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YJ의 월드투어 현장에서 해외들이 한국어 가사를 완창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때, 오유정 공동대표는 알았을까. 10여 년 후 자신이 김치통을 들고 ‘한국의 맛’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게 될 줄을.
13년간 홍보 전문가로 스타들의 빛나는 순간을 연출하던 그가 이제는 냉장고 속 김치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김치를 선물로 만들겠다”는 당찬 선언에 주변에서 물음표를 띄웠을 때도,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K-팝이 그랬듯, K-푸드의 시대가 온다고.
소포장이 핵심인 신생 브랜드 ‘위클리 김치’로 김치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오유정 상무. 화려한 무대 뒤에서 쌓은 경험이 어떻게 소박한 김치 한 포기에 스토리를 입혔는지, 그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도전기를 들어봤다.
▲엔터테인먼트에서 시작된 글로벌 비전
-왜 김치였어요?
13년 동안 홍보 일을 하다가 아버지가 평생 일구신 단체급식 사업을 한 번 배워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MBA 과정으로 경영 공부를 하면서 3년 동안 이 사업을 함께 이끌어왔죠. 저희는 단체급식 납품을 기반으로 김치공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는데, 전국 각지 직장인들의 입맛을 맞추다 보니 김치 맛이 점점 좋아지고 표준화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실제로 “이 김치 어디서 사요?”라는 문의가 많아졌고, ‘그럼 소비자들도 즐길 수 있는 김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홍보만 13년 하다가 급식 사업을 배우는 일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브랜드 론칭은 더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나요?
저는 2011년부터 JYJ와 월드 투어를 다니면서 믿어지지 않는 광경들을 직접 봤어요. ‘K-팝을 지구 반대편에서 이렇게 사랑하다니’, ‘언어와 문화권이 완전 다른데 어떻게 이 그룹을 알고 이 노래를 따라 부르지?’ 하면서 너무 신기했거든요. 특히 남미의 칠레나 페루에서 한국말 가사를 따라 부르는 광경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에요. 그때는 주요 방송 보도국에서 비행기 타고 오셔서 취재할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는데, BTS와 블랙핑크 시대가 도래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K-팝이 월드와이드한 인기가 있다는 것이 더는 놀라운 뉴스가 아니잖아요. 저는 그런 것처럼 그 다음은 K-푸드의 시대가 온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K-팝과 같은 맥락으로 우리나라에서 먼저 사랑을 받아야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위클리 김치는 그런 생각의 일환이었던 것인가요? 글로벌을 목표로 둔 브랜딩이었나요?
맞아요. 위클리 김치는 처음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브랜드예요. 다만 순서는 분명했어요. K-팝이 그랬듯이, 해외에서 통하려면 먼저 국내에서 확실히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품의 맛과 품질은 물론, 포장 디자인, 브랜드명, 스토리까지 모두 ‘한국적인데 세련된’ 방향으로 만들었어요. 김치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도 패키지를 보고 호기심이 생기고, 한국 소비자들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브랜드를 목표로 했죠.
저는 위클리 김치를 단순한 식품 브랜드가 아니라, 한국 식탁의 정체성을 담아 세계 시장에 소개하는 문화 브랜드로 키우고 싶어요. 그 첫걸음이 지금의 국내 시장에서의 신뢰와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홍보 전문가에서 사업가로의 전환
-JYJ의 월드투어 홍보부터 배우들과의 작업까지. 처음 홍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지인을 통해 우연히 홍보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게 시작이었어요. 당시엔 대기업 제품 런칭, 아이스쇼 같은 행사 홍보를 서포트했는데,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운 좋게도 그 회사에서 JYJ 홍보를 맡게 됐고, 이후 인하우스 홍보팀을 만들면서 저를 좋게 봐주신 상사분 덕분에 본격적으로 엔터 업계에 들어오게 됐어요.
그 시절은 SNS가 막 태동하던 때였고, 연예기획사에 홍보팀이 드물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저는 마치 스펀지처럼 모든 걸 배우고, 직접 실행해보면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어요. 처음 홍보를 시작한 그때부터, 저는 평생 이 일을 할 줄 알았어요. 그만큼 적성에도 잘 맞았고, 매력 있는 직군이에요.
