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는 배우 강하늘의 장점이 고스란히 발휘되는 작품이다. 영끌족과 코인, 층간소음이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내세운 이 작품은 보는 내내 시청자의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상당히 수동적인 주인공 우성은 주체적으로 상황을 끌어가기보다 오히려 주변 인물들에게 이리저리 휩쓸리며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주인공의 답답한 상황에 보는 사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럼에도 시청을 멈추지 않고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작품을 끌고 가는 주연 배우 강하늘의 힘 덕분이다. 현실감 넘치는 그의 디테일한 연기는 극한의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작품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할 정도로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나아가는 강하늘의 연기는 영화를 끄고 싶어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공감대를 극대화한다.
영화는 아파트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영끌족 우성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층간소음에 시달리며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를 담았다. 강하늘이 연기한 우성은 겨우 내 집 마련에 성공했지만 밤마다 울리는 층간소음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웃으로부터 아예 범인으로 의심받기까지 한다. 아파트값 하락과 빚더미에 몰린 상황 속에서 마지막 탈출구로 집을 팔고 받은 계약금을 코인에 넣어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강하늘은 주인공 우성에 대해 “대범하다기보다는 귀가 얇다는 게 맞겠다. 승부사 기질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수동적이고 소심하다”고 설명하며 “수동적인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그래야만 인물이 겪고 있는 상황들의 답답함이 그려질 것 같았다. 능동적인 캐릭터라면 상황을 하나하나 헤쳐나갈 수 있는 파훼법도 찾을 것 같다”고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을 밝혔다.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남달랐다. 보통 대본은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이 많다면 이번 작품의 대본은 오히려 간결했다. 강하늘은 “대본을 읽는데 그냥 감독님이 떠올랐다. ‘감독님이 이런 스타일이겠구나’ 싶은 대본이었다. 글도 간결하고 짧게 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다”며 “영화를 보듯이 재미있게 읽었다. 빠른 호흡으로 적혀 있는 시나리오를 굉장히 오랜만에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첫인상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시청자는 악화일로로 치닫기만 하는 우성의 상황에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토로한다. 대본을 읽을 당시 강하늘도 마찬가지였다. 강하늘은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았다”면서도 “다른 작품들도 재미 포인트라고 하는 것들이 각자 다르다. 그게 우리 작품이 주는 여러 가지 재미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다만 우성이 내리는 선택이 모두 공감이 되진 않았다. 극 중 우성은 월급, 대출, 퇴직금 중간 정산 등 본인 명의 자산뿐 아니라 어머니의 시골 논밭 등 부모님 재산까지 처분한 돈 모두를 끌어모아 아파트 계약금과 잔금을 마련한다. 또 코인에 투자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에게 전부인 집을 팔고 계약금을 받아 투자를 올인한다.

강하늘은 “무리해서 집이나 차를 산다든지 하는 경우는 주변에도 꽤 많다”면서도 우성에 대해서도 “이해는 갔지만 사실 공감은 어렵다. 제가 모든 걸 다 때려박아서 올인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저는 그러더라도 비상구는 만들어 놓는다. 다른 건 다 팔아도 엄마 땅은 남겨놓든가”라고 본인과 인물 간 차이점을 설명했다.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부분은 층간소음 범인으로 오해 받은 우성이 경찰에 체포돼 경찰서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장면이다. 작전주에 올인한 뒤 정확한 날짜와 시간에 매도해야 최고점의 수익률로 팔 수 있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경찰에 잡힌 것이다. 우성이 어떻게든 탈출하고자 하는 장면은 극의 긴장감과 압박감이 극도로 올라가는 순간이다. 강하늘과 제작진이 생각한 영화의 하이라이트도 바로 이 장면이다.
