등장으로 미디어 콘텐츠가 양적 대폭발하면서 ‘인지도가 곧 화폐’인 현상을 낳게 됐단 점이다. 이런 현상은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고도화되는 경향이 확인 되며, 유명한 성(姓)을 지닌 2세, 3세들은 그만큼 시작 단계부터 선호되는 경향이 짙어질 수밖에 없다. 유명한 성 자체가 일종의 IP가 되니 말이다. 그다음, 저 콘텐츠 홍수 속 경계심이 강해진 소비자들은 유명한 부모의 성에서 모종의 안정감을 느낀단 점을 든다.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던 평론계 등의 권위가 약화되면서 한층 경계심이 강화된 소비자들에 유명한 업계 부모성은 ‘재능을 보장하진 않지만, 그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많다. 2세들은 부모 영향으로 성장 과정에서 이미 업계에 대한 친숙도 및 각종 노하우, 절차, 행동거지 등에 대해 사전 학습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능숙하게 업계 진입하게 된단 점도 든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대중이 느끼는 ‘필연성’ 부분을 언급한 점이다. 대중 자체가 ‘부모의 피를 이어받아 대중문화계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 개념을 즐긴단 얘기다. ‘부모를 빼닮은 자식’ 코드는 일반 대중도 대부분 흐뭇하게 여기는 요소이기에, 저 2세들의 업계 진출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로 흐뭇한 필연성의 현장을 지켜본단 기분을 낳아 호감도를 높이기 좋단 것.

 

모두 그럴성싶은 얘기들이다. 그런데 이 같은 흐름이 동일하게 뉴미디어 폭발을 맞이하는 한국선 그리 빈번하지 않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덕화, 전영록, 독고영재, 허준호, 최민수 등이 등장했던 1970~80년대가 ‘네포-베이비’ 열풍이 심했던 시절이고, 대략 김주혁, 송일국, 하정우 정도까지가 2세 연예인 전성기 ‘끝물’이 아니었느냐는 것. 그러고 보면 위 할리우드 2세 스타들은 지난 10년래 주목받은 이들인 반면, 한국서 지난 10년래 스타덤에 오른 2세들은 배우 쪽에선 찾아보기 힘들고 아이돌계에서나 몇몇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진입을 시도한 이들은 적지 않아도 미국처럼 쉽게 스타덤에 오르진 못한다.

 

이 같은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크게 둘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한국 대중문화 산업은 지난 20여 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통에 산업구조 자체가 너무나도 크게 바뀌었단 점을 들 수 있다. 반세기 전부터 민영방송과 케이블TV 등이 방송계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과 달리 한국은 1990년대 중후반은 돼서야 그런 추세가 처음 등장, 결국 2010년대 넘어가서야 비로소 지상파 공영방송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구조도 달라지고, 상업적 마인드도 달라졌으며, 일이 진행되는 방식도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인 산업화 과정을 겪었다. 그러니 부모 세대의 각종 노하우와 인맥 물려주기가 큰 의미 없어졌단 지적이다.

 

더 큰 부분은 대중문화 소비층의 ‘물갈이’가 훨씬 심한 환경이란 점이다. 소위 ‘트렌드의 민족’이란 한국 대중 성향에 걸맞게 소비자들 트렌드 속도가 대단히 빠르고, 그만큼 엔터테이너 세대교체 요구도 강하며, 그런 극단적 트렌드 추구 성향에 준해 과거 콘텐츠나 엔터테이너들은 거의 돌아보지 않으려는 10~30대 대중문화 주 소비층 분위기가 저 ‘2세 효과’를 가로막는 단 것. 쉽게, 유명 엔터테이너 부모를 뒀다 해도 막상 10~30대 주 소비층은 그 부모에 대한 애착도 정보도 거의 없다 보니 이런저런 효과도 발생하기 힘들다. 그러니 2세 캐스팅은 별 필요도 없고 득도 없단 얘기.

 

반대로, 부모가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주 소비층이 가깝게 여기는 스타여도 문제가 생기리란 반응이 많다.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는 ‘금수저’ 인상이 너무 강해져 요즘처럼 금수저들 ‘깔려있는 양탄자’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는 시점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으리란 예상이 다. 데뷔 시점이면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사소한 실력 부족 요소들까지도 매의 눈으로 관찰 돼 그대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일이 빈번해질 수 있다. 결국 부모가 너무 유명해도 문제, 주 소비층엔 잊혀져가는 경우라도 문제긴 마찬가지란 얘기다.

 

위 할리우드리포터 기사는 결국, 지금처럼 ‘네포-베이비’들이 득세하는 환경이라면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할리우드의 ‘아메리칸드림’ 신화도 깨지고 대중의 환멸이 일 수 있단 점을 지적한다. 과거 ‘록키’ 한 편으로 인생을 바꾼 실베스터 스탤론 등의 아메리칸드림 신화 말이다. 그런데 한국 입장에선 또 다른 측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2세, 3세들이 점차 유리해지는 환경이 된다면, 다른 이들의 경우, 안 그래도 진입장벽이 높아 진입 자체부터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언급되는 업계인데 그나마도 들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 결국 지원 인력 자체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다. 어찌 됐든 지금은 일단 ‘딴 나라 얘기’로서 넘겨버릴 수 있지만, 세계적 흐름 자체는 계속 주시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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