-글로벌 호텔 체인에서의 경험은 홍보에 어떤 영향을 줬고, 지금의 식품 브랜딩에 어떻게 녹아들었나요?
힐튼에서의 3년은 저에게 ‘브랜드라는 건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체화시켜준 시간이었어요. 글로벌 고객을 상대하면서 느낀 건, 눈에 보이는 화려함보다 ‘일관된 퀄리티’와 ‘섬세한 디테일’이 결국 신뢰로 이어진다는 거였죠. 지금 제가 김치를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에요. 맛은 기본이고, 포장 하나, 문구 하나까지도 브랜드의 톤으로 설계해야 고객과 연결된다고 믿거든요. 김치도 결국 누군가의 식탁 위에서 ‘경험’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식품을 하나의 감각적 콘텐츠로 바라보는 훈련이 힐튼에서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해요.
-엔터 산업에서의 10년,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사건은 무엇인가요?
JYJ의 남미 투어는 지금도 제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언어도 다르고,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진 남미에서, 수천 명의 팬들이 모든 한국어 가사를 외우고 함께 떼창을 하는 모습은 정말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어요. 페루 공항과 호텔 앞을 가득 메운 팬들의 모습, 그 에너지와 진심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특히 저는 팬 인터뷰를 많이 진행했는데, 외국 팬들이 아티스트를 향해 보여주는 존경심은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까지 표현하는 걸 보면서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정신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죠.
저는 그때, 엔터 산업이 단순한 문화 콘텐츠를 넘어서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몸으로 실감했어요. 지금 K-팝이 누리고 있는 위상의 초석이 다져지던 시기에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일부였다는 사실은 제게 큰 자부심으로 남아 있어요.

▲브랜딩과 스토리텔링의 진화
-배우나 가수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던 사람이, 지금은 음식에 스토리를 입히고 있어요. 이 변화는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요즘은 무엇이든 '이야기'가 중요한 시대잖아요. 브랜드도, 제품도, 사람도 결국 스토리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아티스트가 가진 매력이나 메시지를 어떻게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김치라는 음식에 우리의 철학과 감정을 어떻게 담아낼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김치도 결국은 누군가의 시간과 손맛이 쌓여 만들어지는,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가장 한국적인 가치에 현대적인 감성을 더해 고유성을 잃지 않고 재해석하고 싶었어요. 대상은 달라졌지만, 저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빛나도록 도왔던 과거처럼, 지금은 김치가 식탁 위에서 조명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셈이죠.
-김치 브랜드를 만들면서 ‘이건 꼭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요?
저는 오랫동안 홍보 일을 하면서 늘 ‘역지사지’를 기본으로 삼아왔어요. 상대방이 뭘 느끼고, 어디서 불편을 겪는지 끊임없이 생각해보는 훈련이 몸에 배어 있었죠. 그 습관이 위클리김치를 만들 때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소포장 아이디어도 제 경험에서 나왔어요. 혼자 생활할 기회가 생겼을 때, 편의점 김치는 너무 작고 마트 김치는 너무 크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은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 한 끼 뚝딱 해결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꺼내서 썰고, 다시 보관하는 그 과정이 너무 번거롭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딱 먹을 만큼, 깔끔하게 꺼내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게 지금의 위클리김치 소포장 라인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실제로 1인 가구들의 격한 환영을 받고 있어서, 제 경험이 곧 소비자의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스타와 일할 땐 철저한 이미지 관리가 필요했잖아요. 브랜드 운영에도 그런 콘셉트 관리가 들어가나요?
예전에는 철저하게 관리된 이미지가 중요했다면, 요즘은 확실히 진정성의 시대인 것 같아요. 보여주는 것보다 얼마나 진짜인지, 겉과 속이 얼마나 일치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잖아요.
저희 위클리김치도 그런 방향을 지향하고 있어요. 억지로 멋을 부리기보다는, 김치 본연의 정성과 건강한 맛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죠.
