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 KPGA… 선출 회원이 왜 사무국 직원 인사권을 갖고있나요?[권영준의 독한S다이어리]

19대 김원섭 KPGA 회장이 2023년 11월 경기 성남시 한국프로골프협회에서 열린 '2023년 한국프로골프협회 임시총회'에서 회장에 당선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KPGA 제공

“No fish ever came from a dead water.(죽은 물에서 고기가 나온 적은 없다)”

 

흔히 ‘고인물을 썩는다’고 한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변화 없이 정체돼 있다면 도태되거나 부패한다는 내용이다.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불리는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 명언을 자주 썼다. 모든 사회, 조직, 인간 내면 등 어떤 시스템이든 생명력을 잃는 다면 ‘고기’ 즉 생산성,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극복하고,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한국 골프의 중심인 KPGA(한국프로골프협회)가 마치 죽은 물에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크다. 태생부터 수십 년간 역사를 이어오면서 ‘회원 중심’이라는 시스템 아래 기존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으로 움직였다.

 

그 폐해가 최근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이후 드러난 징계 논란, 더불어 깊어지고 있는 노사 갈등이 대표적이다. KPGA 고위 임원 A씨는 직원들에게 지속적인 폭언, 욕설, 협박, 퇴사 강요 등의 행위를 했다. 경찰 수사를 통해 강요죄, 모욕죄,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의 혐의로 확인되어 검찰에 송치됐다.

 

문제는 이후다. KPGA는 A씨에 대한 징계는 미룬 채 오히려 피해자 직원들을 징계했다. A씨의 강요로 작성한 사유서, 시말서를 근거로 삼았다. 근거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은데, 징계위원회를 강행했다.

 

이 징계가 논란이 되자 KPGA는 A씨가 퇴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징계를 당한 직원에 대한 징계는 바뀌지 않았다. 최근 징계위원회를 다시 열었으나, 진상 파악 및 재조사 과정 없이 원심을 유지했다. 이를 김원섭 KPGA 회장은 승인했다. 다만 외부로 공개하지 않고 쉬쉬하고 있다. 

 

이 사건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의 손솔 의원(진보당)까지 나서 “문체부가 법인 사무검사와 감독에 나서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등 사태가 커지고 있다. 실질적으로 외부 감사가 절실한 단체 중 하나가 바로 KPGA다.

 

이번 사안의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이유, 바로 선수 출신 KPGA 회원 중심의 단체라는 점에 있다. 이번에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이자 퇴사한 고위 임원 A씨는 프로 선수 출신 KPGA 회원이다. 피해자 직원을 무더기 징계한 징계위원회 이사진 모두 A씨와 같은 선수 출신 회원이다.

 

현재 KPGA 이사회 및 위원회 구조를 살펴보면, 부회장단, 이사진은 물론 경기위원회부터 상벌위원회, 경기위원회 이사진 모두 선수 출신 KPGA 회원이다. 심지어 감사까지도 현재 시니어 무대에 출전하고 있는 선출 회원이다.

 

KPGA 사무국은 회원관리, 경영관리, 미디어전략, 마케팅, 신규사업개발, 운영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협회 이사진과 분리돼 독립적이어야 한다. 본연의 전문적인 업무를 위해 소속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인사 및 징계 등 대부분의 의결권을 이사진, 즉 회원들이 갖고 있다.

 

가해자 A씨도 회원, 이들을 징계해야 할 이사진도 회원이라는 뜻이다. 결국 팔은 안으로 굽은 셈이다. KPGA 노조가 이번 사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부분도 결국은 직원들의 인사권을 이사진, 즉 회원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징계를 받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은 십수년간 KPGA에 헌신한 직원들이다. 현재 KPGA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개발하고, 브랜드 이미지 구축, 스폰서십 유치 등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직원들이다. 이처럼 행정 업무에 있어 전문적이고 헌신적으로 노력해 온 직원의 인사권을 선수 출신 회원이 쥐락펴락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타 종목 협회를 예를 들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경우 임원진에 선수 출신 박항서, 김병지 부회장이 있다. 김승희 전무이사, 이장관 김현태 현영민 위원장도 모두 선수 출신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장 업무에 충실하다. 행정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들의 업무는 현장에 있다.

 

각 분야 및 분과별로 임원진이 세분화 돼 있다. 김윤주 이사는 변호사다. 김광준 위원장은 세브란스 병원 내과 교수다다. 전한진 위원장과 조연상 이사는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등에서 스포츠 행정 업무를 오랜기간 수행해 온 스포츠 행정 전문가다. 위원석 위원장과 정희돈 이사는 언론인 출신이다.

 

이들은 임원 및 이사진으로 한 데 묶여있지만, 각자 담당하는 분야가 확연하게 구분 돼 있다. 전문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KPGA 사태를 빗대어 보면 선수 출신인 박항서, 김병지 부회장이 협회 사무 직원을 징계한 셈이다. 그 누구도 인정할 수 없는 시스템, 이 고인물에 KPGA가 깊이 가라앉아 있다.

 

 KPGA는 최근 ‘한국 골프계 아버지’ 연덕춘 고문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연덕춘 고문은 일제강점기 일본오픈에 출전해 정상에 오르며 힘을 잃어가던 민족에 희망을 비췄다. 이전까지 일본인 노부하라 도쿠하루로 기록돼 있었지만, KPGA의 노력으로 JGA(일본골프협회)를 설득해 ‘한국인 연덕춘’으로 기록을 바꿨다. KPGA의 태생이 바로 연덕춘 고문이다. 한국 골프 발전을 위해 선수 중심으로 단체를 결성했고, 이것이 모태가 돼 KPGA 단체가 탄생했다. 하지만 현재 KPGA가 갖고 있는 선수 출신 이사진의 협회 장악, 자기 뱃속 챙기기가 이어진다면 연덕춘 고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을 물론 브랜드 가치마저 깎아먹는 일이다. 구조적인 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권영준 기자 young0708@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