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준의 독한 S다이어리]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의 호소 "부탁합니다"

대형 서점 내 한 코너에서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의 스토리를 담은 도서가 진열돼 있다. 권영준 기자

 “어렵겠지만,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말 초등 4학년인 딸과 함께 서점에 들렀다. 관심사가 다르기에 각자의 책을 살펴보고 있던 중 딸아이가 소리쳤다. “아빠, 손흥민이다.” 아빠가 체육부 기자라는 것을 아는 딸은 재촉하듯 손을 잡고 한편에 나열된 도서 코너로 향했다. 그곳에 나열된 책은 ‘후(WHO) 시리즈(다산 어린이)’ 중 손흥민 편이었다. 최근 한국 축구대표팀이 핫이슈인 것을 아는지, 손흥민 외에도 김민재, 이강인이 함께 나열돼 있었다. 걸그룹 ‘아이브’에 빠져 있는 딸은 축구엔 관심도 없다. 그런데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은 알고 있었다.

한국축구대표팀 손흥민(오른쪽)이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3차예선 1차전 팔레스타인과의 경기에서 상대와 볼을 다투고 있다. 서울월드컵=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세 선수의 책을 차례로 둘러보면서 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지난 5일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팔레스타인과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조별리그 B조 1차전 경기였다. 이 경기는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이 10년 만에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 첫 경기였다. 그래서였을까.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2% 부족한 모습이었다.

한국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3차예선 1차전 팔레스타인과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서울월드컵=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그런데 이날 경기에서 가장 뜨거웠던 것은 홍 감독의 전술, 선수들의 활약 여부가 아니었다. 바로 ‘야유’였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대한축구협회와 정몽규 협회장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전달했고, 또 홍 감독이 전광판 화면에 잡힐 때마다 ‘우~’라며 야유를 보냈다. 손흥민의 슈팅, 그리고 홍 감독의 표정이 영상에 잡힐 때면 응원과 야유가 동시에 나오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경기 후 김민재는 관중석을 찾아가 “좋은 응원 해주세요. 부탁 드릴게요. 부탁드릴게요”라고 외쳤다. 주장 손흥민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미 결정된 가운데 저희가 바꿀 수는 없는 부분이다. 어렵지만 많은 응원과 사람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강인 역시 “선수들은 100% 감독님을 믿고, 감독님을 따라야 한다.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다”면서도 “팬 여러분들 당연히 많이 아쉽고, 많이 화가 나겠지만, 그래도 꼭 더 많은 응원과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 서점가에서도 아이들이 많이 찾는 도서의 주인공, 걸그룹 밖에 모르는 초등학생도 아는 세 선수가 동시에 한국 축구팬들에게 “응원해달라”고 팬들에게 부탁했다.

 

 부탁했다. 응원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응원이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한국축구대표팀 김민재(오른쪽)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3차예선 1차전 팔레스타인과의 경기에서 상대와 볼을 다투고 있다. 서울월드컵=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물론 팬들이 선수단을 향해 야유한 것은 아니다. 홍 감독을 향한 비판이었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유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선수들 입장에서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경기장 안에서 충분히 영향을 받을 수 밖에서 없다.

 

 심리학 용어로 ‘상황적 압력(Situational Pressure)’은 개인이 특정 환경이나 상황에서 요구되는 행동을 수행해야 할 때 느끼는 압박감을 의미한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미 경기전 감독 선임 과정 및 홍 감독 선임으로 인한 논란을 인지하고 있었고, 여기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었다. 이 경우 자신감 위축, 불안을 경험한다.

 

 이와 더불어 ‘상황적 억제(Situational Inhibition)’을 겪었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 불안이나 긴장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자신감을 잃고 행동이 위축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상황적 압력을 받는 와중에 선수가 아닌 홍 감독에 보내는 야유라고 하더라도, 그 큰 소리의 야유를 듣는 선수들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국축구대표팀 이강인(오른쪽)이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3차예선 1차전 팔레스타인과의 경기에서 골 실패 후 아쉬워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이날 팬들의 야유는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그들을 향한 야유가 아닐지언정, 그 큰 함성의 야유는 선수들이 직접 경험할 수 밖에 없어다.

 

 협회와 홍 감독에 대한 팬들의 불신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선수들에게 영향을 줘선 안된다. 이는 경기력 저하라는 결과로 나온다. 팬들의 야유는 감독이 아닌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대표팀은 오는 10일 오만과 2차전 원정에 나선다. ‘승리하지 못하면 위기에 놓인다’라는 부담감을 안고 싸워야 한다. 이럴때 일수록 응원이 필요한 시기다. 홍 감독을 향한 야유는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 지금은 어쨌든 응원만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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