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는 최악의 내수 침체 상황에서 8년 만에 다시 리더십 공백 상황을 맞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탄핵정국 때보다 소비심리를 끌어올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적 위기감이 잔존하는 가운데 트럼프발 관세폭탄이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까지 약 2개월간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2·3 계엄사태가 발생한 이후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100선을 하회했다. 소비심리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소비심리가 낙관적, 100을 밑돌면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계엄령 발표 직전인 지난해 11월 101에서 12월 88로 12.5%포인트 급락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최대 낙폭이다. 올해 1월 91, 2월 95로 소폭 상승했지만 지난달 93.4로 다시 떨어졌다.
장기화된 내수 부진 속에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폭탄과 정국 불안에 따른 소비심리 악화가 영향을 미쳤다. 한은은 지난 2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9%에서 1.5%로 대폭 하향한 바 있다.
또한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월 소매판매액지수를 보면 전기차 보조금의 영향으로 승용차 판매가 13.5%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의류·신발 등 준내구재와 음식료품 등 비내구제 모두 전월보다 감소했다.
국민 경제심리를 나타내는 뉴스심리지수(NSI) 역시 두 달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뉴스심리지수는 이달 1~13일 기준 88.33으로, 비상계엄 당시인 지난해 12월(85.75)에 근접했다. 이 지수는 경제 분야 언론 기사에 나타난 경제 심리를 지수화한 것이다.
전례를 보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면 소비심리가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던 만큼 조기 대선 이후 정부가 내놓을 경기 부양책이 소비 촉진에 직접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가 정점이던 2017년 1월 93까지 떨어졌던 소비자심리지수는 같은 해 3월 탄핵심판이 인용되면서 97까지 올랐다. 이후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100을 상회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7월에는 113까지 반등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기각이 이뤄진 2004년 3~5월에도 소비심리가 위축됐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2004년 1분기(-0.5%)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4분기에야 1%대를 회복했다.
현재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추경에 대한 타협이 시급한 상황이다.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 정치 공방에 밀려 추경 편성 논의가 지지부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5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가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필수 추경은 국회, 언론 등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 당초 말씀드렸던 10조원 규모보다 약 2조원 수준 증액한 12조원대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추경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최대한 빠른 시간 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의 초당적 협조와 처리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번 추경은 ▲재해·재난 대응(3조원 이상) ▲통상·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4조원 이상) ▲민생 지원(4조원 이상)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35조원 규모의 대규모 추경 편성을 요구한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에서도 예산 투입 규모가 다소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신속하게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경우 내수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10조 위안(약 1900억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확정해 지방정부 부채 문제를 해결하고 나섰다. 지방정부가 부채 압박에서 벗어나야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5.2%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올해도 5% 안팎의 성장률 목표를 잡았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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