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19년 차 박보영은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별다른 위기 없이 꾸준한 인기를 이어온 보기 드문 배우다. 영화 ‘과속스캔들’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뒤 영화 ‘늑대소년’·‘너의 결혼식’와 더불어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힘쎈여자 도봉순’ 등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종횡무진하며 하락세 없는 활약을 펼쳤다.
다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고착화돼 비슷한 캐릭터에 머물러 있다는 일부의 평가도 존재했다. 이러한 평가를 뒤집은 작품이 바로 지난 29일 종영한 tvN ‘미지의 서울’이다. 이번 작품에서 박보영은 1인 2역이라는 도전적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한층 깊어진 연기력으로 시청자와 평단 모두를 사로잡았다. 이미 작품이 끊이지 않는 톱배우 반열에 서 있지만 박보영은 ‘미지의 서울’을 통해 앞으로의 배우 인생을 ‘미지’가 아닌 ‘확신’의 길로 활짝 열었다.
작품에서 박보영은 쌍둥이 자매 유미지와 유미래 역을 맡아 1인 2역을 넘어 각각의 인물이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가는 상황까지 연기하며 사실상 1인 4역을 소화했다. 밝고 솔직한 시골 여성 유미지와 묵묵하고 감정 표현이 서툰 서울 직장인 유미래의 성격 차이를 세밀한 연기 톤과 표정, 말투로 완벽하게 구분해냈다. 감정의 깊이와 미묘한 디테일, 그리고 시청자 공감까지 모두 충족시킨 활약은 박보영이 아니면 그 누가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란 평가다.

드라마 종영을 앞둔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BH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박보영은 폭발적인 반응을 예상했는지 물음에 “워낙 글이 좋았기 때문에 드라마에는 자신이 있었다”면서도 “제 연기에 대한 자신은 사실 별로 없었다”고 솔직하게 소감을 전했다.
박보영은 “감독님이 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1화 1차 편집본을 먼저 보여주셨는데 저는 오히려 보고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오는 제 목소리와 TV에서 송출되는 목소리 톤이 생각보다 차이가 별로 안 나더라. (유미지와 유미래) 톤을 두 개로 나누다 보니까 미스가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래서 자신감이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다음 촬영들은 계획했던 것보다 톤을 더 나눴다. 편집본을 원래 잘 안 보는 편인데 이번엔 그래도 초반에 봐서 이후의 톤을 잡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덧붙였다.
1인 2역 연기를 두고도 박신우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박 감독은 촬영 전 박보영에게 “1인 2역에 대한 부담감이 당연히 있겠지만 (평소와) 너무 다르게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보영이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대사 톤을 쓰기보다는 디테일을 조금씩 잡아 차이를 두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박보영은 “그런 디테일한 부분을 감독님과 열심히 잡아갔다. 현장에서도 감독님이 많이 도와줬다”고 감사를 전했다.

실제로 박 감독은 현장에서 디테일한 디렉팅으로 배우들을 잡아줬다. 한강에서 유미래인 척 하는 유미지와 이호수(박진영)의 대화 장면에서도 박 감독은 “미지 모드로 살짝 시작해서 미래로 넘어가다가 거기서 미지로 돌아오다가” 등을 박보영에게 주문했다.
박보영은 “그게 대본에도 쓰여 있었다. 감독님도 그렇게 설명을 해주셨다. 오히려 눈높이에 맞는 디렉팅이었다. ‘이 대사까지는 미래로 하고 여기서 잠깐 미지로 했다가 여기서는 다시 미래로 하는 거구나’라고 느껴져서 ‘그냥 미지가 튀어나오게 해주세요’보다 오히려 쉬운 디렉팅이었다”고 설명했다.
1인 2역 연기의 특성상 한 촬영장에서 박보영은 유미지와 유미래를 왔다갔다 해야 했다. 한 프레임 안에 두 사람이 동시에 나온다면 고생은 두 배가 된다. 박보영은 “그게 진짜 괴롭다. 대본이 나오면 미지와 미래가 같이 나오는 게 있는지 제일 먼저 체크를 한다”고 웃었다.
이어 “미지로 먼저 풀샷과 바스트샷을 다 찍고 미래로 옷을 갈아입은 뒤 거리와 각도를 똑같이 계산해서 다시 찍는다. 시간이 2∼3배는 더 걸린다. 기술적으로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아서 스태프들도 많이 힘들어 했다”고 쉽지 않았던 촬영을 돌아봤다.

