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에게 배운 그대로…염경엽 감독이 3회 X자를 그린 이유

사진=LG트윈스 제공

“제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습니다.”

 

프로야구 LG와 한화의 시즌 12차전이 열린 9일 서울 잠실구장. 초반부터 LG가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1~2회 연달아 3득점씩 올리며 앞서갔다. 6-0으로 앞선 3회 말, 꽤 인상적인 장면이 포착됐다. 1사 후 박해민이 우전 안타를 치고 나갔다. 염경엽 LG 감독은 박해민을 향해 두 손으로 X자를 만들었다. 최원호 스포츠 해설위원은 “뛰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해민은 뛰지 않았다. 그럼에도 볼넷, 안타, 희생플라이로 이어지며 득점에 성공했다.

 

야구계엔 오래된 불문율이 존재한다. 큰 점수 차로 앞서 있을 때 도루를 시도하지 않는 것 또한 포함된다. 다만, LG의 경우 아직 3회였다. 보는 시각에 따라 6점 차는 다소 애매하게 느껴질 수 있다. 투고타저 시즌이라고 하지만, 한화 역시 6번이나 공격 기회가 남아있었다. 언제 어떻게 경기에 흐름이 달라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이날 경기는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팀의 맞대결이었다. 중요한 경기지만 염 감독은 불문율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사진=LG트윈스 제공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감독 1년차 때 상대에 대한 배려를 가르쳐 주신 분이 김경문 (한화) 감독”이라고 운을 뗀 염 감독은 “내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점수가 벌어졌기 때문은 아니다. 과거 염 감독은 6회 5점 차에 번트를 지시했다가 항의를 받기도 했다. 타자들에겐 빈볼이 날아왔다. 염 감독은 “당시엔 우리가 가진 불펜 카드로 5점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기 후 상대 감독과 얼굴을 붉히기도 했는데 이젠 잘 지낸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경기 흐름이었다. 염 감독은 선수단을 믿었다. 경기 초반이지만, (도루 등의 전술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추가 득점이 가능하다고 봤다. 필승조를 투입시키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수장의 마음을 알기에, 도루 1위 박해민도 지시에 따랐다. 염 감독은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상대도 알았을 것”이라면서 “10년 넘게 감독 생활을 하면서, (이런 불문율 때문에) 역전패를 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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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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