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골든은 K-팝인가...‘케데헌’이 보여준 새로운 정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 걸그룹 헌트릭스 이미지. 넷플릭스 제공

지난 12일 반갑고도 놀라운 소식이 있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Golden)이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영국 싱글차트 정상에 이어 세계 양대 차트를 동시에 석권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강타했던 2012년 이후 무려 13년 만에 K-팝이 미국과 영국의 음악시장을 제패한 쾌거다.

 

인기는 온라인 상에서도 느껴진다. 국내 및 해외 아티스트의 골든 커버 영상이 쏟아지고 있고, 해외 콘서트장에서는 수많은 관중이 떼창으로 ‘혼문’을 지키고 있다. 한 아이가 케데헌의 OST를 하루종일 틀어놓는 바람에 아버지가 자신도 모르게 후렴구를 따라부르는 숏츠 영상은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10년전 겨울왕국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SNS에서 줄을 잇는다.

 

놀라운 점은 이런 성과가 단발성 히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골든뿐 아니라 OST에 수록된 다른 곡들까지 스포티파이·애플뮤직·유튜브뮤직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연이어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K-팝 OST 앨범’ 전체가 역대급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의외의 논쟁이 눈길을 끈다. 바로 ‘수록곡들이 진짜 K-팝인가’라는 시선이다. 이 작품이나 음악이 다 미국에서 제작됐고, 실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당한 건 이런 논란이 해외도 아닌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생했다.

 

주장의 근거는 제작·유통 구조다. 애니메이션 제작은 미국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배급과 투자는 넷플릭스가 맡았다. 사실 산업적으로만 보면 ‘글로벌 팝 사운드트랙’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게다가 노래를 부른 건 현실의 아이돌이 아니라 가상의 걸그룹 헌트릭스와 그들과 대립하는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접해오던 전통적인 K-팝과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케데헌의 곡들은 분명히 K-팝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선 곡과 작품을 뜯어보면 골든은 K-팝의 정체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작곡·작사·보컬 모두 한국인과 한국계 아티스트가 깊게 참여했다. 보컬에는 SM 연습생 출신 이재(IJAE)와 오드리 누나(Audrey Nuna), 레이 아미(Rei Ami)가 이름을 올렸고, 트와이스도 피처링으로 참여해 현실 K-팝의 사운드를 고스란히 담았다. 더블랙레이블 소속의 K-팝 프로듀서인 테디도 힘을 쏟았다. 성우도 한국계 인물들이 대부분이고 배우 이병헌과 안효섭이 참여했다.

 

음악 구조를 봐도 익숙하다. 강렬한 훅과 안무 중심 편곡에 한국어 가사까지 포함돼있다. 팬덤 중심의 바이럴 전략까지 모두 K-팝의 특징이다. 골든 뿐 아니라 다른 곡들을 들어보면 실제 K-팝 그룹의 대표곡이 떠오른다. 헌트릭스를 보면 블랙핑크가 떠오르고 사자 보이즈는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의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세계관이 철저히 우리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극 중 서울의 번화가, 지하철역, 콘서트장, 한글 간판, 김밥·떡볶이, 한복·갓·부채 같은 전통 소품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사자 보이즈는 저승사자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리더의 이름은 진우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K-팝이 어떤 문화적 토양에서 자라났는지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글로벌 팬들에게 이런 장면들은 음악과 문화를 연결시켜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제 음악의 한 장르를 분류할 때 제작사의 국적과 투자금의 출처보다 창작 주체, 참여 아티스트, 세계관 속 문화적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 케데헌을 리뷰하는 수많은 해외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보면 모두가 “K-팝”이라고 표현하며 감탄한다.

 

결국 K-팝을 규정할 때, 이제는 제작사의 국적이나 투자금의 출처보다 창작 주체와 참여 아티스트, 문화적 정체성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 글로벌 제작 환경 속에서도 한국 특유의 음악 색채, 문화 코드, 팬덤 구조가 유지된다면 K-팝으로 평가해야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복잡하다면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제목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권기범 연예문화부장 



권기범 기자 polestar174@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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