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쉽지만….’
한국 남자 체조는 ‘2024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단체전 티켓을 놓쳤다. 1992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2020 도쿄(2021년 개최)까지 이어지던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출전 기록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여자 체조가 36년 만에 올림픽 단체전에 나서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선수들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에 도전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허웅(제천시청)은 한국 남자 체조에 혜성처럼 나타난 자원이다. 한국체대를 졸업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렇다 할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국가대표 정예멤버로 이름을 올린 기억이 없다.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국제체조연맹(FIG) 월드컵시리즈에 출전하면서부터다. 이집트 카이로 대회에서 2위, 독일 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아쉽게도 자력으론 파리에 닿지 못했다. 기제체조연맹(FIG)의 티켓 배분을 지켜봐야 했다. 한국엔 3장이 주어졌다. 이준호(천안시청)가 가장 먼저 출전권을 확보했다. 마루운동-안마-링-도마-평행봉-철봉 6개 종목을 모두 뛰는 개인종합에 도전장을 냈다. 이어 류성현(한국체대)이 마루운동에서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류성현은 도쿄 대회서 마루운동 4위를 차지했다.
남은 것은 이제 딱 한 자리뿐. 대한체조협회는 고심 끝에 베테랑 김한솔(서울시청)을 낙점했다. 기본적으로 국제대회 경험이 많다. 마루운동과 도마에서 강점을 보이는 점 또한 주목했다. 변수가 생겼다. 대표팀 김한솔(서울시청)이 대회 출국 이틀을 앞두고 부상을 당한 것. 훈련 도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대체 후보 선수 1순위였던 허웅에게 기회가 왔다.
각오를 다졌다. 자신의 생애 첫 올림픽. 어렵게 서게 된 만큼 마음가짐을 더욱 단단히 했다. 선배 김한솔의 몫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허웅은 “기술로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금메달을 목표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했다. 지난달 28일 남자 기계체조 안마 결선에서 14.900점을 얻었다. 남자 체조 선수 중 유일하게 결선행에 성공했다.
아쉽게도 시상대 위는 허락되지 않았다. 4일 프랑스 파리 베르시 아레나에서 열린 결선에서 14.300점을 기록했다. 8명 중 7위에 머물렀다. 야심차게 준비한 난도 6.7의 연기였다. 예상치 못한 치명적 실수가 나왔다. 긴장감이 컸던 탓일까. 연기 도중 기구에 다리가 걸려 떨어졌다. 곧바로 다시 경기를 이어갔지만 극복하긴 어려웠다. 수행 점수가 7.600점에 불과했다.
가장 속상한 것은 역시 선수 본인일 터. 점수를 확인한 뒤 머리를 감싸며 눈물을 보였다. 순위를 떠나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지 못했다는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허웅은 “좀 더 자신 있게 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 도와주신 분들에게 보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긴장을 이겨내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밝혔다.
좌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경험하며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허웅은 “앞으로 부상 없이 나아간다면 1년 안에 세계 모든 선수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안마에 출전하는 키 큰 선수들은 물구나무 설 때, 키 작은 선수들은 안마를 넓게 짚을 때 어려워한다. 난 적당해(178㎝)에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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