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다.
‘한국 바둑 랭킹 1위’ 신진서 9단은 15일 경기도 고양시 삼성화재 글로벌캠퍼스에서 열린 커제 9단(중국)과의 202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16강에서 278수 만에 반집승을 거두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자신이 있던 상대였다. 이날 커제와의 25번째 대국 전까지 상대전적 13승11패로 우위에 있던 신 9단이다. 특히나 최근에만 8연승을 내달리며 상성을 완전히 뒤집었다는 점도 반가운 부분. 하지만 커제는 커제였다. 신 9단은 초반부터 거칠게 몰아친 커제의 기세에 밀려 대국 중반까지 고전을 거듭했다.
묵직한 뒷심으로 버텼다. 조금씩 격차를 줄여가던 신 9단은 커제의 실수가 나온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 들어 승부를 반집차로 좁혔다. 승률그래프가 흑과 백 사이에서 시소를 타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차분함을 잃지 않은 신 9단이 짜릿한 끝내기로 최종 반집을 남기며 뒤집기 한판을 보여줬다.
경기를 마친 신 9단은 “느낌은 결승까지 둔 것 같은데, 이제 두 판 이겼다(웃음). (한국이 중국에) 수적으로 열세라 대진이 좋진 않지만 남은 대국도 내 바둑을 둘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말대로 8강에는 신 9단이 유일한 한국 선수로 남았다. 이날 함께 16강전을 치른 신민준 9단이 쉬자양 9단(중국)에게 패했기 때문. 크게 앞서던 경기를 역전패로 놓치면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결국 8강에는 중국 선수 7명, 한국 선수 1명만 남게 됐다.
곧바로 대진 추첨이 이어졌다. 그 결과 신진서 9단은 17일 ‘디펜딩챔피언’ 딩하오 9단과 만난다. 상대전적은 신 9단이 최근 5연승 포함 9승3패로 우위에 있다. 나머지 3판에는 진위청 8단과 쉬자양 9단, 당이페이 9단과 리쉬안하오 9단, 롄샤오 9단과 셰커 9단의 중중전이 성사됐다.
신 9단의 손끝을 주목해야 한다. 이대로 자신의 두 번째 삼성화재배 우승을 겨냥한다. 2013년 이 대회에 처음 모습을 비춘 그는 2022년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지난해 8강에서는 중국의 셰얼하오 9단에게 일격을 맞으며 아쉬움을 삼켰다.
올해 다시 절치부심한다. 2020년 1월 이후 한국 바둑 랭킹 1위를 59개월 연속으로 지키고 있는 ‘국내 최강’ 타이틀의 자존심도 걸렸다. 올해 LG배, 란커배에 이은 3관왕까지 바라보려 한다.
삼성화재해상보험(주)이 후원하고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202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의 우승 상금은 3억원, 준우승 상금은 1억원이다. 제한 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202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16강 둘째 날 결과(앞쪽 승자)
신진서 9단 vs 커제 9단(중) - 278수 끝, 흑 반집승
쉬자양 9단(중) vs 신민준 9단 - 267수 끝, 흑 5집반승
리쉬안하오 9단(중) vs 판인 8단(중) - 182수 끝, 백 불계승
롄샤오 9단(중) vs 천셴 8단(중) - 320수 끝, 백 1집반승
◆202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8강 대진(상대전적은 앞사람 기준, 세계대회 및 중국리그만 적용)
-11월 16일 정오
진위청 9단(중) vs 쉬자양 9단(중) - 1승 1패
당이페이 9단(중) vs 리쉬안하오 9단(중) - 5승 6패
-11월 17일 정오
신진서 9단 vs 딩하오 9단(중) - 9승 3패
롄샤오 9단 vs 셰커 9단 - 첫 대결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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