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이 하는데”…이혼 콘텐츠 쏟아진다 [이혼 권하는 사회]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에 출연한 명서현. 방송화면 캡처.

 스튜디오에 앉아 “결혼 생활 11년 동안 시어머니는 두 얼굴이었다”고 고백한 며느리가 있다. 이는 축구선수 출신 방송인 정대세의 아내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개한 수많은 가정불화 사유 중 하나다. 과거 사연을 재구성한 프로그램들이 간접적으로 가정 내 불화를 다뤘다면 이제 실제 부부들이 직접 출연해 갈등을 적나라하게 공개한다. 연예인의 이혼을 콘텐츠로 내세운 시대이자 TV만 틀면 남의 가정불화를 관찰할 수 있는 현실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는 특정 나잇대의 미혼자들에게 ‘노처녀’, ‘노총각’ 딱지를 붙이고 이혼은 금기시했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달라졌고 이혼의 문턱은 더 낮아졌다. 우리나라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 대비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지난해 조혼인율과 조이혼율은 각각 3.8과 1.8을 기록했다. 사실상 두 쌍의 부부가 탄생하는 동안 한 쌍의 부부가 이혼했다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한국이 회원국 중 이혼율 9위, 아시아에서는 1위인 것으로 집계했다.

 

 특히 2003년 6.3 수준이던 조혼인율은 20여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한 저출산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 OECD 평균(1.58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에 정부는 매해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통계청이 발간한 ‘한국 사회 동향 2023’에 따르면 20~29세 32.7%와 30~39세 33.7%가 ‘결혼 자금 부족’을 결혼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꼽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결혼·출산·양육 인식’ 조사에서도 미혼 남자의 82.5%가 ‘결혼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하다’며 결혼 의향이 있는데도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정부는 집 걱정 없이 결혼, 출산할 수 있도록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요건을 완화하고 신혼·출산 가구 위한 6만 가구 추가 공급하는 등의 정책을 예고하고 나섰다.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생 종합 대응 방침을 언급하며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꿈꿀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뉴시스 제공.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노력도 미디어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정부는 결혼·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방송사는 이혼을 주제로 한 자극적인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면 결혼으로 인한 행복보다 그로 인한 불행이 더욱 도드라진다. 대중의 관심사와 현실을 즉각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미혼자에게조차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생긴다. 실제로 2030대 청년들의 결혼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2008년 이후 지속해서 내림세를 보였다. 여성은 2008년 50% 수준에서 지난해 20대 27.5%, 30대 31.8%로 같은 기간 남성은 70% 수준에서 20대 41.9%, 30대 48.7%로 감소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낸 드라마 ‘굿파트너’는 17%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실제 이혼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최유나 변호사가 집필해 화제가 됐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최 변호사처럼 이혼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는 2021년 517명에서 2024년 851명으로 64% 늘어났다. 이들을 필요로하는 의뢰인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이혼 관련 프로그램이 다양해지면서 서로 자극 경쟁을 펼친다. 고부갈등, 소통 단절 등 현실 부부에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부부간의 갈등을 더 부각하면서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려 한다. 출연자들의 발언 하나하나는 큰따옴표에 실려 포털사이트의 대문을 장식한다. 나아가 유명인의 이혼이 소송으로 치달을 경우 언론을 이용해 상대를 비방하거나 심경을 호소한다. 부부 사이에 자녀가 있다 할지라도 소송의 승기를 가져오기 위한 헐뜯기는 거침이 없다.

뉴시스/AP 제공

 방송 콘텐츠도 유행을 따라간다. 과거 요리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룬 때가 있었고 관찰, 여행, 스포츠 등 예능 프로그램의 주제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최근 급물살을 탄 이혼 예능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방송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크고,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유행처럼 번져가는 이혼 콘텐츠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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