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경기라도 더 뛸 수 있도록!”
마지막 등판 순간을 위해, 멈추지 않고 구슬땀을 흘린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기록될 오승환(삼성)이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예고했다. 삼성과 오승환은 7일 인천 연수구 오라카이 송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 소감과 커리어를 돌아보는 등 담담한 소회를 밝혔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엔 이종열 삼성 단장을 비롯, 포수 강민호와 외야수 구자욱, 투수 김재윤, 원태인 등이 함께하며 꽃다발을 전달하기도 했다. 오승환은 일단 1군 엔트리 등록 없이 선수단과 동행하며 커리어 마지막 해를 마무리한다. 아직은 끝이 아니다. 마운드 위 ‘끝판왕’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열려있다.
사령탑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같은 날 오후 인천 SSG 랜더스필드서 “(정규리그 끝까지) 시간이 많이 있다. 오승환은 우선 계속 공을 던지고 있다. 상황상 여건이 된다면 은퇴 경기가 아니더라도 팀 사정에 맞춰 콜업될 수도 있다. 1군 동행이기 때문에 계속 옆에서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전했다.
선수 본인도 열정을 불태운다. “한 경기라도 팬들께 마운드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게 오승환의 진심이다.

다음은 은퇴 기자회견서 취재진과 만난 오승환과의 일문일답.
Q.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라는 반응이 있었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나.
(개인적으로는) 갑작스럽진 않은 듯싶다. 은퇴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 됐고, ‘아, 이제는 은퇴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시즌 초반엔 간절한 마음으로 팀에 보탬이 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야구장에서 100% 퍼포먼스를 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많이 고민했다. 이후 시즌 중 먼저 구단 측에 뜻을 전달했다. 은퇴를 결정하게 됐지만, (나 스스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Q. 1982년생 동갑내기 선수들은 은퇴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이대호(전 롯데)는 방금 전까지도 연락이 왔었다(웃음). 어제는 김태균(전 한화) 통화했다.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는 얘길 많이 했다. 이대호는 마지막까지도 ‘지금은 실감이 안 나겠지만, 나중에 은퇴사할 때는 아마 울게 될 것’이라는 농담을 건넸다. 또 오늘 기사를 보니 내가 은퇴하게 되면 1982년생들은 물론,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멤버 중 현역 선수가 없다고 하더라. 또 후배 선수들에게도 많은 연락이 왔다. 예전에 함께 뛰었던 최형우(KIA)도 내게 좋은 얘길 많이 해줬다.
Q. 은퇴 이후 계획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정확하게 어떤 결정을 내린 건 없다. 아직 시즌 중이고, 시간이 남아있다. 구단과 앞으로 충분히 상의할 계획이다.
Q.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세이브 하나를 꼽는다면?
세이브라는 기록 자체가 팀의 1승을 지킨다는 의미라서, 특별히 하나만 고르기는 어렵다. 하지만이 질문을 받을 때 딱 떠올랐던 건 국내 통산 400세이브(2023년 10월14일 대구 SSG전) 순간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21년 선수 생활 속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너무나 많다. 어떻게 보면 마무리 투수로서 매 시즌,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힘든 순간이 꼭 찾아오더라. 왜 그러냐면 블론세이브 때문이다. 팀 순위 싸움에 치명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그럴 때가 가장 힘들었다.
Q. 함께 호흡한 포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너무 많아서 누구 하나를 딱 집긴 힘들다. 진갑용, 강민호, 야디어 몰리나 등 정말 훌륭한 포수들과 함께했다.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개인 기록들도 좋게 좋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별명이 있다면?
모든 별명이 다 좋다. 팬들의 관심 덕분에 생긴 것 아닌가. 그중에서도 특히 애정을 갖고 있는 별명은 ‘끝판대장(끝판왕)’이다. 보직인 마무리와도 잘 어울린다. 또 하나 뽑는다면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하는 ‘돌직구’다. 이 두 개를 많이 좋아한다.
Q. 시즌 중 마운드에 오를 가능성은 남아 있는지.
박진만 감독님과 코치님들과 분명히 상의를 해야 될 부분이지만, 지난주까지만 해도 퓨처스리그(2군) 경기를 소화했다. 지금은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공을 아예 놓고 있진 않을 것 같다. ‘한 경기라도 나갈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있다. 또 한 경기라도 팬들께 마운드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라도 마지막 경기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
Q. 지도자로서의 미래도 고민 중인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제2의 인생과 관련해선 구단과 충분히 상의할 계획이다. 물론 (지도자 변신) 기회가 온다면 나 역시 당장은 아니지만, 많이 공부하고 코치나 감독으로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는 도전해보고 싶다. 아직까지도 선수들과 호흡하는 게 좋다. 운이 좋게도 다양한 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쌓기도 했다. 그걸 후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공부 많이 하고, 준비가 되면은 그때 가서 (지도자로) 준비해보겠다.

