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韓스포츠③]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 태극마크 품은 ‘독립운동가 후손’ 허미미

사진=뉴시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에요.”

 

도복 위 태극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재일교포라는 단어에 한국과 일본의 미묘한 감정선이 복잡하게 교차한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부담감이 가득할 법도 할 터,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감사합니다”라고 연신 외친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 2024 파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한국 유도 국가대표인 허미미(경북체육회)다.

 

허미미는 최근 공식 대회를 마치고 때마침 휴가를 보내고 있던 참에 광복 80주년 인터뷰를 요청받았다. 단순 인터뷰가 아니었기에 충분히 부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허미미는 “국민 여러분의 많은 응원과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라며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장에 설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게 만든다”고 의젓하게 답했다.

 

재일교포 출신 허미미의 이야기 속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뿌리’다. 일본서 촉망받는 기대주였지만, 2021년 한국행을 결심했다. 작고한 할머니가 생전에 남긴 ‘미미가 꼭 한국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당부 때문이었다. 한국 국적을 택한 허미미는 이듬해 태극마크까지 달았고, 이제 한국 유도계에 없어서는 안될 에이스로 성장했다.

 

유도 국가대표 허미미(경북체육회)가 13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보강 훈련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경북체육회 제공

 

귀화 5년 차를 맞이한 허미미는 “한국 대표로 시합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웃는다. “국가대표가 된 건 할머니 덕분이다. 항상 그때 그 말씀을 잊지 않고 가슴속에 새기고 있다”며 “선수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틸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이유”라고 전했다.

 

함께 한국으로 건너온 동생 허미오(경북체육회)의 존재도 두텁다. 같은 팀 소속이기도 한 2002년생과 2004년생 두 살 터울 자매는 서로 의지하며 유도 선수로 성장 중이다. “동생의 열정을 가까이서 보고 있다. 덕분에 나 역시 자극을 받아 운동에 더 열심히 매진하고 있다”는 게 언니의 설명이다.

 

자신이 독립운동가 후손임을 처음 알게 된 건 한국행 이후다. 경북체육회 유도팀을 지도하고 있는 김정훈 감독의 역할이 컸다. 선수 등록 과정에서 직접 수소문, 허미미가 허석 선생의 증손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허 선생은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경북 군위 일대에 항일 격문을 붙인 뒤 체포돼 1년 동안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 사흘 만에 순국했다. 정부는 1982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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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 할아버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내게 어떤 일이 생길지 짐작도 못했다”는 허미미는 “이젠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로 인해 국민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긍심을 느끼게 됐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허미미는 지난해 파리 올림픽 일정을 마친 뒤 곧장 경북 군위에 위치한 현조부의 기적비를 찾았다. 여자 유도 57㎏급 은메달과 혼성 단체전 동메달을 쥔 채로 ‘다음 LA 올림픽 때는 금메달을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전했다. 이때를 떠올린 그는 “파리 올림픽의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다. LA 올림픽서 말끔히 털어낼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되새겼다.

 

올해 부상에 신음했다. 지난해 11월 어깨 인대 수술 여파다. 부활을 노래하며 다시 일어선다. 지난달 독일 라인-루르서 열린 2025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에서 57㎏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2년 전 청두 U대회에 이어 이 부문 2연패다. 혼성 단체전서도 동메달을 수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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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미는 “한국에서 유도를 할 수 있도록 많은 분이 도와주셨다. 그걸 떠올리며 지친 마음을 다독였고, 재활을 견딜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수술 후 경기 감각이 많이 떨어져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 대회를 자신감 회복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내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AG)을 향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허미미는 “최근 들어 외국 선수들이 내 경기 스타일을 많이 파악해 경기를 풀어가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지금은 대회 출전보다 훈련이 더 중요하다. 새 기술과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AG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서 응원해 준 모든 이를 기쁘게 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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