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공연 보려 10시간 이동”…K-팝 종주국의 암울한 현실 [지동현의 지금e연예]

인스파이어 아레나 'MMA 2023' 현장. 사진 = 인스파이어 아레나 제공

 

“인스파이어는 장소 공지 뜨면 일단 망설이게 된다. 가게 된다 해도 의리 때문에 가는 것.”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전문 공연장 인스파이어 아레나의 1주년 성과를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2023년 12월 문을 연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K-팝 세계화와 맞물려 수면 위로 드러난 공연장 부족 현상에 단비와도 같았다. 국내에서 5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인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은 2023년부터 리모델링에 돌입했고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축구 전용 경기장인 만큼 대중음악 공연 장소로는 한계가 있다.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을 향한 갈증 속에서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지난해 누적 관객 수 52만명을 기록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올해 70만명의 글로벌 관객이 공연을 즐기러 올 전망이다. 실제로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국내 공연장 중 음향과 시야가 가장 훌륭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국내 최초 다목적 실내공연장으로 설계돼 개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음향 시스템, 가변형 무대 및 장치, 시야 확보가 가능한 객석 구조 등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렇다면 K-팝 팬들은 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 방문을 망설이는 것일까. 국내 주요 경기장이 서울 시내에 위치한 것과 달리 인천 영종도 한편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공연장이 꼭 서울에 집중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재 위치는 비수도권 거주자들 또한 방문하기가 어렵다. 서울이나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팬들 또한 자차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면 꼬박 2시간은 잡고 방문해야 한다.

 

인스파이어 아레나 전경. 사진=인스파이어 아레나 제공.

 

주차장은 4500대 규모를 자랑하지만 K-팝 공연 특성상 주 관객층은 1020세대다. 인스파이어 측에 따르면 약 60%의 관객은 셔틀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대중교통을 탔을 경우엔 가수를 보러가겠다는 의지 하나로 기나긴 여정을 감내해야 한다.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린 후 셔틀버스를 타고 최소 20∼30분 이상은 걸린다. 남부지방에 산다면 공연 2시간을 보기 위해 기차와 지하철 등 왕복 10시간 이상을 이동에 써야 한다.

 

인스파이어 측도 접근성 개선을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부터는 조금 더 빠르게 수송할 방법을 찾고 있다. 서울 중심까지 1시간 반 안에 이동하게 하는 게 목표다. 픽업 장소도 다양화하고자 한다”고 개선 방안을 밝혔다.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이 정도로는 단기간에 팬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어려워 보인다.

 

K-팝 팬들이 기분 좋게 방문할 수 있는 국내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이 절실한 상황이다. K-팝의 글로벌 위상과 달리 대중음악 공연 시장의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1만5000석 안팎의 아레나급을 채울 수 있는 가수들은 이미 셀 수 없이 많다. 서울월드컵경기장과 같은 곳은 축구 팬들의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하는 동시에 경쟁하듯 최소 1년 전에는 대관을 해야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스포츠 시설에 의존하는 상황이지만 음향시설이나 무대 장치 면에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형 전문 공연장의 부재로 테일러 스위프트 등 글로벌 팝스타들의 ‘코리아 패싱’도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옆나라 일본만 해도 1만명 이상 수용 가능한 아레나 등 공연장이 40곳에 달한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쿄돔을 비롯해 삿포로돔·나고야돔 등 ‘5대 돔’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 최정상 인기를 구가하는 보이그룹 세븐틴의 한 멤버는 프로야구 전용 구장으로 지어진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하며 “다음 달에 또 잡아보려고 했는데 대관이 안됐다. 참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류 중심인 K-팝 가수들이 눈치를 보며 스포츠 구장을 대관한다. 팬들은 전쟁과도 같은 티켓팅 경쟁을 뚫고 10시간이나 걸려 공연장에 방문한다. 언제쯤 가수와 팬 모두가 행복한 기분으로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K-팝 종주국의 암울한 현실이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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