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원심 유지’
충격적이다. 7일 골프계 관계자에 따르면 KPGA(한국프로골프협회)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직원 무더기 징계와 관련해 재조사 및 진상 파악 과정 없이 징계위원회를 다시 열어 원심 유지를 결정했다. 앞서 KPGA 이사진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직원 중 6명을 무더기 징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KPGA 노조 측 관계자는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를 만나 “가해자 A 임원의 강요로 작성하게 된 시말서를 근거로 징계했다”며 “녹취가 있으며 공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KPGA 측은 “임원 A씨가 직원들에게 경위서와 시말서의 작성을 강요한 적은 없다”며 “해당 문서는 업무상 명백한 과실이 확인된 경우 자발적으로 제출된 경위서”라고 설명했다.
김원섭 KPGA 회장이 이 같은 결정을 승인했으나, 외부로 공개는 하지 않았다. 2차 가해를 넘어 3차 가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골프계를 넘어 스포츠 단체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야기하는 심각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은 지난해 시작됐다. KPGA 고위 임원 A씨의 직장 내 가혹행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임원 A씨는 직원 B씨를 포함한 다수의 직원을 대상으로 ▲심각한 욕설과 폭언, 막말 ▲시말서 및 각서 제출 ▲가족을 운운한 모욕 ▲퇴사 강요 등 가혹행위를 일삼아 경찰 고발을 당했다. 경찰은 수사 끝에 지난 5월 임원 A씨를 강요죄, 모욕죄,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KPGA 측은 이 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이 되도록 임원 A씨에 대한 공식적인 징계를 미뤘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이사회가 열렸지만, A씨 징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돌연 지난달 8일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직원들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었고, 이틀 만인 10일 6명을 무더기 징계했다. 특히 최초 신고자인 B씨는 견책,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출석해 추가 피해 조사를 마친 C씨는 해고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고, 논란이 일어나자 최근 임원 A씨가 KPGA를 떠났다. 협회 측은 지난 7월25일 이사회를 개최해 이사 18명 중 11명 출석, 출석 이사 11명 중 9명의 찬성으로 A씨를 면직하기로 의결했다.
KPGA 노조 측은 이를 두고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했고, 피해자 징계에 대한 재심의를 요청했다.
KPGA 이사진도 이를 수용하는 듯했지만, 형식적이었다. 한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소명의 기회를 달라고 지속해서 요청했으나, 징계위원회 측은 애초 이를 무시했다. 그러나 징계위원회 개최 몇 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소명하라고 하더라”며 “해당 직원들은 이사진에게 수십분 동안 해당 내용을 설명했지만, 단 1도 수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징계위원회 이사진에 변화가 없었다. 애초 피해자를 징계했던 이사진과 원심 유지를 결정한 이사진이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협회 측은 “징계위원회 규정상 및 관련 법률 상 재심을 하는 경우 구성원에 변화를 줘야 하는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취재 결과 징계위원회에 참여한 이사진과 임원 A씨 모두 선수 출신인 KPGA 회원이다.
한 프로스포츠 협회 관계자는 “정상적이라면 징계위원회 자체가 열릴 수 없다. 징계위원회 근거가 임원 A씨의 강요로 받은 시말서 및 각서다. 이 시말서 및 각서를 직원들이 어떻게 쓰게 됐는지 진상 파악부터 하는 것이 먼저”라며 “이러한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징계위원회 효력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과정에서 김원섭 KPGA 회장이 결재를 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프로스포츠 연맹 관계자는 “KPGA 정관이나 규정은 모르겠지만, 타 종목의 경우 이런 케이스가 없다”며 “사무국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행정 업무를 보는 직원들의 징계를 선수 출신이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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