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선택적 역설’이 음원차트에 미친 영향

그룹 에스파의 5월13일 발매 곡 ‘슈퍼노바(Supernova)’가 국내 음원차트 기록을 다시 썼다. 에스파 정규 1집 ‘아마겟돈(Armageddon)’ 선공개 타이틀곡으로 등장한 ‘슈퍼노바’는 2일 음원플랫폼 멜론과 지니 주간차트에서 15주 연속 1위를 달성했다. 특히 멜론차트에선 2004년 11월 멜론 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20년 만에 역대 최장기간 1위 신기록 경신에 성공했다. 기존 기록은 걸그룹 뉴진스의 ‘디토(Ditto)’가 달성한 14주 연속 1위였다.

 

그런데 이 부분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Supernova’ 다음 순위 곡들에 대해서다. 언급한 기존 기록 보유곡 ‘디토’는 2022년 12월19일 발매된 곡이다. 다음 3위는 11주 연속 1위를 기록을 가진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이며, 2020년 8월21일 발매됐다. 그리고 4위는 악뮤의 ‘러브 리(Love Lee)’다. 9주 연속 1위 기록이며, 2023년 8월21일 발매됐다. 공통점이 뚜렷이 눈에 띈다. 1~4위까지가 모두 2020년대 발매 곡들이란 점이다.

 

그 이전을 찾아보려면 5위까지 내려가야 하며, 8주 연속 1위로 공동 5위 랭크된 6곡 중에도 지코의 ‘아무 노래’와 미란이-먼치맨-쿤디판다-머쉬베놈의 ‘VVS’가 2020년대 곡이다. 같은 순위의 브레이브걸스 ‘롤린'(Rollin')’ 역시 그 자체론 2017년 곡이지만 역주행 1위는 2021년 이뤄졌단 점에서 공동 5위 6곡 중 절반이 2020년대에 1위를 기록한 셈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1~5위까지 10곡 중 7곡이 2020년대 1위곡들이 된다. 편중도 이런 편중이 또 없다.

 

그럼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나는 걸까. 왜 2020년대 들어서자 전에 없던 초장기 1위 히트곡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느냐는 말이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저 연속 1위 기록의 기준 플랫폼이 멜론으로 특정된단 점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멜론은 특히 2020년대 들어 점차 ‘고인 물’ 플랫폼 인상으로 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모바일인덱스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에서 처음 멜론을 추월한 이래 지금껏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고 있는 또 다른 음원플랫폼 유튜브뮤직의 ‘대세’ 분위기 탓이 크다.

 

애초 음원플랫폼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건 2020년대 들어 음악에 관심 있고 대중문화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이 대거 유튜브뮤직으로 이동하면서부터다. 그러면서 멜론 등 기존 음원플랫폼은 각종 상품매장과 팬덤의 선호로 버틴단 얘기까지 돌기 시작했다. 그런 탓에 유튜브뮤직서 따로 발표하는 음악차트도 대중음악 씬의 빠른 유행 변화가 훨씬 격렬하게 드러난단 평가를 받고 있다. 차트에 관련 유튜브 동영상들 반향까지 총합하는 구조로 다양해진 음악소비 형태를 수용함으로써 더더욱 유행지표로서 역할이 두드러진단 평가.

 

그러다보니 당장 유튜브뮤직 차트만 봐도 2020년대의 저 어마어마한 연속 1위 기록들은 상당수 달라진다. 화두가 된 ‘슈퍼노바’도 그렇다. 유튜브뮤직 차트에선 5월10일~16일 주간차트에서 1위로 첫 등장한 이래 중간 중간 뉴진스의 ‘하우 스위트(How Sweet)’와 ‘슈퍼내추럴(Supernatural)’, 이영지의 ‘스몰 걸(Small Girl)’, 르세라핌의 ‘크레이지(Crazy)’ 등에 여러 차례 1위를 빼앗겨 8월30일~9월5일 주간차트까지 총합 7주 1위 정도가 된다. 기록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기존 기록을 보유하던 뉴진스의 ‘디토’도 마찬가지다. 2022년 12월16일~22일 주간차트에서 1위로 첫 등장한 뒤 같은 팀의 ‘OMG’, 아이브의 ‘Kitsch’ 등에 1위를 빼앗기며 총합 5주 1위 정도가 된다.

