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소도시와 힐링

 엔화 환율이 안정되면서 올해 여름도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올해 역시 일본 여행 트렌드 중심은 ‘일본 소도시 여행’ 테마다. 7월 일본 소도시 노선 여객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동월 대비 성장률은 인천~가고시마 68.6%, 인천~시즈오카 40.0%, 인천~요나고 34.6%, 인천~구마모토 23.7% 등에 달했다. 특히 구마모토 노선은 김해공항 운항편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동월 대비 103% 성장에 이른다.

 

 그런데 왜 일본 소도시 여행일까. 다른 나라들 대상으론 이런 현상이 트렌드‘씩이나’ 되는 경우가 없는데 말이다. 간명하게 일본 소도시, 즉 일본 ‘시골’ 특유의 감성과 정취가 한국인들에 와 닿았단 해석이다. 그럼 저 일본 시골의 감성과 정취는 또 어디서 학습하고 추구하게 된 걸까. 단적으로, 대중문화의 힘이라 봐야 한다. 그간 영화, TV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등 일본 대중문화 전방위적으로 일본 시골 면면이 가히 홍보 브로셔에 가깝도록 집중적으로 소개돼 자연스럽게 그 특유의 감성과 정취를 인지시키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왔단 것.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현황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간 한국인들에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 일본영화’로는 단연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가 꼽힌다. ‘러브레터’는 홋카이도의 눈 덮인 소도시 오타루 배경으로 큰 정서적 감흥을 선사해 준 영화다. 한편,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막론하고 국내 극장서 가장 많이 관람한 일본 콘텐츠 1~3위는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너의 이름은’이다. ‘너의 이름은’은 기후현 시골과 도쿄를 오가며 전개되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바다가 보이는 가마쿠라,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 곳곳을 누비며 가지각색 자연 풍광들을 빼곡히 담는다.

 

 모든 세대 걸쳐 한국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상품으로서 생명력이 왕성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로는 역시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가 꼽힌다. 마찬가지로 사이타마현의 시골 마을이 무대다. 그밖에 만화로 시작해 실사 영화나 TV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 미디어믹스되며 한국 대중에 알려진 소도시/시골 콘텐츠도 무수히 많다. ‘리틀 포레스트’ ‘닥터 코토 진료소’ ‘썸머 워즈’ ‘은수저’ ‘바라카몬’ ‘논논비요리’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상업적 히트작들이 쏟아진다.

 

 소설로 출발해 미디어믹스된 경우도 ‘우드잡’ 등 셀 수 없고, 오리지널 영상 콘텐츠로도 ‘해피 해피 브레드’ ‘안경’ ‘고잉 마이 홈’ 등이 바로 떠오른다. 일본은 여러모로 ‘소도시/시골 콘텐츠 왕국’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란 얘기다. 근래 현상조차 아니고, 엄밀히 1960~70년대부턴 꾸준히 지속돼 온 흐름이다. 1980년대 들어선 상업적 콘텐츠로도 인기를 얻어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이 자신의 고향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를 무대로 삼은 영화 ‘전학생’ ‘시간을 달리는 소녀’ ‘쓸쓸한 사람’ 등 ‘오노미치 3부작’이 연속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 공통점이라면, 절대다수가 소도시/시골 마을을 이른바 ‘힐링 공간’으로 설정했단 점이다. ‘간니발’처럼 일본 시골의 폐쇄 공동체 공포를 다룬 콘텐츠도 나오긴 하지만, 힐링물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만큼 그 소도시/시골 마을 공간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바로 저 홍보 브로셔 급 감성과 정취를 담아내는 힐링 공간으로서 주로 소개되고 있단 뜻이다.

 

 한국서 ‘일본 소도시 여행’ 안내 서적이 처음 출간된 건 2010년. 당시만 해도 추천사를 쓴 일본정부관광국 한국사무소장은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나 일부 유명 관광지를 훑어보듯이 방문하는 데 그치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는 감상을 전했다. 그러다 국내 언론미디어에서 처음 일본 소도시 여행이 트렌드란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게 대략 2016년경부터다. ‘일본 소도시 여행’은 ‘나홀로 여행’과 ‘소확행’ 테마가 부상하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맞물려 해외여행 ‘대세’ 품목 중 하나가 됐다.

 

 그 사이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가 역할 했다 볼 수 있다. 사실 그리 어색한 얘기도 아니다. 한국도 이 같은 상황을 충분히 겪어왔기 때문이다. KBS2 드라마 ‘겨울연가’ 이후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남이섬,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 이후 관광 명소로서 급부상한 여수시 등 상황 말이다. 저 ‘일본 갬성’이란 코드 역시 계속 밀어닥치는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대중에 인식된 코드란 점도 자연스레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이 그처럼 엄청난 물량의 ‘소도시/시골 콘텐츠 왕국’이 된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본래 ‘치유계’라 불리는 힐링 콘텐츠가 대중문화 큰 갈래로 작동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큰 사건 없이 사사로운 일상을 담는 일상물부터 이렇다 하게 악한 의도를 가진 이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아 일명 ‘스머프 마을’이라 불리는 콘셉트까지 하부 갈래도 다양하다. 그리고 소도시/시골 마을은 삶의 느린 템포와 세상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면면 탓에 이런 콘셉트가 작동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배경 설정으로 선택돼 온 역사다.

 

 일본의 엄청난 ‘치유계’ 시장 규모는 세계적 기준으로 봐도 매우 특이한 경우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레나 모제가 저서 ‘인간증발’에서 관찰한 것처럼 “일본인들은 마치 약한 불 위에 올려진 압력솥 같은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로부터 도피하고 정서적으로 보상받고자 ‘치유계’ 시장이 크게 형성됐단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저 소도시/시골 마을 배경 힐링 콘텐츠도 특히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일본 힐링 콘텐츠에 정서적 울림을 받아 ‘일본 소도시 여행’ 트렌드까지 10년째 이어가고 있는 한국사회 역시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젠 거기서 그치지 않고 5~6년 전부터 직접 자국 콘텐츠로 소화해 KBS2 ‘동백꽃 필 무렵’, tvN ‘갯마을 차차차’ 등부터 올해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 이르기까지 대성공을 이어가며 비슷한 관광 효과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때로 한국의 지방 현실을 무시한 ‘지방 소도시 판타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현실’ 자체는 일본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일본도 많건 적건 지방 소도시의 인구 감소 문제, 고령화 문제 등에 직면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고, NHK ‘한계 취락 주식회사’나 TBS ‘나폴레옹의 마을’ 등 그를 다룬 콘텐츠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콘텐츠보단 역시 저 힐링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인기 있다. 대중문화로서 상업적 가치는 대중의 아픈 부분, 해소되지 못한 욕망과 갈등 지점들을 보상해 주는 역할로서 확보되는 탓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가슴 한켠이 사뭇 무거워지는 트렌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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