밝고 사랑스러운 성격의 유미지는 기존의 박보영이 주로 보여줬던 텐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박보영은 “제가 잘하고, 많이 해왔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톤을 끌어서 연기했다”면서도 “다만 가족이나 특히 제 동생은 유미지보다 유미래가 저와 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니까 더 편해서 나오는 저의 긴장하지 않고 힘이 빠진 모습을 본다”고 말을 꺼냈다.
연기 스펙트럼이 밝은 캐릭터로만 인식되는 건 배우로서 분명 우려스러운 일이다. 박보영은 “방향성을 틀고 싶은 욕심도 있었는데 그게 너무 크게 틀어지면 (대중이) 낯설어 할 것 같았다. 저도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었다”며 “그래서 제가 갖고 있는 범위 안에서 다른 모습들을 조금씩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속마음을 꺼냈다.

그런 이유로 선택한 작품이 바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멜로무비’ 그리고 ‘미지의 서울’이다. 박보영은 이번 작품을 두고 “사람들이 (저의 모습으로) 익숙하게 생각하는 유미지도 있고,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미래도 있다. 그래서 저한테는 도전이자 욕심이 들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박보영의 바람은 욕심에 그친 게 아니라 현실로 이뤄졌다. 데뷔 이후 연기력으로만 극찬을 받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호평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방영 초반 박보영은 팬 소통 플랫폼 버블을 통해 팬들에게 “사람들이 나 잘한다고 하는 게 얼떨떨하다. 그러면서 무섭기도 하다”고 전한 바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박보영은 최근의 심경을 두고 “얼떨떨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작품을 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번에는 조금 어려웠고, 두 명의 캐릭터를 한다는 것만 조금 다른 마음가짐이었지만 사실 이전 작품들도 다 도전이었다. 똑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반응이 너무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늘 했던 대로 최선을 다해서 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엔 돌아오는 온도가 조금 다른 느낌이어서 사실 얼떨떨한 느낌이 있다”며 “요즘에는 제 주변도 보면 ‘최고작이다. 인생 캐릭터다’ 등 많은 표현이 저한테 막 밀려온다. 그동안 했던 작품 중에서도 연기가 정점에 이른 것 같다고 평가하는 분들도 많으시더라”라고 뿌듯해했다.

폭발적인 반응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어느 때보다 시청자 반응을 열심히 체크하고 있다. 최근에는 팬들에게 유튜버 천재이승국, 단군의 리뷰를 모두 봤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보영은 “리뷰해 주신 모든 분께 너무 감사드린다. 방영 초반에는 검색했는데 잘 안 나오더라. 그래서 너무 속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리뷰를 많이 해주셨다. 천재이승국님 같은 경우엔 ‘이걸 왜 안 봐요’ 느낌으로 드라마를 봐야 하는 이유 등 너무 잘해주셔서 초반에 안 본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해주셨다. 거의 저희가 부탁을 한 수준으로 잘해주셨다”고 천재이승국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또 “단군 님은 자기가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리뷰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그냥 일반인들이 보는 리뷰들도 엄청 많이 본다. 원래 그런 걸 많이 본다. 두려움에 클릭을 하는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미지의 서울’은 설레는 마음으로 눌렀던 때가 더 많다. 되게 웃으면서 보는 경우도 너무 많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앞으로의 전개를 잘 맞힐 때는 ‘우와, 저걸 어떻게 알지’ 하다가 어떨 때는 ‘저건 너무 틀렸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한다”고 웃었다. 아울러 “최근에 OTT 드라마를 꽤 하다가 이렇게 방영을 하는 드라마는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것도 오랜만에 느꼈다. 사실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저도 많이 찾아보게 되는 건데 그게 너무 오래된 것 같다”며 “‘그래, 이런 맛이 있었지’ 이런 걸 너무 행복하게 느끼고 있다”고 행복한 근황을 전했다.
차기작 또한 새로운 도전이다. 내년 방영 예정인 디즈니+ ‘골드랜드’에서 주연으로 활약한다. 밀수 조직의 금괴를 우연히 넘겨받게 된 주인공 희주가 금괴를 둘러싼 여러 군상들의 탐욕과 배신이 얽힌 아수라장 속에서 금괴를 독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벌이는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박보영이 주인공 김희주 역을 맡아 극의 중심을 이끈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사로잡혀 변화해 가는 김희주를 연기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연기 변신을 선보일 예정이다.
박보영은 “제가 안 해봤던 장르인데 캐릭터도 엄청 어둡다. 제가 했던 것 중에 제일 어둡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 톤 자체도 어둡고 범죄물도 섞여 있어서 제가 처음 해보는 장르”라고 작품을 소개하며 “어둠의 정점인 작품을 찍어보고 다시 밝은 걸 해보겠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유미지를 하면서도 톤 다운을 했는데 희주를 하면서도 그게 남아있어서 너무 힘들다. 최근 몇 년동안 (감정을) 누르는 역할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밝은 걸 해야겠다, 달라져야겠다’ 싶다. ‘골드랜드’ 끝나고 차기작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때는 가볍고 밝은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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