강하늘은 “그 장면을 4일 동안 시간을 들여서 찍었다. 컷이 끝날 때마다 감독님과 정말 많은 상의를 했다”고 치열했던 현장을 회상했다. 이어 “혹여나 제가 잘못해서 그 장면이 코미디 영화처럼 나와서 쌓아온 긴장감을 갑자기 코미디로 전환시키게 되지 않을까 가장 경계했다”며 “톤 잡는 것에 시간을 많이 쏟았다. 저와 감독님은 거기서 ‘웃픈’ 느낌을 내고 싶었다.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으로 보이고 싶었다”고 의도했던 바를 전했다.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해당 신을 찍었을 때다. 강하늘은 “말이 4일이지 진짜 치열하게 찍었다. 매 컷이 끝날 때마다 ‘다른 버전으로 찍어볼까요’ 하면서 다 나눠 찍었다”며 “그리고 그 장면은 낮밖에 못 찍는다. 해가 지면 못 찍는 거니까 아침부터 모여서 낮까지밖에 못 찍어서 그 4일을 온전하게 다 쓸 수도 없었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제대로 찍어야 하다 보니까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고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시사회 때 처음 작품을 봤는데 그 장면에 다들 소리를 지르시더라. 그래서 감독님과 내가 원하는 느낌대로 장면이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뿌듯함을 표현했다. 또한 “그 장면에서 우성이 화면이 깨진 휴대폰과 모니터를 같이 보고 있는데 사실 촬영할 때는 멀쩡한 휴대폰을 갖고 찍었다. 깨진 화면을 CG로 만들 예정이었다. 그래서 화면도 블루 스크린을 띄워놔서 ‘내가 이렇게 연기해도 되나’ 하는 생각으로 촬영했다. 저도 막상 작품을 보는데 보면서 화면이 깨져 있더라. 깨진 것도 다 CG로 만들어낸 거라 진짜 그럴싸했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 뒤 우성은 고향에서 정장을 차려 입고 다시 자신의 서울 집으로 올라가 텅 빈 거실에서 허탈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 또한 여러 장면을 찍어놓고 편집 과정에서 감독이 엔딩을 결정한 것이었다. 강하늘은 “당시에 웃는 모습도 찍고 우는 것도 찍고 그냥 가만히 있는 버전도 찍었다. 또 층간소음이 여전히 들린다는 버전도 찍고 층간소음이 조용해졌다는 버전도 찍었다”고 비하인드를 공개하며 “열린 결말이라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삶은 계속 비슷한 상황으로 돌아간다.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는 이 정도 일 갖고는 어렵다’는 느낌을 주고자 했던 것 같다. 제 개인적인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강하늘이 생각한 우성의 엔딩 이후의 삶은 어떨까. 그는 “GTX 개통도 확정됐으니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라면서도 “제가 바라는 건 우성이가 그걸로 한바탕 크게 성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본전을 찾으면 좋겠다. 그걸로 성공해 버리면 우성이의 성격상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웃었다.
영화는 부동산 영끌, 하우스푸어, 코인 광풍 등 현실적인 소재를 녹여내며 청년세대의 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한 청년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구원을 얻지 못하는 상황은 쓰디쓴 현실을 풍자하는 듯하다.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해 강하늘은 “사실 작품의 메시지는 ‘연기자가 생각할 부분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제가 함부로 어떤 작품이 이런 메시지를 준다고 하기에는 편집이나 연출에 관여하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연기가 청년을 대변한다는 것에 손사래를 치며 부인한 강하늘은 “층간소음을 겪고 계신 분도 많지만 겪지 않은 분들도 많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뉴스를 보면서 ‘층간소음 때문에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런 분들이 우리 영화를 보게 된다면 층간소음에 대한 스트레스 등 조금은 그 문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3월 영화 ‘스트리밍’, 4월 영화 ‘야당’, 5월 ENA 드라마 ‘당신의 맛’, 6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3’, 7월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까지 누구보다 열일한 배우다. 강하늘은 “한 3년 동안 찍어놓은 작품들이 이번에 공개가 다 이렇게 됐다”고 머쓱하게 말했다. 이어 “3년 동안 열심히 찍기만 할 때는 친구들이 ‘너무 쉬는 거 아니냐’ 이랬는데 이번에 공개가 이렇게 되니까 ‘좀 쉬어라’ 하더라”라고 웃으며 “이게 참 재밌는데 이제 찍은 게 다 공개가 됐다. 그래서 또 한 2~3년 간은 못 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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