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食) 예능, 문화가 되다] 방송가 점령한 음식 예능…“인물 의존 대신 재미·포맷으로 승부해야”

2014년 ‘냉장고를 부탁해’ 등을 시작으로 음식을 소재로 한 쿡방은 방송가 치트키로 자리 잡았다. 반복되는 포맷으로 주춤할 때도 있었지만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흑백요리사는 쿡방 콘텐츠의 건재한 위력을 증명했다. 전문가들은 “과거보다 미식 경험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며 대중의 가치관 변화를 쿡방의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2010년대 중반부터 방송가에는 쿡방 열풍이 불었다. 이전에는 주로 전문가들이 요리법을 소개하는 정보성 프로그램이 주류였다면 이제는 셰프가 방송 전면에 직접 등장하고 쿡방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포맷은 더욱 다양해졌다.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셰프들이 즉석에서 요리 대결을 펼치고, 출연진이 시골집에서 직접 식재료를 구해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자영업의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면서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취지까지 갖춘 프로그램도 흥행했다.

 

◆“요리 과정 자체를 즐겨”…대중의 인식 변화

 

삼시세끼 차승원, 유해진. 사진=tvN

 

쿡방이 안정적인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보장하며 방송가 치트키로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중의 라이프 스타일 등 가치관 변화를 꼽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쿡방은 요리를 하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먹는 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지만 요리는 그동안 분리돼 있었다. 성 역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에 여자는 요리하고 남자는 음식을 먹는 개념으로 구분됐는데 최근 몇 년간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쿡방의 다양한 변주와 인기 이유를 짚었다.

 

그러면서 “남녀와는 상관없이 요리 자체가 즐거울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혼자 음식을 만들면서 요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생기면서 쿡방도 함께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꿈꾸거나 하고 싶은 것들을 당장 이룰 수 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가 않다. 돈을 벌어서 집이나 차를 사는 건 굉장히 오래 걸리고 쉽지 않은데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먹는 건 바로 눈앞에 보이는 확실한 행복이다. 흔히 얘기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다는 점에서 쿡방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부연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미식 경험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보다 다양한 식자재와 요리 방식, 음식에 담긴 이야기 등에 대한 대중의 이해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기에 더해 외식 및 집밥 문화의 변화(캐치테이블 등 예약 애플리케이션의 성장)도 마찬가지”라고 인기 요인을 설명했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출연 셰프 이연복, 최현석, 김풍, 정호영(왼쪽부터). 사진=JTBC

 

쿡방 열풍과 더불어 기존의 연예인이 아닌 전문가 스타도 잇따라 탄생했다. 특유의 허세 스타일로 웃음을 준 최현석, 중식 대가 이연복, 웹툰 작가지만 요리 초보 콘셉트로 공감을 얻은 김풍,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계기로 스타 덤에 오른 백종원 등이 인기를 끌며 방송가에서 활약했다. 이 교수는 “요리 예능을 이끌어가는 셀러브리티 셰프 등 서사를 구성할 수 있는 인재 풀이 확장된 점도 제작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며 다양한 요리 전문가의 활약을 쿡방 열풍의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우후죽순 쿡방 속 흑백요리사 신드롬

 

흑백요리사 심사위원 백종원, 안성재(왼쪽부터). 사진=넷플릭스

 

2020년대 이후에도 쿡방은 우후죽순 등장했지만 화제성이나 파급력은 이전보다 못했고 인기 프로그램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신선함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5년 만에 종영했고 음식점 사장을 이용해 자극적으로 연출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백종원의 골목식당’도 소재가 점차 고갈되는 한계에 부딪히고 시청률·화제성 하락을 겪으며 결국 막을 내렸다.

 

이같은 상황에서 판도를 바꾼 것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다. 지난해 공개된 ‘흑백요리사’는 요리 실력을 흑과 백으로 나눠 대결을 펼치는 독특한 포맷과 더불어 안성재 등 셰프들이 총출동해 개성 있는 캐릭터성을 뽐내 신드롬을 일으켰다. ‘흑백요리사’를 계기로 ‘냉장고를 부탁해’는 시즌2로 부활했으며 출연 셰프들도 스타로 등극해 방송가에서 활약했다.

 

이 교수는 “흑백요리사와 같은 대규모 미디어 이벤트가 (쿡방 부흥에) 유의미한 영향을 가져왔다. 요리 예능 자체는 늘 일정 규모로 있었지만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관심을 기울일 초점화된 요소들이 발굴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비슷한 포맷…새로운 형식 고민해야”

 

백종원의 골목식당

 

다만 쿡방 인기에 편승하려는 무분별한 시도는 조심해야 한다. 정 평론가는 “‘냉장고를 부탁해’나 ‘흑백요리사’도 포맷 자체가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그것 또한 1∼2년만 지나면 그것도 금방 익숙해지는 포맷이 돼버린다”며 “이걸 또 깰 수 있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된다. 지금도 요리 예능이 너무 많이 나오고 있지만 포맷이 다 천편일률적이고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의 순수한 재미보다 출연진 개인에 의존하려는 경향도 변화해야 한다. 쿡방의 대표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한 백종원은 방송가를 가리지 않고 1년에 2∼3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만큼 제작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뜻이지만 최근 각종 논란에 휘말리며 대중의 지지를 잃은 상황이다. 백종원이 과거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언행마저 실시간으로 재조명돼 비판의 대상이 됐다.

 

정 평론가는 “쿡방은 일종의 스타 셰프들을 전면에 내세워서 그들이 가진 매력을 방송에서 끄집어내 성공한 측면이 있다”며 “제일 중요한 지점이지만 거기에는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한 인물에 집중하게 됐을 때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인물에 집중하기보다는 형식적인 재미, 포맷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야 하고 그게 바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미디어 셀러브리티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기대 등은 항상 반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며 “지금은 방송인-전문가의 생태계가 더 다양하게 확장해가는 성장통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다만 백종원과 같은 페르소나를 활용하는 장르는 줄어들 수 있다. 더 강한 권위보다는 다양성의 관점에서 다양한 페르소나의 셀럽을 활용하는 콘텐츠로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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