 

결국 저 14주, 15주 연속 1위란 기록은 많은 점에서 ‘지금의’ 멜론차트이기에 가능했던 것일 뿐, 현재 유튜브뮤직이 넘겨받은 빠른 유행반영 측면을 멜론이 함께 떠안고 있었던 시절과 같이 놓고 비교할 순 없단 것이다. 이처럼 대중문화계에서 불과 몇 년 새 벌어진 유난한 이상 현상엔 대부분 플랫폼 자체의 변화 등 유물론적 차원이 개입돼있게 마련이다.

 

한편, 또 다른 측면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무리 기준을 유튜브뮤직으로 바꿔놓고 본다 해도 근래 히트 음원들의 차트 장기점령 분위기는 틀린 얘기가 아니란 것이다. ‘슈퍼노바’ 역시 그렇다. 연속 1위 기록만 유튜브뮤직서 깨지고 있을 뿐, 1위가 아니었던 때도 단 한 번 3위, 나머진 모두 2위에 랭크돼있었다. 몇 차례 신곡들 유행파워에 밀려 한두 계단 내려갔다가도 다시 1위로 돌아오곤 한다. 다른 근래 히트곡들도 많건 적건 비슷한 양상이다. 고점에서 순위가 크게 떨어지지 않으며 그대로 차트에 ‘눌러앉는다.’ 예컨대 4월1일 발매된 걸밴드 QWER의 ‘고민중독’ 역시 그로부터 5개월 지난 8월30일~9월5일 주간차트에서도 여전히 4위다. 한 번 인기 얻은 음원은 소위 말하는 ‘차트 고인 물’이 되기 십상이다.

 

여기서부턴 좀 더 거시적 차원에서 상황을 바라봐야 할 필요도 있다. 소위 ‘대중픽’의 산 현장이라 불리는 유튜브뮤직 차트에서까지 ‘결국은 고인 물’이 돼버리는 건 코로나19 팬데믹 기점으로 대중문화계 전반에 걸쳐 펼쳐지는 극단적 ‘쏠림 현상’, 이른바 ‘위너 테익스 올(Winner Takes All)’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 영화계는 이미 “‘대박’ 아니면 ‘쪽박’”이란 말로 이 같은 ‘쏠림 현상’을 극단적으로 증명하는 부문이 됐다. 소위 ‘되는 것만 더 잘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출판계나 TV드라마 등 여타 문화 분야에서도 뚜렷이 나타나다 결국 대중음악계까지 도달했단 인상.

 

일반적으로 이 같은 현상은 대중문화계 콘텐츠 활성화 저하기에 일어난단 인식이지만, 지금은 그와는 오히려 정반대 원인으로 일어나고 있단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금은 뉴미디어 폭발로 유통되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온단 것이다. 이를 ‘선택의 역설’이라 부른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지다 보면 그중에서 원하는 걸 선별하는 과정 자체에 피로감과 막막함을 느껴 그저 ‘남들이 택하는 것’을 따라 소비하기가 더 쉬워진단 관찰. 얼핏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개념이 떠오르는 대목이지만, 본래 그런 특징적 대중심리란 실질적으로 대중문화 분야서 가장 격렬히 일어나는 게 상례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이 같은 음원차트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차원에서 진지하게 연구돼야 할 과제다. 이미 변덕스런 단순 트렌드 차원은 벗어난 지 오래고, 전반적 대중심리 흐름 변화로 보인단 점에서 그렇다.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내면 대중문화계 또 다른 분야, 또 다른 영역에서도 적용해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단 점에서 더 깊이 있는 관찰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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