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에요! 빨리 오세요!”
10월의 어느 맑은 날 새벽 6시 30분 충남 부여 금강 둔치에 24인승 대형 열기구가 떴다. 20여분간 커다란 열기구에 불을 붙여 부풀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새 열기구가 우뚝 섰다.
열기구를 빠르게 띄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에 다급하게 달려간다. 등나무 바스켓 모양의 열기구 안으로 다같이 웃으며 허겁지겁 탑승하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이내 두둥실, 뜨는 느낌이 든다. 한눈에 백마강 일대가 쫙 펼쳐지는 게 장관이다. 상공에서 360도 회전하며 이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흔히 ‘수학여행지’로 여겨지던 충남 부여가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백제의 세련된 단정함, 와일드한 레저를 모두 즐길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로 거듭났다. 접근성도 좋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1시간 정도면 공주에 닿는다. 여기서 버스로 30분 정도면 바로 부여다.
◆백제의 가을, 산책하며 만끽하기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가 있던 부여는 깊은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기 좋은 고장이다. 박물관, 왕릉원, 정림사지, 낙화암, 부소산성 등 핵심 명소들도 한데 모여 있어 관광객 입장에서는 둘러보기 좋다.
특히 추천하는 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여 왕릉원. 이전에는 ‘능산리 고분군’으로 불린 곳이다. 능산리 고분군은 서쪽 의자왕 가묘 뒤편의 ‘서고분군’과 동쪽의 ‘동고분군’으로 나뉜다. 이곳에는 왕릉급 고분 7기를 중심으로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동서로 자리 잡고 있다.
능을 지나 천천히 걷는다. 상당히 신경 써서 조성한 듯한 조경에 걷기 좋은 길을 걷다보니 풀벌레 소리까지 들려 가을답다.
이내 부여능산리사지 터를 만난다. 능산리사지는 백제 위덕왕 14년에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됐다가 660년 백제가 멸망하면서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이곳에서는 국보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꼽히는 ‘백제 금동대향로’도 1993년 발견됐다. 3년 뒤 국보로 지정된 금빛 영롱한 백제 금동대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출토 당시의 터도 그대로 재현돼 있다.
인근에 사진촬영용 액자에 절의 모습이 하얀 선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과 절터 유적의 자취를 잘 맞추면 당시 사찰의 모습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다.
능산리사지 뒤로는 방어하기 위해 쌓은 부여 나성이다. 부소산성에서 시작해 수도의 북쪽과 동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백제의 사찰 정림사지로 향한다. 현존하는 오층석탑은 백제 양식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유적공원 형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은 이를 백제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백제탑’이라고 부른다고. 탑 뒷편의 정림사지 석불좌상도 담백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유적지를 둘러본 뒤에는 백제왕들이 즐겼다는 ‘연꽃차’를 마시며 티타임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연꽃으로 유명한 부여 궁남지 인근 찻집 ‘백제향’에서는 직접 기른 연꽃으로 차를 내린다. 생연꽃과 연잎을 넣은 연꽃차는 비주얼도 좋고, 향도 풍성하다.
◆열기구 타고 백마강변 360도 파노라마뷰 즐기기
부여를 찾으면 흔히 ‘백마강변’에 자리한 유서깊은 유적들을 찾는다. 이를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열기구부터 수륙양용 시티버스, 황포돛배까지 다양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열기구 탑승’일 것이다. 튀르키예에 가지 않아도 서울에서 기차로 1시간 반이면 열기구 관광이 가능하다. 대체로 볼 수 있는 지면과 케이블을 연결해 수직으로 이착륙하는 계류식 열기구와 달리 부여에서는 자유롭게 비행이 가능하다.
열기구 탑승 전 안전교육을 받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탑승 날짜와 이름이 새겨진 티켓이 제법 비행하는 느낌을 준다. 이날은 24인승 열기구를 띄웠다. 높이가 32m, 직경 26m에 이른다. 그야말로 ‘펜션 한 채’를 하늘에 띄우는 셈이라고.
