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다들 회복하는데…韓 영화계, 깊어지는 골

극장가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4월 17일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이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3월 극장 전체 매출액은 620억 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47% 감소했고, 관객 수도 45% 줄어든 644만 명에 그쳤다. 뉴시스 제공

 7월로 접어들면서 세계 대중문화계에선 상반기 결산을 일제히 쏟아내고 있다. 그중 영화계 결산 자료들이 흥미롭다. 성수기와 비수기 구분이 명확해 과거 대비 지표들이 산업 심리 흐름에 있어 가장 유의미한 부문이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의 메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 박스오피스는 올해 상반기 40억 달러 가까운 흥행고를 올리며 지난해 동기 대비 18% 성장을 이뤘다. 이는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올해야말로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를 완전히 벗어나 그 직전인 2019년 전체 박스오피스 기록을 ‘정상적으로’ 경신하는 해가 될 수 있으리란 얘기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후 극장용 영화산업의 일대 몰락 분위기는 세계 주요 영화시장 중 사실상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앞선 미국 사례만 해도 그렇다. 미국 ‘이니까’ 그토록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엄밀히 미국‘마저도’ 결국 회복해내고 있단 해석이 맞다.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2024년 극장 매출 회복 수준은 주요 영화시장 중 미국이 73.3%, 일본 90.6%, 프랑스 95.2%, 영국 79.3%, 독일 93.4%로 드러났다. 미국은 오히려 회복세가 더딘 축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그보다 훨씬 떨어지는 62.4%다. 비교 자체가 안 된다고도 볼 만하다. 더구나 이렇듯 눈에 띄게 더딘 회복 속도가 한국영화산업에 있어선 더 없이 치명적이다. 팬데믹 직전 기준 한국영화산업 수익의 75% 이상이 극장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2차, 3차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시장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럼 이 같은 ‘한국만 부진한’ 이유는 뭘까. 언론미디어 어디서나 제시되는 소위 ‘유주얼 서스펙트’들은 몇으로 추려진다. 먼저, 영화관 입장권 가격이 폭등한 탓이란 논리다. 확실히 영화관 입장권은 2020년, 2021년, 2022년 세 차례 인상되면서 현재는 2020년 인상 전 1만2000원(주말 기준)에 비해 25% 오른 1만5000원이다. 그런데 크게 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 불과 1000원 상승했던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팬데믹을 끼고 물가 폭등이 이뤄지며 단시간에 충격이 온 건 사실이지만, 10년 기간으로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단 것이다.

 

 예컨대 엄청난 회복세로 주목받는 미국만 해도 그렇다. 2014년 평균 입장권 가격 8.17달러에 서 2024년 11.31달러(뉴욕 등 대도시 경우 15~20달러)로 뛰었다. 약 39% 상승했다. 그동안 한국은 약 50% 상승했다. 상승 폭이 더 크긴 하지만, 애초 여타 주요 시장 대비 낮은 입장권 가격-한국보다 1인당 GDP가 약간 낮은 일본의 경우 주말 2000엔(한화 1만8710원), 평일 1800엔(한화 1만6839원)-이었던 데 비하면 나름 ‘현실화’ 차원 보정치라고도 볼 만하다.

 

 여기서 골자는 지금의 가격이 적절한지 차원이 아니다. 애초 그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해오던, 또는 근접한 가격 상승 폭을 보인 여타 주요 시장들은 위처럼 90% 이상 회복세도 나오고 있는데 어째서 한국은 62.4%에 머무르느냐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많이들 제시하는 두 번째 논리가 소위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푸념이다. 그런데 이것도 어딘지 이상한 해석이긴 마찬가지다. 지난해만 해도 그나마 62.4% 회복률을 ‘캐리’한 건 한국영화 쪽이었다. 한국영화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 대비 74.4%까지 회복됐다. 오히려 크게 부진했던 건 해외영화, 특히 절대 중심인 할리우드영화 쪽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할리우드영화들로 미국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여타 시장들도 마찬가지다. 이밖에 이른바 ‘OTT 대세론’ 등도 다 조건은 마찬가지다.

