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식 가족’ 황인엽 “나와 다른 인물, 연기하며 쾌감 느껴요” (인터뷰①)

지난달 27일 종영한 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김산하 역으로 출연한 배우 황인엽. 케이엔스튜디오 제공.

 ‘조립식 가족’은 자극적인 서사가 판을 치는 최근 드라마계에서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서정적 감성에 잔잔한 이야기들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가족만큼 끈끈한 현장은 배우 황인엽에게도 배움과 행복의 장이 됐다. 

 

지난달 27일 종영한 JTBC 수요드라마 ‘조립식 가족’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으로 우기며 10대 시절을 함께했던 세 남녀가 10년 만에 다시 만나 첫사랑의 떨림을 펼치는 내용의 청춘 로맨스를 그렸다. 각기 다른 사랑의 의미를 짚으며 진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 되새기게 했다.

 

 극 중 황인엽은 겉보기엔 아쉬울 게 하나 없어 보이지만 어릴 적 가족의 불행이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을 가진 김산하를 연기했다. 가족으로 인한 상처만큼 가족을 향한 사랑도 넘쳤다. 표현은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따듯한 ‘겉바속촉’한 인물의 전형을 보여줬다. 강해준 역의 배현성과는 티격태격한 브로맨스를, 윤주원 역의 정채연과는 남매로 시작해 연인이 되는 입체적인 변화를 그려냈다. 

 

 산하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둔 건 ‘눈빛’이다. 그는 “대본에 표현적인 부분이 많아 눈에 담고 싶었다. 과연 전달될까 고민이 많았는데, 꿰뚫어봐 주셔서 놀라면서도 감사했다. 말이 아닌 다른 표현으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 유익했다”고 돌아봤다.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기분이 좋다’, ‘나쁘다’를 말로 하면 이해되지만, 눈으로 표현하면 위험하기도,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확신을 갖게 한 건 김승호 감독이다. “산하 같다”는 제작진에 믿음에 자신감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동생을 잃은 산하는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엄마의 압박 속에 살아간다. 설상가상으로 사고로 새 남편을 잃은 엄마의 굴레로 직접 걸어 들어가 10여년을 버틴다. 그리고 10년 뒤, 사랑하는 주원의 앞에 나타나 진심을 고백한다. 그는 “10년 만에 와서 좋아한다는 게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산하는 어렸을 때부터 주원을 여자로 생각했다고 해석했다. “산하 입장에선 오랜 시간 참아온 감정을 터트리듯 이야기한 것”이라며 “돌아온 건 더이상 마음을 숨기지 않겠다는 의미다. 산하의 구원자인 주원과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바라봤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레지던트가 되어 돌아오기까지 10년 세월의 변화를 단기간에 표현해야 했다. 그는 “산하는 10년 간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 내면의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수척해보이는 게 필요했다”며 “가장 적합한 게 다이어트였다. 일주일에 4㎏를 감량했다”고 답했다. 깊어진 감정의 골은 오히려 더 괜찮은 척하며 역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지난달 27일 종영한 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김산하 역으로 출연한 배우 황인엽. 케이엔스튜디오 제공.

 날카로운 인상 탓에 그간 ‘차도남’ 스타일의 캐릭터가 많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동글동글한 해준과는 반대의 성격으로 그려졌다. 실제론 밝은 성격이라고. 그는 “성격과 완전히 달라 연기할 때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인물 보여주는 것, 어떤 행위를 해도 괜찮다는 게 나와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것의 매력”이라며 “습관을 버리는 게 쉽지는 않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연기하며 시너지가 난다. 조금 추상적인 표현일 수 있지만 에너지와 에너지가 만나 하나의 희한한 물질이 생기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각자의 사정으로 한 식탁에 모여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며 누구보다 돈독한 가족이 됐다.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가족 관계를 색다른 방식으로 재조명했고, 눈물과 감동 없이는 볼 수 없는 서사를 완성했다. 그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으니 셋의 이야기와 호흡을 얼마나 잘 녹여내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 가족같이 느껴지는 게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어느 한 부분도 틀어짐 없이 하나가 됐죠. 정말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가족’으로 모여 울고 웃는 순간들이 많았다.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순간들도 있었고, 그만큼 작품 후 찾아온 공허함도 컸다. 황인엽은 “이제 과거가 됐다는 게 아쉽다. 큰 이별을 하는 느낌이어서 아직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작품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며 “최선을 다하고 모든 걸 쏟아부었을 때 기쁨과 동시에 슬픔이 같이 왔다. 정이 많아서 그런지 아직도 힘들다”고 여운을 전했다. 

 

 황인엽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내 편”이라고 답하며 “가족이 있다는 건 무조건적인 내 편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 같다. 세상을 살아가게 버틸 수 있는 힘, 산하에겐 그게 주원과 가족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도 따듯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그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전화를 하면 모든 걸 멈추고 나에게 오신다. 울고 불고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곤 한다”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를 전했다. 

 

 연말부터 새해 초까지는 팬미팅 투어 ‘인 러브’로 전 세계 팬들을 만나러 간다.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브라질 상파울루, 페루 리마, 멕시코 몬테레이까지 라틴아메리카까지 팬덤을 확장해 눈길을 끈다. 그는 언어와 문화를 넘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신강림’, ‘왜 오수재인가’에 이어 ‘조립식 가족’까지 출연작마다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훈훈함으로 꽉 찬 작품을 마친 그의 다음 스텝은 ‘친애하는 X’다. 차기작에 관해서는 “밝은 작품,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연기할 때는 몰랐는데 (코믹한 면을) 더 끌어내 보면 어떨까 한다”고 바람을 내놨다.극 중 산하가 종종 보여줬던 코믹 요소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현장의 행복이 시청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작품이다. 연기 이외의 순간도 모두와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첫 번째라는 다짐을 새겼다. 산하를 연기하며 얻은 배움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 그는 “예상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궁금증을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나의 목표”라고 바랐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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