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없는 삶 미화”…‘나혼산’ 막는 러시아, 한국도 ‘왈가왈부’

MBC '나 혼자 산다' 출연진 키, 박나래, 전현무, 코드쿤스트, 기안84(왼쪽부터).

 

저출산으로 고심하는 러시아가 자녀 없는 삶을 미화하는 미디어 콘텐츠 금지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MBC ‘나 혼자 산다’나 채널A ‘금쪽 같은 내새끼’ 등의 프로그램도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이른바 ‘비혼 장려 프로그램’을 두고 논란이 생겨나고 있다.

 

◆푸틴식 저출산 대책…러, ‘자녀 없는 삶’ 장려 금지법

 

최근 러시아 하원인 국가두마는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는 형태의 선전(프로파간다)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지난 9월 발의돼 크렘린의 지지를 받았다. 상원인 연방의회의 승인을 거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은 자녀가 없는 라이프 스타일을 매력적으로 묘사하는 인터넷과 영화, 광고 등 모든 미디어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개인은 최대 4000달러(약 560만원), 법인은 최대 5만달러(약 7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할 모든 일을 해야 한다”며 “우리 삶에서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은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직면한 러시아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러시아 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6월 출생아 수는 59만9600명으로 199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망자 수는 2016년부터 출생자 수를 앞지르기 시작했으며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출산 기피 현상이 더 극심해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우리가 러시아에서 한 민족으로서 살아남으려면 가족당 최소 2명의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올해 말 합계출산율은 1.32명으로 예상된다. 미디어를 제재하는 극단적인 대책이 나온 이유다.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샤이니 키가 혼자 캠핑을 떠난 모습.

 

◆‘나혼산’·‘금쪽이’가 비혼 장려?…국내서도 갑론을박

 

이른바 ‘푸틴식 저출산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해당 소식이 알려지자 인구소멸 위기에 직면한 한국에서도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해당 프로그램들이 결혼과 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산다’·‘금쪽같은 내 새끼’와 더불어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SBS ‘돌싱포맨’ 등이 주 비판 대상이다.

 

정치권에서도 방송 프로그램이 비결혼·저출생 풍조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2022년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나 혼자 산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는데,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한 것으로 인식이 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으며 지난해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소속 서정숙 국민의힘 전 의원은 “나 혼자 산다, 불륜, 사생아, 가정파괴 드라마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며 “훈훈한 사회 분위기 조성에 기여해 주시길 방송사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9월엔 윤석열 대통령이 “나 홀로 사는 게 마치 굉장히 편하고 복 받은 것처럼 하는데,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살기 좋은 사회의 출발점이라는 걸 모든 미디어 매체에서 다뤄줘야 한다”고까지 발언했다.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가 육아 문제로 고충을 겪는 출연자에게 조언하고 있다.

 

◆애꿎은 미디어에 떠넘긴 저출산 책임

 

다만 지난해 1인 가구가 783만 가구, 전체의 35.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상황에서 이같은 현실을 반영할 뿐인 예능 프로그램에 과장된 해석을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미디어가 대중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출산 문제 해결의 책임을 미디어에 떠넘기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정부가 실시한 저출산 인식조사에 따르면 저출산 원인으로 ‘경제적 부담 및 소득 양극화’와 ‘자녀 양육 교육에 대한 부담감’이 가장 높게 꼽혔다. 미디어 탓만 할 게 아니라 결혼과 출산을 위한 사회적 여건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정말로 걱정된다면 애꿎은 방송가를 질책하기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비전을 제시하거나 기존 대책의 한계를 돌아봐야 할 때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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