500도에 달하는 뜨거운 열기를 20분가량 채워야 한다. 공중에 뜬 이후에도 400~500도의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방향을 조절해 나간다.
어느 정도 높게 올라간 열기구는 변하는 바람에 따라 흘러가듯 유유히 떠다녔다. 백마강, 낙화암, 궁남지 등 백제 관련 명소가 발아래 펼쳐졌다.
공중에서, 날것 그대로 유리창 없이 ‘백제뷰’를 눈에 담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경험이다. 부여에 오면 꼭 해봤으면 하는 경험이다.
물론 ‘열기구, 위험한 것 아냐?’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우다. 연료가 부족해도 열기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열기구 속 열기가 휘발되기까지 초속 약 3m의 속도로 서서히 내려가도록 설계됐다. 이를 운전하는 스카이배너 대표 역시 3000시간의 열기구 비행 경력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이다.
한편, 열기구는 일출 시간에 맞춰 하루에 한번 뜬다. 이동거리와 시간은 날씨의 영향을 받다보니 가변적이다. 착륙 지점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아예 취소될 수도 있다. 열기구 운행을 마치면 착륙한 곳으로 차가 온다. 무사히 착륙한 것을 기념하는 무알코올 샴페인과 탑승 인증서를 증정하는 세레모니도 열린다.
◆‘이제는 신고하지 마세요’… 수륙양용버스
“이제 우리 버스, 물에 빠졌다고 신고하시면 안 됩니다.”
부여에 수륙양용시티투어 버스가 도입된 이후, 실제로 경찰에 적지 않게 신고가 들어왔다. 버스가 땅이 아닌 물을 향해 뛰어드니, 사고가 난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는 부여의 명물 ‘수륙양용시티투어 버스’다. 국내 유일 수상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콘텐츠다. 이름처럼 땅과 물을 모두 다닐 수 있다.
땅에서 다닐 때를 위한 일반 엔진과 물 위를 달릴 선박 스크류용 엔진 총 2개의 엔진이 있다. 수륙양용버스 기사는 버스와 선박 운전면허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처음 주차장에서 버스와 마주했을 때에는 여느 버스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보인다. 언제 물 위를 떠다니는 버스를 타 보겠나. 이 역시 부여 관광 콘텐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부여 수륙양용버스는 2020년 7월 운행을 시작해 지난 5월까지 24만명 이상의 승객을 태웠다. 내부에는 운전기사와 가이드 두 사람이 손님들에게 관광 루트를 안내하고 소개한다.
버스는 부여 롯데리조트 앞 백제문화단지에서 출발해 고란사, 낙화암, 천정대를 거쳐 다시 원점으로 복귀한다. 약 40분 코스다. 육지에서 강물로 들어갈 때 ‘오 내가 수륙양용 버스를 탔구나’ 실감이 난다.
이후에는 유람선을 탄 것과 비슷한 느낌. 맞은편에서 다른 수륙양용버스와 마주칠 때 사진을 꼭 남겨보자.
◆기차타고 부여여행… 편하고 재밌게 다녀오세요
이같은 코스를 운전하지 않고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관광상품이 나왔다. 코레일관광개발은 부여군과 함께 오는 11월 1일부터 ‘백제의 숨결을 찾아서 : 부여 유네스코 탐(探)행’ 기차여행을 운영한다.
여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광지인 ▲부여 왕릉원 ▲정림사지 ▲부소산성 등을 둘러보고 선택에 따라 수륙양용 시티버스와 열기구를 체험할 수 있다. 이는 ‘당일여행’과 ‘숙박형’ 중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운전하지 않아도 돼 아빠들이 더 좋아한다고.
한편 코레일관광개발은 인구 감소를 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커플 매칭 프로그램 ‘굿바이 너만 솔로, 커플 열차’ 같은 이벤트도 다음달 17일 부여군 일원에서 진행한다.
김시섭 코레일관광개발 대표이사는 “이번 유네스코 답사 기차여행은 부여의 문화적·역사적 풍부한 유산을 전국에 알리는 좋은 기회”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여행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부여=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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