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병드는 韓스포츠] 익명 뒤 범죄입니다… 팬심을 빙자한 ‘폭력’ 법조계 시선은?

사진=뉴시스

 

“거, 욕 좀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단순 비판을 넘어 악성 댓글(악플)과 인신공격, 가족에 대한 비방까지. 팬심을 빙자한 폭력은 이제 프로스포츠 전반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몇 년간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은 꾸준히 증가세를 보여왔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으로 접수된 사건은 2021년 2만8988건, 2022년 2만9258건, 2023년 2만4252건으로 최근 계속 2만건을 웃돌았다. 이 가운데 검거 수는 2014년만 해도 6241건에 불과했지만, 2021년 1만7243건, 2022년 1만8242건, 2023년 2만390건 등 거듭 올라가는 추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팬들의 관심을 받는 운동선수들 또한 악플로 인한 주된 피해자들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거쳐 다이렉트메시지(DM) 비난 및 욕설, 각종 플랫폼에서 유포되는 비방 영상 등으로 인한 스포츠 선수들의 피해가 극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럼에도 악플러에 대한 처벌 수준은 여전히 미약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는 형법상 명예훼손보다 법정형이 무겁지만, 실제 판결서 벌금형, 기소유예 등으로 이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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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포츠 구단 관계자는 “선수가 고소를 결심해도 신경 쓸 게 많아 흐지부지되는 게 여럿이다. 또 시즌 중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멍든 가슴으로 속을 썩이는 모습도 봤다”고 한숨을 내쉴 정도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을 지낸 법무법인 지암의 김선웅 변호사는 “(악플 관련) 고소를 실행으로 옮기는 선수들이 법적 절차에서 부딪히는 벽이 많아 끝까지 진행하지 못할 경우가 생긴다. 선수가 직접 관여를 어느 정도 해야 하고, 쏟는 노력만큼이나 (선수가 받는) 스트레스도 과중해 여러모로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최근 악플 규제와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스포츠 업계도 눈과 귀를 쫑긋한다. 다만 김선웅 변호사는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스포츠 산업에선 위험한 접근일 수도 있다. 특히 팬들이 감정적으로 표현한 걸 엄격하게 법으로만 다스릴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중요한 가치를 해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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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서온의 김가람 변호사는 “흔히 공인이라고 하지 않나. 운동선수는 팬들의 관심과 소비를 통해 존재하는 직업군인 만큼, 일반인보다 더 넓은 범위의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한도)가 요구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 선을 넘은 인신공격이나 가족에 대한 비방이라면 일상생활을 해치는 수준으로 명백한 처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김가람 변호사는 “최근처럼 SNS의 DM이나 커뮤니티 게시글을 통한 비방이 선수 일상까지 침범하는 양상에서는 구단과 매니지먼트사, 선수협회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오히려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고, 일정 수위를 넘는 악성 표현엔 단호하게 조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익명성에 기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선수들이 보호받을 최소한의 경계를 어디에 둘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판과 비난 사이, 책임 없이 써 내려간 단어들이 남긴 상흔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는 팬심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폭력을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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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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