 

 한국만 OTT가 깔린 것도 아니고, 다른 주요 시장들도 모두 OTT가 활성화될 만큼 된 상황에서 90% 이상 회복세도 보인다. 극장 인력 감축에 의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도 가끔 거론되곤 하지만,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단 행동 심리에 있어 결정적 요소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럼 뭘까. 한국영화시장엔 대체 어떤 특이점이 더 있기에 이처럼 여타 주요 시장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 걸까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근본 원인은 단순하다. 영화로 줄기차게 몰리던 한국 대중이 이제 그에 쓸 돈과 시간을 ‘다른 여가’에 쓰는 것으로 보인단 것이다. 극장용 영화산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 국내 뮤지컬 시장은 팬데믹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2022년부터 급격히 성장해 지난해 뮤지컬 총 티켓 판매액은 4652억 원에 이르렀고, 대중음악 공연시장도 2024년 전년 대비 31.3% 상승하며 총 7569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연극 역시 지난해 전년 대비 16.5% 성장, 국내 공연시장 총매출은 역대 최대인 1조4537억 원을 기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포츠 시장 역시 활황세다. 지난해 1088만7705명 관중을 동원하며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한 KBO 리그를 중심으로 스포츠산업 전반에 걸쳐 2023년 기준 매출액 81조320억 원을 기록했다. 역시 역대 최대 규모다. 나아가 레저용 차량과 보트 시장 등도 전반적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 레저/액티비티 시장 붐을 이어가는 분위기.

 

 여기서 ‘순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시장이 폭락하면서 다른 문화/레저 분야들로 대중이 흩어진 게 아니라, 여타 문화/레저 분야들로 먼저 흩어지다 보니 이전까지 영화 하나로 쏠려 있던 문화/여가 풍토가 바뀌었단 순서. 짧은 시간 동안 이런 대변혁이 일어난 원인으론, 역시 2020년대 문화예술계 판도 전체를 뒤바꿔놓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들어야 한다. 외부 활동이 억제되며 미디어 소비량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폭등했던 팬데믹을 거치며 대중 각자가 그간 극장 영화관람 하나로 쏠려 있던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되돌아보고 자신에 맞는 문화 소비를 찾아 ‘알아서’ 흩어지게 됐단 논리다.

 

 그렇게 놓고 보면 과거가 특이한 상황이었을 뿐 지금 쪽이 오히려 ‘정상화’ 단계라고도 볼 만 하다. 여타 주요 영화시장들은 오랫동안 여러 문화/레저 분야들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환경이기에 팬데믹 이전 영화 관객들은 이미 여러 분야 중 유독 영화관람 쪽에 높은 만족도를 보이던 이들이므로 팬데믹 종료 후 회복세도 그만큼 빨랐던 셈이다. 그저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긴 시간 즐길 수 있는 여가이기에 영화관람을 택해온, 또는 단순히 ‘남들도 모두 그것만 하는 분위기’여서 영화관람을 택해온 분위기와는 애초 환경 자체가 달랐단 얘기.

 

돌이켜보면 대중문화 시장 내에서도 팬데믹 영향은 여러 군데서 발견되고, 그들 대부분이 ‘하나로 쏠려있던’ 흐름을 깨는 종류다. 대표적으로 대중음악 시장의 ‘J팝 열풍’ 등 해외 음악 붐을 필두로 수많은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연시장까지 함께 활성화돼 온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K팝 절대 중심으로 구성됐던 국내 음원 시장과 대중음악 공연시장 지각변동이 그렇게 팬데믹을 거치며 자신에 꼭 맞는 취향의 발견과 다양화 단계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단 것.

 

 그러니 한국영화산업 문제는 더욱 골이 깊어진다. 지금이 ‘비정상의 정상화’ 단계라면 여타 분야들로 문화/레저 시장이 잘게 쪼개진 상황에서 한국영화산업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할지 말이다. 그렇게 ‘남은 관객층’만을 대상으로 훨씬 낮은 제작비 책정을 통해서만 돌파해야 하는 걸까. 그럼 동시에 함께 낮아지는 프로덕션 밸류 문제는 또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 걸까.

 

 여러 고민이 밀어닥치는 시점이지만, 결국 K무비 역시 K팝, K드라마 예처럼 글로벌화를 통해서만 여러 문제가 해소 가능하리란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한국영화 글로벌화=해외 영화제 성과’란 인식도 이젠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수출을 통해 내수시장 한계를 돌파해 온 여타 부문들 사례를 연구해 볼 필요도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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