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이가섭, 눈으로 표현한 1인2역 [이슈스타]

4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현수오, 현건오 1인2역을 소화한 배우 이가섭. TEAMHOPE 제공.

 

쌍둥이의 존재를 몰랐던 시청자에게 ‘백설공주’ 최대 반전은 배우 이가섭의 1인2역이었다. 무천마을에 다시 나타난 건오, 그날의 기억을 안고 살아온 수오는 ‘백설공주’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였다. 

 

지난 4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백설공주)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 전과자가 된 청년이 10년 후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담은 역추적 범죄 스릴러 드라마. 이가섭은 자폐를 앓고 있는 쌍둥이 형 수오이자 10년 만에 마을로 돌아온 쌍둥이 동생 건오를 동시에 연기했다. 

 

폐쇄된 마을, 진실을 감춘 마을 사람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반전의 연속이었다. 탄탄한 대본과 디테일한 연출, 배우진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은 입소문을 타고 ‘백설공주’ 시청률 상승에 기여했다. 2%대의 시청률로 시작한 ‘백설공주’는 최고 8.8%(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마무리됐다. 종영 후 서울 강남구 인근에서 만난 이가섭은 “지상파에서 방송되는 장르물이기에 시청률에 대해 예상은 하지 못했다. 상승하는 시청률 추이를 보면서 잘 만든 작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백설공주’는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 넬리 노이하우스의 소설 ‘Snow White Must Die’를 원작으로 각색했다. 이가섭이 맡은 역할은 원작과 다른 점이 많아 크게 참고하지 않고 대본에 충실했다. 작품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렵겠다’였다.

 

과연 수오와 건오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극과 극의 1인2역을 위해서는 애매하지 않고 확실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이가섭은 “수오는 사건의 키를 가졌고, 건오는 정우에게 보영이의 물건을 전달해준다. 죄책감을 가진 채 외부의 압박에도 혼자서 답답하게 견뎠다. 어렵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4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현수오, 현건오 1인2역을 소화한 배우 이가섭. TEAMHOPE 제공.

두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외향적인 차별화를 꾀했다. 건오는 안경을 썼고, 의상 분위기도 극명하게 갈렸다. 얼굴의 점 하나도 수오는 없애고 건오에겐는 남겼다. 가장 직관적인 차이는 ‘눈빛’이었다. “처음 건오가 등장할 때는 인물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만, 수오는 그렇지 않았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쳐다보는 수오와 건오의 차이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비교했다. 

 

2021년 촬영을 시작해 2022년 촬영이 끝났다. 방영까지 약 2년 동안 편성을 기대하고 기다렸다. ‘백설공주’ 출연진들은 입을 모아 “기다림이 초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촬영 당시부터 끈끈하게 팀워크를 다져온 출연진들은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더 진한 우정을 나눴다. 이가섭은 “배우들끼리 너무 잘 뭉치고 친해졌다. 기다림이 잠시 길어졌을 뿐 언젠가 방송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벌써 끝을 맺게 되어 벅차오른다”고 답했다. 배우들은 서로 고생했다고 다독이면서 마지막 회도 함께 시청했다. 막상 종영하고 나니 믿기지 않는 마음에 서운함까지 몰려왔다. 2년간 끊기지 않은 단톡방에는 ‘자주 보자’는 인사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폐를 앓고 있는 수오도 한국을 떠나서도 죄책감에선 벗어날 수 없던 건오도 11년 전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정우(변요한)의 결백을 밝히고 보영이와 다은이의 유골을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1년간 다은이의 유골을 간직해 온 수오의 반전은 시청자를 충격으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극 중 수오는 하설(김보라), 정우(변요한) 그리고 아버지 현구탁(권해효)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가섭은 “선배님과 어떻게 호흡을 맞춰야 하나 고민했는데 막상 촬영할 때 주시는 에너지를 받으니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회상했다. 특히 현구탁 역의 권해효가 두 아들을 보는 눈이 달랐다. 그 눈빛에 따라 이가섭도 자연스럽게 수오가 되고 건오가 됐다.

 

극을 이끈 11년 전 살인 사건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부성애’로 포장하기엔 지나치게 잔인하고 파렴치한 과거였다. 자식을 위해, 아니 내 자식만을 위해 남의 자식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한 청춘의 인생을 망쳤다.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심보영(장하은)의 아버지 심동민(조재윤),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이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는 양병무(이태구)의 아버지 양흥수(차순배), 너무 뻔뻔해서 자칫 아무 잘못이 없게 느껴지는 신민수(이우제)의 아버지 신추호(이두일), 그리고 야욕을 가지고 이 모든 상황을 지휘한 현수오·건오(이가섭)의 아버지 현구탁이었다. 

