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인터뷰] 인생 제 2막 펼치며…조용호 “야구를 정말 사랑했던 선수로”

사진=뉴시스

“야구를 정말 사랑했던 선수로 기억해주세요.”

 

조용호에게 야구장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매 순간 간절하게, 악착같이, 뛰고 또 뛰었다. 공 하나에 웃고 운 것은 물론이다. 이제는 추억으로 묻어 두려한다. 정든 유니폼을 벗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아카데미 코치로서 인생 제 2막을 여는 중이다. 조용호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면서 “후회 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야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마지막이 조금 좋지 않았던 것 같아 그게 마음에 남는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벼랑 끝에서, 간절하게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대졸(단국대) 출신으로 신인드래프트서 고배를 마셨다. 프로 도전 1년여를 앞두고 오른쪽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한 까닭이다.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2014년 해체)서 재기를 노렸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시작하면서 사실상 야구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살길을 찾아야했다. 겸직 허가를 받아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제대 후 야구부에 “그저 운동만 같이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기회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날 SK(SSG 전신)가 학교에 찾아왔다. 1차 지명 후보자를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우연히 운동하고 있던 조용호를 보게 됐다. 당시 김용희 육성총괄과 송태일 육성팀장은 곧바로 테스트를 제안했다. 벼랑 끝에서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용호는 2014년 육성선수로 SK 입단하게 된다. 스스로는 “운이 좋았다”며 자세를 낮췄지만 그만큼 준비가 잘 돼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평가도 굉장히 좋았다. 

 

어쩌면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치열한 생존 싸움을 벌여야 했다. 2017년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 방향성을 확립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타석에서 끈질긴 승부로 눈길을 끌었다. 조용호는 “대구 삼성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4타석서 30개 이상의 공을 본 것 같다. 그때 (트레이) 힐만 감독이 말씀하시더라. ‘너는 100타석 동안 안타 못 쳐도 된다. 지금처럼 투수를 괴롭혀주고 출루해준다면 앞으로 주전으로 기용하겠다.’ 내 길은 이거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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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의 순간 그리고 방황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 조용호는 주저 없이 우승의 순간을 꺼냈다. 2019시즌 KT로 둥지를 옮긴 뒤 날개를 활짝 폈다. 통합우승에 힘을 보탰다. 사상 첫 정규리그 1위 타이브레이크까지 거쳐 올라간 뒤라 더욱 값졌다. 조용호는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더라. 진짜 눈물도 많이 흘렸다. TV로만 보던 일이 내게도 일어났구나 싶더라. 큰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면서 “근데 우습게도 몇 시간 지나니 조금은 허무하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2022시즌 개인 커리어하이(131경기서 타율 0.308 12도루 등)를 찍은 뒤 흔들렸다. 부상과 부진이 겹친 탓이다. 2023~2024시즌 각각 63경기, 60경기 출전에 그쳤다. 조용호는 “선수라면 다치지 않게 플레이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어 “초심을 잃었던 것도 같다. 처음엔 방출되지 않으려 독하게 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이 안 보이더라.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나 싶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개인사도 있었다. 지난해 여름 배 속에 있던 둘째 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가뜩이나 야구가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은 가운데 아이까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니 혼란스러웠다. 조용호는 “조금 지쳤다고 할까. 엄청 좋아하고 사랑하는 야구지만, 이제 놓아야할 때가 온 것 같더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KT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은 뒤 곧바로 아카데미에 합류한 배경이다. 몇몇 도움의 손길이 있었지만 정중히 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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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까지, 조용호를 기억해준 팬들

 

더 이상 선수 조용호의 모습은 보여줄 수 없지만, 팬들이 준 사랑은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하려 한다. 지난 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5차전을 마친 뒤 KT 팬들은 한 명 한 명 선수들의 응원가를 불렀다. 여기엔 조용호의 응원가도 있었다. 이미 방출통보를 받은 뒤라 경기에 뛰지 않았음에도 잊지 않고 떠올려 준 것. 조용호는 “영상을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 진짜 감동적이었다. 출퇴근길에 사인해드리고 그런 것밖에 못해드렸는데 너무 큰 걸 받았다”고 말했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을까. 잠시 고민하던 조용호는 “야구를 정말 사랑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가끔씩 아이들을 가르치다 직접 수비를 하거나 할 때가 있는데, (선수 때) 생각이 난다. 재밌더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조건 없이 큰 사랑 보내 주신 팬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은퇴 소식을 (공식적으로) 말씀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 그간 보내주신 많은 응원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강조했다.

 

◆ 다시, 새 목표를 향해

 

거의 평생을 야구와 함께했다. 그럼에도 코치로서 대하는 야구는 또 신선하다. 조용호는 “우리 때와는 또 다르지 않나. 아직까진 많이 조심스럽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배우는 게 정말 많다. 뭔가를 알려줘서, 개선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짜릿하다.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다시, 새 목표를 세운다. 조용호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코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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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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