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생 역전골, 묘생 홈스틸… 유기견·길냥이 삶 바꾼 그라운드

-K리그 전북현대 홈구장서 유기견으로 발견됐다 팬에게 입양된 ‘엔북이’
-KBO리그 SSG랜더스 홈 그라운드 달리다 구장 직원에게 입양된 ‘도루’
23일 K리그1 전북현대-강원FC전이 열린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매치볼 딜리버리로 나선 엔북이와 보호자. 엔북이는 전북현대 N팀(2군) 경기 도중 발견된 유기견으로, 최근 전북팬에게 입양됐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견생 역전골’에 ‘묘생 홈스틸’이다. 유기견과 길고양이가 각각 축구장과 야구장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최근 K리그와 KBO리그 그라운드에서 연거푸 이뤄진 작은 기적이다.

 

◆유기견에서 반려견 된 ‘엔북이’… K리그 홈경기 잔디도 밟았네!

 

지난 23일 프로축구 1부리그 K리그1 전북현대-강원FC전이 열린 전주월드컵경기장에 특별한 손님이 방문했다. 두 달 사이 유기견에서 반려견으로 거듭난 ‘엔북이’였다. 이날 엔북이는 킥오프 직전 경기에 쓰일 축구공을 심판에게 전달하는 매치볼 딜리버리로 나서 홈팬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엔북이는 지난 5월10일 전북현대의 N팀(2군) 홈경기가 열린 완주공설운동장에서 발견됐다. 당시 모습 등으로 유추했을 때 유기견일 가능성이 높았다. 구단 관계자의 신고를 하면서 완주군유기동물보호소로 이동했다. 이러한 사정을 전북현대 주축 수비수인 김태환이 SNS에 공유했고, 이를 본 전북현대 팬이 입양을 결정했다.

 

완주에 거주하며 10년 넘게 전북현대를 응원 중이라는 이 팬은 “마침 그날 N팀 경기를 응원 하러 갔다가 엔북이를 직접 봤다. 보호소에서 보호기간이 끝날 때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돼 입양을 결심했다”고 “몰티즈 두 마리를 돌보고 있고 이전에 샴고양이를 키운 적도 있어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자연스럽다. 가족들도 동물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엔북이와 함께 전북현대 로커룸에서 스페셜 유니폼 사진을 찍은 김태환. 김태환은 유기동물보호소로 이동한 엔북이의 소식을 SNS에 공유하면서 팬의 입양에 일조했다. 전북현대 모터스 제공 
전북현대 홈구장에서 스페셜 유니폼을 착용한 모델들과 강아지 엔북이. 전북현대 모터스 제공

 

앞서 엔북이는 전북현대의 스페셜 유니폼을 공개하는 SNS 게시물에도 등장했다. 홈구장 관중석과 로커룸에서 유니폼 모델, 선수들과 사진 촬영에 나선 것. 엔북이 외에도 2017년 홈구장 인근에서 다리를 다친 채 구조돼 사무국 직원의 반려견이 된 ‘돌돌이’, 주축 선수 송민규의 반려견 ‘쿠키’도 동참했다.

 

전북현대 관계자는 “공식 게시물에 구단, 선수, 팬과 연을 맺은 반려동물도 함께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특히 엔북이의 경우 근황을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아 잘 지내는 모습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엔북이 보호자도 “팬이자 엔북이 아빠로서 잊지 못할 영광스러운 날이었다. 귀한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드린다”며 “SNS 게시물의 댓글도 거의 다 읽었다. 엔북이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우리팀 응원가처럼 엔북이와 아름답고 행복한 동화를 평생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 외야 질주하다 홈스틸(?)… “우리 도루, 요즘 더 빨라졌어요”

 

프로야구팀 SSG랜더스는 길고양이의 묘생역전을 도왔다. 지난달 5일 홈구장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삼성라이온즈전 도중 갑자기 난입(?)해 외야 그라운드를 질주한 새끼 고양이는 삼성 외야수 구자욱의 글러브로 들어갔고 이내 홈구장 관리자에게 전달됐다. 이 상황은 TV중계 화면에 그대로 잡히면서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SSG랜더스 홈경기 중 구장에 난입(?)해 화제가 된 길고양이. 이후 홈구장 직원에게 입양돼 ‘도루’라는 이름을 얻었다. KBO 유튜브 갈무리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홈구장 관리 직원이 돌보고 있다는 소식이 구단 블로그를 통해 알려졌다. 고양이가 매우 어린데다 이미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탄 터라 어미 고양이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 있어 고민인 상황에서 반려묘를 돌보는 집사인 직원이 입양을 한 것이었다.

 

이 직원은 새 가족이 된 고양이에게 ‘도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 경기장에서 발견됐을 때처럼 새로운 집에서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이 마치 야구선수가 도루를 하는 것 같아서라고. 길고양이에서 집고양이가 됐으니 ‘홈스틸’에 성공한 셈. 동물병원을 찾아 검진도 했는데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로부터 한 달 여가 지난 가운데 해당 직원이 23일 구단 관계자를 통해 도루의 근황을 전했다. 도루 집사는 “그동안 정말 많이 컸다. 침대 위로 올라오거나 저의 배 위에 누워서 잠을 자기도 하고, 먼저 다가와서 놀아달라고 한다”며 “도루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한 것 같다. 저 역시 진짜 가족이 된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랜더스필드 구장 직원에게 입양되고 7주가 지난 도루의 최근 근황. SSG랜더스 제공
도루와 사월이가 스크래처 침대에 함께 누워있다. SSG랜더스 제공

 

중계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진 도루의 빠른 발도 여전하다고. 고양이 집사들이 흔히 표현하는 ‘우다다’를 수시로 한다. 도루 집사는 “다리도 엄청 길어졌다. 그 덕분인지 이전보다 훨씬 잘 뛰어다니는 것 같다”며 “아직 어려서 궁금한 게 많은지 방과 거실을 오가며 달린다”고 말했다.

 

도루 집사는 본래 모시는 반려묘 ‘사월이’가 있어서 도루를 데려올 때 합사 걱정이 있었다. 서열 다툼(?)이 없지는 않았다고. 도루 집사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둘이 가까워졌다. 서로 마음을 연 것 같다”며 “밥도 같이 먹고 잡도 같이 잔다. 도루가 누워있으면 사월이가 다가와서 낑겨서 자는 모습을 몇 번 봤다”고 웃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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