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토트넘 손흥민 선수는 비 오는 날 걸그룹 오하영 리포터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리포터가 우산을 들고 손흥민을 가렸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는 이 장면을 확대하며 ‘왜 남자가 우산을 안 드느냐’,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만들어냈다.
사실을 보면 얘기는 간단하다. 손흥민은 한 손에 마이크, 다른 손에 송출기를 들어 양손이 꽉 찬 상태였다. 우산을 들 여유가 없었다. 그걸 ‘젠더 갈등’의 상징처럼 포장한 건 현장도, 당사자도 아닌 제3자였다.
이쯤에서 물어봐야 한다. 이런 논란은 과연 누가 만드는 걸까? 답은 뻔하다. 논란으로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논란 자체가 돈이 되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유튜브, SNS, 일부 언론은 클릭 수와 조회 수를 위해 작은 장면에 과도한 의미를 씌운다. ‘손흥민 우산 논란’이라는 제목 하나만 달면 수만 건의 댓글과 수십만의 조회가 몰린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피로감은 높아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불신하게 된다.
이 논란 장사의 무서운 점은 정작 진짜 문제를 가리는 효과다. 청년 실업, 출산율 최저치, 부동산 양극화, 교육 격차 같은 시급한 과제는 뒤로 밀리고 대중의 관심은 소모적 감정싸움에 묶인다. 사회적 에너지가 우산 하나에 낭비되는 셈이다.
젠더 감수성을 키우고 차별을 줄이는 논의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논의는 데이터, 정책, 제도 개선 같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 ‘누가 우산을 들었느냐’는 사소한 장면을 진영 싸움의 도구로 쓰는 건 성평등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다. 그것도 질 낮은.
손흥민은 이번 논란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전 세계 뉴스 제목에 우산이라는 키워드로 묶였다. 의도치 않은 상징이 된 것이다. 이건 한 개인에 대한 불필요한 프레임이자 우리 사회가 스스로 골칫거리를 만드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논란 장사꾼의 장터에 놀아나지 말자. 그들이 파는 건 진실이 아니라 자극이고, 우리가 지불하는 건 클릭과 관심 그리고 사회의 신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호의는 호의로, 매너는 매너로 받아들이는 여유를 갖는 것. 그리고 진짜 싸워야 할 문제 경제, 주거, 교육, 환경에 집중하는 것. 우산 하나로 나라가 갈라질 일은 없다. 하지만 논란 장사꾼에게 계속 놀아난다면 웃을 일마저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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