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K-팝 시장에서는 중년 팬들이 지갑을 활짝 열고 있다. 한때는 TV 앞에 앉아 가수를 동경하던 이들은 강력한 소비력을 앞세운 적극적 소비자로 변모했다.
◆트로트도, 아이돌도 중년층 팬덤 확대
K-팝 팬덤의 주축이 1020세대에서 30대를 넘어 4050세대까지 확장되고 있다. 젊은층이 줄어드는 인구 구성의 변화도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중년층의 경제적인 여유가 결정적이다. 과거에는 용돈을 아껴가며 앨범 1장 사는 데 만족했다면 이제는 실탄을 갖춘 덕질로 아낌없는 지출을 감행하며 아티스트의 성장에 실질적인 힘을 보태고 있다.

2010년대 후반 트로트 오디션 열풍이 불었고, 중장년층 팬들이 가요시장의 소비자로 대거 유입되면서 업계에 훈풍을 일으켰다. 임영웅 등의 가수들이 새로운 K-팝 스타로 부상하면서 구매력을 가진 장년층 팬들은 본격적으로 팬덤 활동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연장으로 손꼽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틀간 콘서트를 연 임영웅은 오픈 수십초 만에 초고속 매진시키는 티켓 파워를 보여줬다.
중년층의 위력은 트로트 시장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글로벌 인기를 누리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40대 이상 중년 팬들이 막강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활발하게 팬 활동을 벌이고 있는 스타다.

문화 콘텐츠 플랫폼 알라딘이 BTS 멤버의 군입대 직전인 2023년 판매한 음반 소비자 집계에 따르면 팬덤 연령층 비중은 30대 27.4%, 40대 15.9%, 50대 이상 12.3% 등으로 나타났다. 4050세대가 30%에 육박한다. 30대를 포함하면 절반 이상인 55.6%에 이른다.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 등 데뷔 20년 차 전후의 아이돌 그룹의 팬덤 또한 가수와 함께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팬층이 두터워졌다.
◆음반·음원·공연 등 10대보다 열정적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K-팝 음반 소비 실태 조사(2023)에 따르면 팬들의 절반 이상이 굿즈 수집을 목적으로 음반을 구매하며 평균 수량은 4.1장, 최대 90장에 달했다. 앨범의 경우, 고정 수입이 없는 10대보다는 월급으로 ‘현질’이 가능한 30대 이상 팬층이 대량 구매를 주도했다. 실제로 K-팝 팬덤 내에서 “포토카드 뽑기 위해 한 앨범을 수십장 산다”는 이야기는 주로 직장인 중심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나온다.
4050 중년층은 공연 시장에서 지갑을 활짝 열고 있다. 티켓 예매 플랫폼 예스24가 자체 집계한 연도별 콘서트 티켓 구매자 연령 데이터를 살펴보면 50대 이상 구매자 비율은 2019년 5.5%에서 2022년 9.7%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온라인 결제에 익숙지 않은 부모를 대신해 자녀가 예매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중년층 관객 비중은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음원 서비스 이용 시간에서는 50대 이상 중년층의 활동이 뚜렷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분석한 2012∼2022 모바일 음악콘텐츠 이용 시간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50~59세의 월평균 모바일 음원 서비스 이용 시간은 19억8000만분으로, 13~18세의 2배에 달한다. 2017년 이후 10대의 이용 시간은 감소세를 보인 반면 50대 이상은 꾸준히 증가해 2022년에는 10대를 앞질렀다. 중년층이 아이돌 음악을 포함한 K-팝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들은 유료 팬클럽 멤버십이나 팬덤 전용 플랫폼 구독은 기본이며, 아이도키 등 각종 서포트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아티스트 생일·데뷔일 등을 기념한 기부가 활발하다. 임영웅·이찬원 등의 팬덤은 매년 스타의 생일마다 그의 이름으로 복지시설이나 NGO 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한다.

실제 지난 4월 임영웅의 팬클럽인 영웅시대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해 무려 6억1000만원을 기부했다. 또 대형 카메라를 들고 아티스트를 촬영하는 이른바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들은 포토북이나 달력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다시 아이돌의 생일이나 해외 영상 광고 등으로 크게 집행한다.
임수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팬덤 활동에 대한 인식 개선과 아티스트 활동 기간이 길어지며 팬덤 연령층이 확장되는 추세”라며 “구매력이 높은 연령층의 유입으로 전체 소비액이 증가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이성적 감정 대신 보호 심리↑
중년 팬심의 특징은 스타를 단순히 이성적으로 동경하거나 연애 감정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고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돌 그룹의 경우 “우리 아이들 잘 컸으면 좋겠다”는 정서가 강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시니어 팬덤은 스타의 실수나 논란에도 쉽게 등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자녀를 감싸듯 더 큰 포용력과 보호 본능을 드러낸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10대처럼 열광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불과 몇 년 사이 40대 이상 팬덤 연령 비율의 증가가 체감된다. 한 번 좋아하면 쉽게 떠나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이라며 “아티스트 입장에서도 더 오래,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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