 

세 아버지의 행동은 아들을 위한다고 해도 잘못된 부성애였다. 현구탁에게 아들은 사회에서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이용된 존재일 뿐이라 생각했다. 다은이의 유골에 불을 붙이는 현구탁의 행동도 수오를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했다. 이가섭은 “자신의 만행이 들키고 평판이 떨어질 거라 생각해서 자살을 택하려 하지 않았을까. 수오는 정우가 책임져주리라 생각한 것 같다”며 “끝까지 벌 받게 한 엔딩이 좋았다”고 답했다.

4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현수오, 현건오 1인2역을 소화한 배우 이가섭. TEAMHOPE 제공.

정우 역의 변요한과는 한솥밥을 먹고 있다. 이전 소속사부터 인연을 함께 하는 변요한은 이가섭이 출연한 작품을 모두 보고 피드백해 줄 정도로 정 많은 선배다. 극 중 호흡은 어땠을까. 이가섭은 “정우는 캐리어를 끌고 오는 건오에게 바로 ‘건오야!’라고 말한다. 반면 무천가든에서 만난 마을 어른들은 건오가 들어가도 ‘수오?’라고 묻는다”며 “정우가 이름을 바로 불러줄 때 가슴에 오는 느낌이 있었다. 넘겨주는 호흡을 잘 받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수오에게 정우, 그리고 건오에게 정우는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다. 이 같은 물음에 이가섭은 “건오에겐 둘도 없이 우정을 나눈 친구였을 거다. 10년간 건오의 행동을 돌려보면 죄책감과 답답함, 그리고 말 못하는 미안함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수오도 정우가 자신을 챙겨주는 걸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다은이를 지켜줄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정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몰입감 넘치는 스토리로 호평을 받은 ‘백설공주’는 학창시절을 연기한 성인 역의 배우들로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수오와 건오의 학청시절을 연기한 이가섭도 화제의 인물이었다. 이가섭은 “성인 역의 배우들이 과거 장면을 연기해서 감정이 이어질 수 있었다”면서도 “댓글 중 ‘수오가 교복 입은 건 괜찮은데 건오는 왜 늙어 보이지’라는 반응이 재밌었다”고 언급했다. 

 

2017년 ‘폭력의 씨앗’으로 2018 대종상 영화제 신인남우상을 받은 이가섭은 영화 ‘도어락’, tvN 드라마 ‘비밀의 숲2’, ‘지리산’ 등에 출연했다. 올해는 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에 얼굴을 비쳤고, 디즈니 플러스 ‘삼식이 삼촌’을 통해 변요한과 한 번 더 호흡했다. 여기에 ‘백설공주’까지 큰 사랑을 받으며 시청자들에게 강한 눈도장을 찍었다. 

 

대학 재학 이후 약 10년 가까이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까진 바둑 관련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이었다. ‘바둑과 정반대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가섭은 “바둑과 달리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다 보니 연기를 떠올린 것 같다. 연기 학원에 다니면 음악, 무용 등을 다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고 돌아봤다. 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에 단번에 합격해 연기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4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현수오, 현건오 1인2역을 소화한 배우 이가섭. TEAMHOPE 제공.

 

매 작품 도전이자 변곡점이었다. 크게 달라지는 점 없이 지금도, 앞으로도 꾸준히 나아가고자 한다. ‘백설공주’의 마지막 촬영은 수오와 가족을 이뤄 저녁을 함께 먹는 장면이었다.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걱정하면서도 ‘끝’이라는 단어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시청자의 반응 중에는 ‘둘이 쌍둥이인지 한 명이 연기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가섭은 “아직 화면에서의 내 모습은 부끄럽다.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개선해야지 생각하는데, 막상 다음 촬영에서도 개선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이가섭은 ‘눈에 이야기가 담긴 배우’가 되길 바란다. 어떤 대본이든 그 이야기를 눈으로 담아 보는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 연륜도 쌓이고 경험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백설공주’는 배우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줬다. 연기하는 내내, 촬영이 끝나고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가섭은 “좋은 동료, 선배님들, 감독님을 만나서 감사하다. 큰 힘이 됐다”는 소감을 전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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