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보다 중요한 것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지난달 2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오후 3시의 예술정책 이야기’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주제는 예술지원 기관의 역할과 지원체계 개선으로, 예술 분야 대표 지원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중심으로 각 기관의 역할에 대해 심도있게 의논하고 지원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뉴시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민족의 독립은 문화의 독립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이는 단지 정치적 독립을 넘어 문화와 예술이 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나아가 자주적인 삶을 위한 중요한 기초가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들어봤을 익숙한 발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계와 문화예술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대선정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시기, 대선후보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가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 이른바 K-팝은 전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한류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가 됐고 BTS, 블랙핑크, 아이브, 스트레이 키즈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성공 너머에 자리한 그늘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예비 아이돌과 음악인이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길의 끝에 행복만 있는 게 아니다. 연습생 시절부터 이어지는 장시간 노동과 경쟁은 미성년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청춘은 철저히 소모되지만 극소수의 이들만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된다. 데뷔의 기회라도 받았다면 다행이다. 중소형 기획사나 인디 아티스트들의 활동은 대형기획사 소속의 그들과는 시작부터 다른 출발선이다. 

 

K-팝이 아닌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현실은 잔인하다. 대다수 예술인은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법적 보호에서 소외돼 있다. 계약서 없이 활동하거나 단기 프로젝트 단위로만 일하며 생계와 창작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예술인 절반 이상이 연 소득 1000만원 이하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에는 정신건강 문제까지 사회적 이슈로 불거진다. 과도한 경쟁, 불안정한 생활, 악성 댓글과 외부 평가에 시달리는 예술인들은 정서적 위기에 노출돼 있다. 반복되는 안타까운 소식이 그칠 줄 모른다. 이외에도 수도권 중심의 문화예술 구조가 지역 예술인의 기회를 차단하고 있고, 정권에 따라 지원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과거도 우리는 많이 봐왔다.

 

다음달 3일이면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그간의 혼란스러웠던 과정은 잊고 이제 대한민국의 5년을 새롭게 책임질 인물을 선택해야한다. 그런데 조기대선이라곤 하지만 문화예술계에 대한 공약은 수박겉핥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각 후보마다 경제, 외교, 안보, 부동산, AI 등 이른바 핫한 키워드만 다루고 있다. 한 후보는 시장규모 300조원, 문화수출 50조원 시대라는 대전제를 걸고 예산증액, 세제혜택 등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시행될 지는 미지수다. 나머지 후보들은 제대로 된 공약조차 없다.

 

그동안 정부는 K-콘텐츠 수출 증가, 한류 확산을 공적인 양 자랑해왔다. 하지만 실상은 몇몇 대형기획사의 전략 및 제작 콘텐츠의 성공으로 인한 결과일 뿐이다. 정부는 한류의 확산보단 그 뒤에 숨어있는 그늘을 지원하며 문화예술계 전체의 상생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제2의 블랙핑크와 오징어게임도 좋지만 이름모를 백댄서와 조연배우를 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불공정 계약을 근절하고 힘든 현실에 놓인 예술인의 사회적 권리를 보호하며, 지역과 다양한 장르를 포용하는 방향성이 필요하다.

 

대선까지의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누가 국민의 선택을 받든 대통령 당선자는 문화예술계 전체를 바라봤으면 한다. 한 예술인이 “이젠 음악만 하며 살 수 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문화강국이다.

 

권기범 연예문화부장



권기범 기자 polestar174@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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