Q. 기억에 남는 최고의 공은?
매 경기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공이 가장 의미 있게 남는다. 어떤 상황이든 항상 한국시리즈(KS)든, 정규리그든 그날 경기의 끝을 책임지는 공이 내게는 늘 중요했다.
Q. 선동열 감독과도 대화를 나눴다고 들었다.
이틀 전 먼저 전화를 드렸다. 감독님께서 ‘큰 결정을 했구나’ 하시면서 축하해 주셨다. 내가 존경하고 롤 모델로 삼았던 분에게 그런 축하를 듣게 되니 조금은 ‘야구 선수로서 잘 해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께선 ‘앞으로는 후배들에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해주셨다.
Q. 본인의 선수 생활을 점수로 평가한다면?
팬들께 받은 사랑을 기준으로 하면 21점 만점에 21점을 주고 싶다. 다만 나 스스로는 아쉬운 게 있어 20점을 주겠다. 나머지 1점은 앞으로 펼쳐나갈 제2의 인생에서 채우고자 한다.
Q. 어떤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나.
시간이 지나더라도 ‘오승환이라는 마무리 투수가 있었지’ 기억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마무리 투수’에 대한 회상을 한 번 더 하게끔 만드는 투수로 남았으면 한다. 또 나를, 혹은 내 기록을 목표로 삼고 도전하는 후배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제2의 오승환은 누구인가.
요즘 좋은 마무리 투수들이 많다. 이 선수들을 내가 평가하는 게 무리인 것 같다(웃음). 그래도 최근 들어 박영현(KT)과 김택연(두산), 조병현(SSG), 김서현(한화) 등 유망한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 (지금보다) 불펜과 마무리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선수들이다. 또 충분히 내 기록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들이 좋은 경쟁을 펼쳐 팬들에게 즐거움을 많이 드렸으면 좋겠다.
Q.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타자는?
너무 많다. 또 이름이 나오면 삐진 선수들이 삐지더라(웃음). 이대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별명이 ‘조선의 4번타자’다. 그만큼 국가대표로도 정말 많은 업적을 남긴 선수다. 장타력과 예리함, 선구안까지 갖춰 항상 부담스러웠다. 앞으로 이런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대단했다.

Q. 가족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가족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다. 어머니께서 올 시즌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많이 힘들었다. 어머니는 선수 생활에서도 가장 큰 도움을 주셨고, 경기가 끝나면 항상 가장 먼저 전화 주시던 분이셨는데, 올 시즌엔 이제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다. 은퇴를 결심하는 데에도 영향이 있었다.
Q. 은퇴 후 방송 활동 등도 고려 중인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야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선수들과 후배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았다. 지금은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릴 부분이 없는 듯싶다. 아직은 공을 완전히 놓은 상태가 아니다. 다만 어떤 부분이든 야구에 있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향후 결정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구단과 충분히 대화를 나눈 뒤 결정할 것이다.
Q. 통산 550세이브를 채우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텐데.
아직 공을 놓지 않았다. 올 시즌 끝날 때까진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기회가 온다면, 세이브가 됐든 지고 있는 상황이든 마운드에서 던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또 549세이브보단 550세이브가 보기에는 더 좋지 않을까(웃음).
Q. 마지막 경기, 마지막 공을 예고한다면?
비밀이다(웃음). 작년부터 타자들이 내 공을 너무 잘 친다. 그걸 말하면 타자가 유리하다. 해외 무대에서 복귀한 후에 비슷한 질문들이 많았는데, 늘 ‘초구는 무조건 직구’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복귀 경기 첫 타자 상대로 2루타를 맞았다. 일단 팀의 승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을 던질지는) 섣부르게 밝히지 않겠다.
Q. 불혹을 넘어선 나이에도 리그 평균 이상의 구속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가장 중요한 건 ‘꾸준함’과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잘 던졌다고 만족하지 않고, 또 실수가 이어졌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꾸준함이 결국에는 실력이 된다. 루틴 자체를 좋든 싫든 연속성 있게 가져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Q. 해외 무대를 제외하면 삼성에서만 뛰었다. ‘원 클럽맨’으로서의 자부심은?
삼성에서만 선수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자부심이 크다. 많은 선수들이 삼성에서 뛰는 걸 많이 부러워했다. 왕조 시절을 다 경험해본 것도 뜻깊다. 지금의 ‘오승환’을 만들어 준 팀이 바로 삼성이다.

Q. 마무리 투수로서 라이벌이라 생각했던 선수가 있나.
매 시즌 달랐던 기억이다. 또 미움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른 팀 마무리나 특정 선수를 두고 ‘라이벌’ 의식을 불태운 기억은 별로 없다. 항상 팀이 이기는 데 집중하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기록적으로 본다면 마무리 투수로 골든글러브(2013년)를 수상했던 손승락(현 KIA 수석코치) 정도가 떠오른다.
Q. 프로 입단 당시 생각했던 목표를 지금 다시 떠올린다면?
처음에는 패전처리라도 1군 엔트리에 드는 게 목표였다. 어떤 큰 목표를 잡을 여력은 없었다. 입단했던 2005년엔 팀에 좋은 선수가 워낙 많았고, 나는 대학을 막 졸업한 입장이었다. 하루하루 버티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치열하게 지내다 보니 21년이 흘렀고, 지금도 똑같은 마음으로 경기에 나서는 중이다.
Q. 다시 태어나도 마무리 투수를 선택할 건가.
다시 태어나면 야구는 무조건 하고 싶다. 하지만 마무리 투수는 절대 안 할 것이다(웃음). 하더라도 선발 투수를 하겠다.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다면 타자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마무리 투수는 매 경기 결과로 잔혹한 평가를 받는 자리다. 선발 투수도 마찬가지겠지만,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다른 포지션을 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마추어 시절엔 타자도, 선발 투수도 해봤다. 개인적으로는 뭘 해도 마무리 투수보단 나을 듯싶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직 (은퇴에 대한)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라 앞뒤 없이 말이 많았다. 팬들께는 좀 더 준비된 모습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아직 시간이 좀 있는데, 잘 준비해서 대구에서 팬들께 마지막 인사를 멋지게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