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직장인 이수진(가명)씨는 최근 어렵게 예약한 옥수동의 한 식당에서 행복한 저녁 식사를 즐겼다. 언제 또 예약할 수 있을지 몰라 대표 메뉴인 머쉬룸 수고 파스타를 비롯해 각종 다양한 음식을 맛봤다. 해당 식당은 흑백요리사에서 최종 4위를 한 윤남노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씨는 실험적인 레시피를 도전한 윤 셰프의 모습에 팬이 됐다. 스타 셰프의 요리를 실제로 맛보는 경험을 위해 큰돈을 썼지만 아깝지 않았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를 중심 주제로 삼은 콘텐츠들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에는 오락성이 짙은 프로그램들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일상과 밀착한 소재가 시청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변화의 배경에는 삶의 방식이 점점 개인화되고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적 흐름이 있다. 주거 공간은 거주지를 넘어 자신을 표현하는 공간이 됐고, 식사는 생존 수단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감성을 나누는 중요한 매개다. 나를 가꾸고 표현하는 미용과 스타일 역시 외면적인 꾸밈을 넘어 자기 존중의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의식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재인 동시에 삶의 방식과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주제가 된 셈이다. 그 중 방송계의 스테디셀러 중 독보적인 콘텐츠는 음식 예능이다. 이른바 먹방과 쿡방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주제로 십수년동안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음식예능의 한계를 지적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콘셉트를 변화하시키며 발전했고 이젠 대한민국 문화의 한 축이 됐다.

◆집방과 뷰티 예능의 진화
‘집방’ 예능의 시작은 2015년 헌집 줄게 새집 다오(JTBC), 내 방의 품격(tvN),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XTM) 등의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저비용으로 집을 수리하거나 꾸미는 셀프 인테리어에 초첨을 맞춰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내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나 1인 가구의 공감을 이끄는 내용이 관심을 얻는다. 대표적으로 2019년부터 방송되고 있는 구해줘 홈즈(MBC)는 내 집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고민을 예능의 형식으로 풀어내며 시청자에게 간접적인 집 구하기 체험과 함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 12년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장수 예능 나 혼자 산다(MBC)는 1인 가구의 현실과 개성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예능으로 자리잡았다.
‘의’는 단순히 패션을 넘어 뷰티와 자기 관리, 스타일링으로 확장된 개념으로 사용되는 모습이다. 스타들이 입고 나오는 모든 옷이 다 정보가 되기 때문에 옷만 특정 포맷으로 사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뷰티 예능이라는 장르로 확장돼 자리잡았다. 연예인의 뷰티 루틴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부터 전문가와 함께하는 뷰티 대결, 일상 속 셀프케어를 보여주는 예능까지 미용을 중심으로 개인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드러내는 창으로 기능하고 있다.

◆독보적인 음식 예능, 흥행보증수표
‘음식·요리 예능’은 어떤 포맷보다도 가장 인기다. 음식은 세대나 계층, 성별을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한다. 예능 종류도 다양하게 진화해왔다. 2000년대 후반 플랫폼을 이용한 1인 방송이 등장하면서 먹방이 탄생했다.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대화하면서 공감과 재미를 이끌어냈다.
유행은 TV로 넘어와 식신원정대 시리즈(2008~2011·MBC every1) 등 먹방 예능을 만들어냈고, 2010년대 중반 푸드 전문 채널이었던 올리브는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리즈(2012∼2016), 한식대첩 시리즈(2013∼2016) 등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쿡방으로 포맷이 진화하면서 집밥 백선생(2015∼2017·tvN) 등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 흐름에 따라 간단한 집밥 레시피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생겼고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예능까지 등장했다.
음식과 관련된 포맷은 불패다. 지난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4개국 1위를 포함, 총 28개국 톱10에 올랐고 3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TV(비영어) 부문 1위라는 성과를 달성하며 한국 예능 최초의 기록을 경신했다. OTT 예능 최초로 한국 갤럽이 발표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1위에 두 달 연속 오르기도 했다. 출연 셰프들의 식당 평균 예약 증가율은 폭증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보다 다양한 식자재와 요리 방식, 음식에 담긴 이야기 등에 대한 대중의 이해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부분이 있다”며 “예능을 이끌어가는 셀러브리티 셰프 등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인재 풀도 넓어졌다”고 음식 예능의 꾸준한 흥행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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