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세라는 숫자를 비웃는 액션, 한계를 넘는 연기. 배우 이혜영이 영화 파과에서 이를 증명해냈다.
파과(민규동 감독)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열악한 개봉관 수에도 불구하고 개봉 4주차에도 네이버 평점 8.07점을 이어가며 관객의 꾸준한 선택을 받고 있다.
29일 이혜영은 “요즘 젊은 친구들이 시나리오가 없다고 하던데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저도 이런 정도의 작품을 늘 만났던 건 아니에요. 그래서 더 특별하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부문을 통해 첫 공개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민규동 감독님이 소설을 보라고 해서 접하게 됐다. 읽고 나니 오히려 ‘이 할머니에 왜 나를 생각하지? 내가 이 정도 할머니는 아닌데?’ 싶었다”라고 말해 현장의 웃음을 자아낸 이혜영이다.
이어 “그럼에도 이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고, 이름도 멋있다. 그 힘이 궁금하고 부러웠다. 힘이 부러웠고 능력 있는 할머니잖나”라며 “이후에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소설하고는 다르더라. 머릿속으로 상상이 되지 않았다. 편하게 배우를 하는 것보다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에 결정하게 됐다”라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또 다른 이유는 민 감독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혜영은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의 팬이라며 “이번 영화를 통해 배운 게 많다. 지금까지 저의 느낌대로 연기를 했다. 현장에서 감독이 제 연기에 따라 현장을 바꿔줬다”며 “이번엔 달랐다. 민 감독이 콘티 안 읽어봤냐고 하더라. 스태프 100명이 읽고 약속한 건데 선배님 혼자 안 보고 나오시면 어쩌냐고 뭐라고 하더라.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기술적으로 연기하면서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는 감독님 생각이 있으셨구나 싶더라. 배우로서 가야할 방향에 대해 한 수 배웠다”라고 말했다.
민 감독이 이 작품 액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짜처럼 보이면 안 된다’이다. 리얼리티를 살린 강렬한 액션에 이혜영은 “목숨 걸고 촬영을 끝냈다”라고 후일담을 전한다. “하필이면 액션 첫 날부터 부상을 입었다. 이태원 클럽 촬영 장면이었다. 2박 3일 동안 찍는 일정이었는데 첫날 싱크대에 부딪히면서 갈비뼈 하나가 부러졌다. 시간 안에 촬영을 마쳐야하니 강행했는데, 이후에 2개가 더 부러졌다”며 “나는 정말 몸바쳐 하고 있는데, 회복이 더뎌서 ‘나 나중에 배우 못하는 거 아니야’라는 공포까지 오더라. 지금은 다 나았다”라고 설명했다.

투우를 연기한 김성철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조각과 투우의 관계는 김성철의 힘으로 만든 것”이라면서 “조각에게 성적 매력이 느껴진다는 후기가 있다. 전적으로 김성철 덕이다. 저돌적이면서 청순한 힘이 있었다. 성철이가 한 살만 더 먹어도 안 될 것 같다. 얘만 갖고 있는 매력”이라고 했다.
조각은 마지막 내레이션을 통해 나이듦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을 내비친다. 배우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혜영은 “제가 배우를 시작했을 때엔 여자배우들의 역할은 주로 남자배우들을 서포트하는 거였다. 멜로 장르에서 욕망의 대상이거나 혹은 코믹한 롤이거나 귀신 같은 역할이 주였는데 이제는 독립적인 캐릭터로서 그 영역이 다양해졌다. 배우를 떠나서 늙든 젊든 남자든 여자든 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각을 연기하면서 한 번도 특별하게 늙은 여자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녀가 지닌 놀라운 힘만을 생각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5월 연예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배우다. 파과와 6월 1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헤다 가블러까지 스크린과 무대에서 대중을 만나고 있다. 이혜영은 “연극 무대를 좋아한다. 무대가 끝나는 날까지 완벽하지 않다. 오는 관객에 따라 새로운 연기가 나온다. 청순함과 노련함이 요구되는 게 연극의 매력”이라며 “연기를 하며 모든 역할들이 고통스러웠고, 연기를 하며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저는 쓸모 있는 배우로 살아남겠다”라고 각오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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