콘셉트를 만든다기보다,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가치가 잘 드러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그게 가장 강력한 ‘이미지’가 된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이력서를 처음 보는 사람은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흐름이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네, 맞아요. K-팝 월드투어, 글로벌 호텔 체인, 영화배우 홍보, 그리고 지금은 단체급식과 김치라니, 이력서만 보면 뜬금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안에서는 이 흐름이 정말 자연스러웠어요. 저는 늘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일’을 해왔거든요.
스타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풀고, 호텔에서 고객의 경험을 설계하고, 지금은 음식에 스토리를 입히고 있어요. 결국 저는 늘 ‘누군가의 일상에 의미 있게 다가가는 일’을 해왔고, 그 방식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이에요. 그게 무대 위 한류 스타였든, 냉장고 속의 김치였든, 결국은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지금 제가 김치를 팔고 있다는 건 결코 뜬금없는 일이 아니라, 제 커리어의 가장 솔직한 진화일지도 모르겠어요.
-화려한 무대 뒤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던 시간이 지금의 사업가로서 어떤 단단함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하세요?
무대는 화려했지만, 그 뒤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일정은 촘촘했고, 변수는 늘 생겼고, 그걸 당연하듯 대처해야 했죠. 누구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당황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정리하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아요. 한 수, 두 수 앞을 생각하는 버릇도 이때 생긴 것 같고요. 단련된 저의 일하는 방식들이 지금 사업을 하면서 큰 버팀목이 되고 있어요. 어떤 위기 상황이 와도 감정에 휘둘리기보단 “일단 해보자” 하고 바로 움직이는 힘.
또 예전엔 혼자 빛나는 사람이 잘 보이게 하는 게 일이었다면, 지금은 팀이 함께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제 일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화려한 현장 뒤에서 쌓아온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안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고 단단하게 움직일 수 있게요.
-김치를 직접 기획하고 만들며, 가장 낯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넘어섰나요?
위클리 김치는 그냥 탄생한 브랜드가 아니에요. 제가 2년 넘게 기획한 제품이고 이름도 스레드에서 공모했고, 대학원 및 지인들을 포함해 수백 명의 고견을 들었어요. 하지만 처음 ‘김치를 선물로 만들겠다’ 했을 때 모두가 물음표를 지었긴 했습니다. 너무 일상적이고, 너무 익숙하고, 보관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감동’이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에 출시를 하면서 물음표를 보였던 많은 고객들이 첫 선물을 하고 반응이 좋자 상사에게, 친구에게, 가족들에게 선물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게 진짜 필요한 경험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배우분들이나 인플루언서분들도 너무 좋은 선물이라고 바로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이런 김치를 기다렸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그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는 걸 실감해요.
-엔터 업계에서의 감정 소모나 번아웃을 경험한 적 있다면, 지금의 일은 그와 어떻게 다르다고 느끼세요?
이건 업계의 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엔터 업계는 감정 소모도 많고, 변수도 워낙 많아서 유연함이 필수죠.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결국 ‘사람이 중심’이라는 점은 똑같다고 봐요. 저는 항상 사람에게 지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지금의 일도 마찬가지예요. 팀을 이끌고, 현장을 챙기고, 고객의 피드백에 귀 기울이는 일은 여전히 감정이 오가는 일이고, 때로는 체력보다 정신력이 더 중요한 순간도 많아요.
다만 지금은, 제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와 방향성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일에 대한 몰입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고 느껴요. 예전에는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해 뒤에서 뛰었다면, 지금은 팀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책임과 기쁨이 동시에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치열하지만, 번아웃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왜 김치?”라고 물을 수도 있어요. 당신이 김치를 선택한 이유, 그리고 김치가 당신에게 가진 감정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가장 한국적인 고유가치를 담고 있지만,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음식이잖아요. 그 가치를 재디자인하고 싶었어요. 양이 많아서, 포장이 촌스러워서, 냄새가 날까 봐 선물을 못했던 상황에 “김치도 세련된 선물이 될 수 있다”라는 믿음으로 시작한 브랜드예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선물하고 계시고요. 이렇게 실용적이고 고마운 선물이 있을까 싶어요. 누군가의 냉장고에, 혹은 식탁 위에 저희 김치가 놓였을 때, 단순한 음식 그 이상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결국 제가 김치를 선택한 이유는, 김치를 선물하는 문화를 선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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