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케묵은 기록, 이제 넘겨줄 때도 됐습니다. 매번 (정)수빈이 만나면 ‘언제 깰 거냐’고 물어봐요(웃음).”
누구도 깨지 못할 것 같던 대기록에 도전장이 날아든 지금, 그의 마음에는 아쉬움보다 뿌듯함이 더 크다. 프로야구 통산 3루타 100개의 주인공인 전준호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담담했다. 오히려 “영원한 기록은 없다”며 “후배들이 깨줘야 야구가 발전할 수 있다”고 활짝 미소 짓는다.
외야수 정수빈(두산)이 그의 기록을 추격하고 있다. 정수빈은 지난 19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서 열린 한화전에 1번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팀의 6-5 승리를 이끌었다. 9회 결승타 포함 4타수 2안타 3타점 맹활약을 펼쳤고, 8회 초엔 큼지막한 장타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2점 차(2-4) 열세 속 1사 2, 3루에서 한화 선발 투수 라이언 와이스의 초구 체인지업을 공략한 타구는 내야를 맞고 튀어 오른 뒤 우측 깊숙이 빠졌다. 주자 2명을 불러들이는 동점 3루타(4-4)였다.
정수빈 특유의 날렵한 베이스러닝이 번뜩였다. 세이프가 아슬아슬했던 순간, 그는 왼손을 살짝 비틀어 상대 3루수 노시환의 태그 수비를 피하는 등 절묘한 슬라이딩으로 베이스를 찍었다. 이날 정수빈이 마크한 통산 90번째 3루타는 전 위원에 이어 KBO리그 역대 두 번째다.
전 위원은 현역 시절 ‘대도’ 외야수로 명성을 떨쳤다. 롯데와 현대, 히어로즈 등 유니폼을 입고 2091경기 출전, 타율 0.291(6928타수 2018안타)을 기록했다. 3루타는 물론, 도루(549개) 역시 KBO리그 최다 기록 보유자다.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3루타는 역시 통산 100호 달성 순간이었다. 우리(키움의 전신) 소속으로 2008년 10월 3일 목동 두산전에서 터졌다.
“야구에서 3루타가 제일 짜릿하다”는 그는 “3루타 치는 게 정말 어렵다. 빠른 발은 기본이고, 장타력을 겸비하면서 센스 있는 주루 능력과 한 발 더 내디딜 줄 아는 도전 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전 위원은 정수빈의 도전에 엄지를 치켜세운다. “(3루타 100개째를 작성한 지도) 벌써 17년이 흘렀다. 불멸의 기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어차피 깨질 기록”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정수빈을 향해 “선수 생활 내내 ‘허슬플레이’의 대명사로 통하지 않았나. 그런 선수가 내 기록을 넘어선다면 정말 고마울 것”이라고 웃었다. 지난해부터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있다. 전 위원은 “3루타 기록 경신에 의지가 있더라. 수빈이가 가끔 하소연하면 나는 ‘할 수 있다’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얘기를 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레전드의 시선은 이제 후배의 발끝으로 향한다. 전 위원은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자기관리와 꾸준함을 꼽았다. “기록에 도전하려면 무엇보다 건강한 몸 상태가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주전으로 15년 이상 뛸 체력과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고, 결국 자기관리가 철저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부상 조심, 그게 첫 번째”라고 했다.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바람도 분명하다. 특히 정수빈과 현역 선수 최다 도루 기록 보유자인 외야수 박해민(LG·453개)에 대한 기대가 크다. “팔팔할 때 많이 뛰었으면 좋겠다(웃음). 둘 다 자기 관리 잘하는 스타일이라 걱정은 없다. 나를 넘어서기 충분하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기록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애정어린 당부를 아끼지 않는다. 전 위원은 끝으로 “수빈이를 비롯해 후배들이 언젠가 내 기록을 깬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은 게 있다. ‘전준호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더 큰 목표를 세웠으면 한다’는 메시지다.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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