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야구가 떨어진 국제 경쟁력을 다시 실감했다. 올해 3번째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 슈퍼라운드(4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5년 초대 대회 우승, 2019년 준우승으로 최소 결승까지 닿았던 영광은 이제 없다.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아픈 상처만 남았다.
세대교체라는 어려운 미션이 걸린 데다가, 핵심 선수들의 부상 이탈이 쏟아지면서 슈퍼라운드 진출이 어려워 보였던 건 사실이다. 실제로 에이스가 없는 선발진, 4번 타자가 없는 타선은 우려했던 한계를 그대로 노출했다.
감수했던 실패지만 씁쓸한 뒷맛은 지워지지 않는다. 패했던 경기를 돌아보면, 분명 승기를 쥘 수 있던 ‘모먼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을 필두로 한 한국 벤치는 아쉬운 판단으로 그 순간을 모두 놓쳤다. 선수만이 아닌 코치진의 세대교체 필요성이 대두된 배경이다.
첫 단추를 채운 대만전부터 덜컹거렸다. 류 감독은 1선발 중책을 고영표(KT)에게 맡겼다. 대만 리그에 언더핸드 투수가 많지 않다는 점, 전통적으로 한국 언더핸드 투수들이 대만전에서 재미를 봤다는 점들이 판단의 근거가 됐다.
대만은 보란 듯이 수를 꿰뚫었다. 언더핸드를 겨냥해 좌타자만 7명을 배치해 고영표를 무너뜨렸다. 고영표는 올 시즌 좌타 상대 피안타율 0.361로 우타자(0.297)와 비교해 뚜렷한 약점을 보이던 투수다.
최근 일본 코칭스태프 영입과 함께 현대 야구 트렌드를 흡수하기 시작한 대만은 좋은 좌타자들을 갖추기 시작했다. 스윙 메커니즘에도 라인드라이브 생산에 집중하는 유행을 반영했다.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는 대표팀이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부족했다.
경기 도중 쏟아진 미숙한 운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투수교체에 대한 지적은 결과론이라지만, 류 감독의 한 박자 늦은 교체 타이밍은 매번 실패로 이어졌던 게 사실이다.
조 2위를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대만전에서 고영표가 홈런 두 방을 맞는 동안 벤치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첫 투수가 무너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선발진 약점을 ‘벌떼 야구’로 채우겠다던 류 감독의 말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우승후보’ 일본과 마주친 한일전도 마찬가지였다. 몇 안 되는 좌완 불펜 곽도규에 대한 미련을 ‘좌우놀이’ 때문에 놓지 못하는 장면이나 절체절명의 만루 위기에서 구위가 좋은 투수를 아끼다가 일격을 맞기도 했다. 함께 경기를 펼치던 대만, 일본의 즉각적인 대처도 한국의 서투른 운영을 더욱 부각시켰다.
2022년 2월 대표팀 전임 사령탑에 선임된 류중일 감독은 이번 프리미어12 실패와 함께 임기를 마쳤다. KBO 전력강화위원회의 고민도 깊어진다. 최근 감독 트렌드로 떠오른 데이터 야구, 젊은 리더십을 모른 체 할 수 없어졌다. 모두가 바라는 한국 야구의 명예회복, 듬직한 수장을 찾을 수 있을지가 중요한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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