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안인산에서, 타자 안인산으로. 잠재력 충만한 공룡이 묵직한 첫걸음을 내디딘다.
2020년 10월31일, 프로야구 NC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이 확정된 지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최종전을 맞은 NC 마운드에 안인산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야탑고 시절 장기였던 시속 150㎞의 패스트볼을 프로 무대에서도 거침없이 뿌리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투타 모두 재능을 드러내며 NC에 입단해, 자신의 바람대로 투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유를 보여주는 데뷔였다.
5년 남짓 지난 지금, 투수 안인산은 이제 없다. 공보다 방망이를 잡는 시간이 길어진 타자 안인산만 남았다. 고교 시절 시작된 어깨 부상 그리고 이어진 팔꿈치(토미 존) 수술이 결국 그의 피칭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 지난해를 기점으로, 그는 야구 인생의 방향키를 완벽하게 틀었다.
안인산은 “재활 과정에서 통증이 계속되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고민 끝에 빨리 투수를 접어야겠다고 결론 지었다”며 “23살에서 24살이 되던 때였다. 어떻게 보면 나는 대졸 신인 나이인 데다가 군 복무까지 마친 선수니까, 지금부터 도전하면 늦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고 결단의 순간을 돌아봤다.
아직 성공이라는 글자를 새기기에는 모자람이 많지만, 희망의 빛줄기가 꽤 굵다. 전향 2년 차인 올 시즌, 퓨처스리그를 폭격한다. 28경기 타율 0.381(84타수 32안타) 9홈런 2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203의 화려한 숫자를 적어냈다. 지난해 퓨처스 타율 0.141에 그쳤던 그의 드라마틱한 성장세다.
그는 “올해는 확실한 노림수를 가지고 타석에 들어가는 걸 첫 번째로 뒀다. 원래는 직구와 변화구 중간 타이밍을 잡으면서 보이면 다 치겠다는 마인드였는데, 그건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통하지만 퓨처스만 돼도 통하지 않더라. 그 생각을 바꾼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중”이라고 스텝업의 이유를 밝혔다.
덕분에 1군 콜업이라는 경사를 마주했다. 지난 올스타 휴식기 ‘N팀 투어’로 이호준 감독 앞에서 눈도장을 찍은 그는 지난 5일에 생애 처음 야수로 엔트리에 등록됐다. 곧장 선발 출전했다. 안타는 없었지만, 희생플라이로 데뷔 첫 타점을 만들어 잊지 못할 순간을 써냈다.
“올해 초만 해도 D팀(재활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C팀(2군)은 말할 것도 없고, N팀(1군)은 너무나도 먼 곳이었다”는 그는 “우연찮게 부상 선수가 생기면서 C팀으로 왔고, 여기서 버티자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매일을 보냈다. 그 끝에 기회가 이어지고 있다.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부분이 정말 기쁘다”고 활짝 웃는다.
자신을 향한 채찍질도 잊지 않는다. 그는 “투수로서 ‘원래 내가 이 정도 했는데’라는 마음을 모두 비웠다. 새 출발선에서 모든 걸 다시 배운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주변에서도 어떻게든 야구를 붙들고 있으면 기회가 온다고 조언해줬는데, 그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믿고 절실하게 이 기회를 잡아보겠다”는 당찬 메시지를 띄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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