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Focus] 아쉽게 놓친 메달?…당신은 이미 반짝반짝 빛납니다

사진=뉴시스
최세빈이 4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 결승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공격을 성공시킨 뒤 포효하고 있다.

“메달 없이도, 당신은 반짝반짝 빛납니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다. 선수들에겐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택받은 이들만이 설 수 있다. 저마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순간을 그리며 달려왔을 터. 과거엔 성과주의가 짙었다. 은메달을 품고도 “금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하다”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한 끗 차이로 메달을 놓친 이들의 허탈감은 어땠을까. 이제는 아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물론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한층 성숙해졌다. 최고의 경기를 펼치기 위해 흘렸던 수많은 땀과 눈물은 그 자체만으로 큰 울림을 준다.

 

◆ “4위면 불행할 줄 알았는데…아니네요.”

 

펜싱 여자 사브르 최세빈(전남도청)에게 ‘2024 파리올림픽’은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 듯하다. 사실 이번 대회 전까진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지난해 튀니스 그랑프리 동메달이 유일한 입상이었다. 타고난 무대체질이었다.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서 당당하게 자신의 잠재력을 맘껏 드러냈다. 16강전 세계랭킹 1위 에무라 미사키(일본)를 꺾으며 이변을 일으켰다. 8강전에선 대표팀 동료 전하영을 상대로 대역전극을 썼다.

 

메달까진 닿지 못했다. 동메달결정전서 고배를 마셨다. 그것도 단 1점차 석패였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무엇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채웠다. 최세빈은 “올림픽서 4등한 선수는 안쓰럽고 불행할 것 같았는데 아니더라. 상위 랭커들과 맞붙으며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림픽을 앞두고 주변에서 ‘괜찮다’ ‘좋다’고 말해도 스스로 의심했던 것 같다”면서 “다시 올림픽에 나선다면 그땐 나를 믿어 보겠다”고 강조했다.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사격 이원호가 ‘2024 파리올림픽’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넌 금메달을 땄지만, 나도 금니가 있어.”

 

남자 사격 이원호(KB국민은행) 역시 다음을 기약했다. 공기권총 10m 개인전, 혼성전 등 이번 올림픽서 4위만 두 차례 했다. 눈앞까지 왔던 메달을 잡지 못했다. 심지어 이원호는 곧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지원할 예정이다. 만약 이번 대회서 메달을 땄다면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기에 혼성전 파트너인 오예진은 눈물을 터트렸다. 이원호는 그런 오예진을 달래며 “넌 금메달(개인전)을 땄지만 난 금니가 있다”고 괜스레 농담을 던졌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이원호는 오른손잡이 왼팔 사수다. 세계 사격 역사를 통틀어 봐도 굉장히 보기 드문 경우다. 원래 오른팔 사수였다. 고등학교 시절 알 수 없는 오른팔 떨림 증세가 찾아왔다.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한 대회서 부모님의 모습을 봤다. 이렇게 그만두고 싶진 않았다. 왼손으로 총을 잡았다. 왼팔 근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3㎏ 아령과 함께하고 밥도 왼손으로 먹었다. 메달, 그 이상의 도전 정신을 보여줬다.

 

사진=뉴시스
신유빈이 3일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탁구 여자 단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뒤 상대 선수 일본 하야타 히나와 포옹하고 있다.

 

◆ “할 수 있지? 당연하지. 할 수 있어!”

 

배드민턴 혼합복식 서승재(삼성생명)-채유정(인천국제공항)은 동메달결정전이 끝난 뒤 서로를 먼저 다독였다. 앞서 태극전사들의 맞대결로 펼쳐진 준결승전서 최고의 명승부를 선보였다. 1시간 17분 혈투 끝에 결승행 티켓을 놓쳤다. 체력소모가 컸다. 동메달결정전서 제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을 비롯한 유수의 국제대회서 우승을 거머쥔 팀이기에 미련이 남을 듯하다. 서승재는 “올림픽이 우리 인생의 끝은 아니다. 앞으로도 잘하자”고 전했다.

 

‘삐약이’ 탁구 신유빈(대한항공) 또한 이번 올림픽서 한 단계 성장한 면모를 보였다. 2020 도쿄 대회(2021년 개최) 때만 하더라도 미안한 마음에 왈칵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좀 더 단단해졌다. 개인 단식 4강에서 메달을 놓쳤을 때도 마찬가지. 경기 내내 스스로 “할 수 있지? 당연하지. 할 수 있어”를 외치며 몰입했다. 히아타 히나(일본)에게 패했지만 먼저 다가가 축하해주는 스포츠맨십도 잊지 않았다. “나보다 더 큰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끄덕였다.

 

여자 양궁 전훈영(인천광역시청)은 이번 올림픽 개인전서 한국 선수단 가운데 유일하게 빈손이었다. 하지만 ‘맏언니’로서 보여준 리더십은 금메달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대회 내내 10살가량 후배들의 컨디션을 알뜰하게 챙겼다. 단체전에선 첫 주자로 빠르게 경기를 진행, 후배들이 여유를 갖고 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대한양궁협회장 겸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직접 격려의 뜻을 전한 이유다. “진정한 1인자로서의 모습”이라고 극찬했다.

 

사진=뉴시스
서승재(왼쪽)와 채유정이 2일 프랑스 파리 아레나 포르트 드 라샤펠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동메달 결정전 일본 와타나베 유타-히가시노 아리사 조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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