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가을 술내음에 내 볼 단풍처럼 ‘발그레’

한국관광공사 ‘양조장 여행’ 추천
몽트비어서 맥주 10종 맛보기
선비복 입고 한산소곡주 시음
문경엔 세계 최초 오미자 와인
진주 야시장 음식·맥주 즐겨

최근 ‘양조장 여행’이 새로운 여행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통주의 깊은 풍미는 물론 해당 술이 나는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어서다. 한국관광공사도 올가을 ‘추천 가볼 만한 곳의 테마’로 ‘술 익는 마을을 찾아서’를 꼽기도 했다. 겨울이 오기 전,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에서 술이 익어가는 계절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양조장을 찾아보자.

◆수제 맥주의 성지, ‘속초 몽트비어’

몽트비어는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져 맥주 만들기 동호회에서 홈브루잉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다. 지역 수제 맥주만이 가진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했다. 이곳 명소는 ‘비어 바(Beer Bar)’가 있는 2층이다. 창밖을 내다보면 설악산과 울산바위, 금강산 봉우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10가지 수제맥주를 맛볼 수 있는 강원도 속초 몽트비어

갓 나온 신선한 맥주도 마실 수 있다. 몽트비어가 선보인 맥주 종류는 10가지가 넘는다. 속초 응골딸기마을의 딸기를 쓴 ‘스트로베리 에일’, 양양 곰마을의 복숭아 과즙을 넣은 ‘피치 화이트 사우어’ 등 흔하지 않은 재료를 쓴 맥주가 눈길을 끈다.

◆70개 소곡주, 70가지 맛… 서천 ‘한산소곡주갤러리’

‘소곡주’는 기록이 남아 있는 우리 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로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한산소곡주는 옛 한산 지역인 지금의 충남 서천군 한산·기산·화양·마산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곡주를 통칭한다. 서천군에서 제작한 동일한 모양의 갈색 술병을 공통으로 쓰는 것도 특징. 고창 복분자주, 진도 홍주에 이어 세 번째로 등록된 전통주다.

충남 서천 삼화양조장에서는 한산소곡주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한산소곡주’란 이름을 내걸려면 오직 이 지역 내에서 생산된 지역 재료만을 써야 한다. 현재 70여 가구가 양조장 시설을 갖추고 주류제조 면허를 취득했다. 서천 일대가 전국에서 지역 단위에서 가장 많은 양조장을 가진 ‘술 익는 마을’로 통하는 이유다.

재미있는 것은 70여 양조장의 소곡주 맛이 제각각이라는 것. 집에서 빚은 술은 ‘적당히의 미학’을 반영하고 있다. 쌀에 누룩을 더해서 밑술을 만들고 다시 고두밥으로 덧술하는 이양주 방식은 비슷하지만, 양조장마다 첨가하는 재료가 다르고 몇 대에 걸쳐 내려온 비법을 더하니 김치나 장맛처럼 술맛도 다르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한산소곡주는 한산소곡주갤러리에서 모두 맛볼 수 있다. 매주 5개의 양조장이 돌아가며 무료 시음도 선보인다. 선비복을 입고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소곡주 3종을 맛보는 향음체험(1인 1만5000원, 10인 이상)도 사전예약제로 운영한다.

◆국빈 만찬주에 오른 오미자와인… 문경 ‘오미나라’

해발 1000m 고지의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에 자리해 사시사철 서늘한 준고랭지 문경은 오미자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실제 우리나라 오미자의 45%는 문경에서 나온다. 이곳에 세계 최초의 오미자 와이너리 ‘오미나라’가 있다. 44년 동안 세계 명주를 공부하고 우리 술을 연구한 양조 및 증류 명인 이종기 대표가 2008년 9월 세웠다.

경북 문경의 오미자 와이너리 ‘오미나라’가 생산하는 각종 와인.

이 대표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최고급 명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세계 유일무이한 오미자 와인을 개발했다. 오미자 와인은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만찬주와 건배주로 쓰였다. 2022년 5월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정상회의에도 올랐다.

오미나라에서 생산하는 각종 와인과 증류주를 전시 중이다.

오미나라에서는 와이너리 투어 및 테이스팅 프로그램(인당 1만원)에 참여할 수 있다. 와인 발효실, 증류실, 숙성실 등을 둘러보고 시음에 나선다. ‘나만의 기념주 만들기(인당 3만원)’도 운영한다. 내실 있는 와이너리 체험 행사로 인정받아 2016년 7월 농림축산식품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맥주 마니아 핫플, 경남 ‘진주진맥브루어리’

맥주 마니아들이 주목하는 곳으로 지난 4월 오픈한 ‘진주진맥브루어리’다. 이곳 맥주의 주원료는 진주에서 나는 키가 작은 ’앉은키밀‘이다. 앉은키밀은 일반 밀가루에 비해 부드럽고, 구수해 풍미가 깊고 목 넘김이 순한 맥주가 나온다.

풍미가 깊고 부드러운 맛의 경남 진주 수제맥주 진맥. 한국관광공사 제공

논개시장 입구의 진주진맥브루어리는 오래된 폐가구점을 리모델링해 세웠다. 붉은빛에 가까운 외벽은 잘 익은 앉은키밀의 색깔이라고. 1층의 커다란 통창으로 맥주 만드는 장면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2층에는 LP와 턴테이블이 주르륵 놓여 있어 맥주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로망을 실현할 수 있다.

양조장이 자리 잡은 논개시장에서는 토요일마다 올빰토요야시장이 열린다. 진주 명물 육전부터 삼겹말이, 납작만두, 해물부추전, 대왕고기완자 등 먹거리 천국이다. 진주진맥브루어리는 평소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지만, 토요일 야시장 음식은 ’대환영‘이라고.

◆럭셔리 전통주로 거듭 … 해남 ’해창주조장‘

해창주조장은 고가의 명품 막걸리를 만들며 유명해졌다. 시중 막걸리보다 도수가 높은 9도, 12도가 주력 상품으로 발효시간이 길고 추가적인 공정이 들어가며 가격도 비싸다. 시기별 한정판인 해창 18도는 양조장 출하가격이 11만원이다. 이에 관한 오병인 대표의 철학은 확고하다. 우리 술에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판단이다. 2022년 선보인 ‘해창아폴로’는 110만원에 나오기도 했다.

고가 명품 막걸리로 유명한 전남 해남 해창주조장에서 생산하는 해창막걸리.

명품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재료부터 다르다. 해남에서 재배한 유기농 찹쌀에 멥쌀을 일부 섞어 만든다. 찹쌀 본연의 은은한 단맛이 인공 감미료를 대체한다. 미식가들도 해창 막걸리를 찾는다. ‘식객’의 허영만 만화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이 해창막걸리의 팬임을 인증했다.

술도가 내 일본식 가옥의 외형을 간직한 살림집과 아담한 정원도 매력이다. 40여 종의 수목이 약 2500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가장 오랜 배롱나무는 수령이 약 700년에 달한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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