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Star]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오상욱, ‘새 역사’가 되다

사진=뉴시스/ 오상욱이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많은 의미가 담긴 메달이네요.”

 

한국 남자 사브르 ‘간판’ 오상욱(대전광역시청·세계랭킹 4위)이 크게 포효했다. 28일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파레스 페르자뉘(튀니지·세계랭킹 14위)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회 한국이 신고한 첫 금메달이다. 14-6으로 앞서다 14-11까지 따라잡히는 등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파리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며 오상욱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진=뉴시스/ 오상욱이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 결승 튀니지 파레스 페르자니와의 경기에서 금메달을 확정 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 그 누구도 가지 못한, 최초의 길

 

새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다. 남녀 통틀어 한국 선수가 사브르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까진 김정환이 2016 리우데자네이루, 2020 도쿄(2021년 개최) 대회서 품은 동메달이 최고였다. 오상욱의 경우 생애 첫 올림픽이었던 도쿄 대회에선 개인전 8강까지 오르는 데 그쳤다. 이번 메달로 한국은 펜싱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2008 베이징 대회부터 5회 연속 올림픽 개인전 입상자를 배출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개인전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한국 펜싱 선수 최초의 발자취다. 그랜드슬램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AG), 아시아선수권 등 주요 메이저 대회를 모두 휩쓰는 것을 의미한다. 오상욱은 2019년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 지난해 항저우 AG 등을 석권한 바 있다. 오상욱은 “이번 메달은 많은 의미가 담긴 것 같다”면서 “(펜싱) 종주국 파리에서 그랜드슬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어 영광”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뉴시스/ 오상욱이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 결승 튀니지 파레스 페르자니와의 경기에서 금메달을 확정 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어려움 속에서, 간절함으로 더 강하게

 

오상욱은 대전 매봉초 6학년 때 처음 펜싱을 접했다. 형 오상민씨를 따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은 중학생 때부터다. 당시만 하더라도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다. 기본적으로 펜싱은 ‘비싼 종목’이다. 마스크, 재킷 하나에 수십만 원씩 한다. 자동차 부품 판매업을 하는 아버지의 외벌이로는 쉽지 않았다.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대전시교육청이 매봉중과 송촌고에 장비를 지원한 것. ‘운동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간절함은 오상욱을 더 강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환경뿐만이 아니었다. 매봉중 1학년 시절 오상욱의 키는 160㎝로, 또래보다 작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더 빠르고, 정확하게 찔러야 했다. 지독하리만큼 훈련에 매진하며 기본기에 집중한 배경이다. 중2때부터 키가 훌쩍 자랐다. 송촌고에 진학할 즈음 이미 190㎝에 육박했을 정도. 유럽 선수들의 뒤지지 않는 월등한 체격조건을 갖추게 된 것은 물론 파워와 속도, 유연성을 모두 갖춘 ‘펜싱 몬스터’로 자리매김했다.

 

사진=뉴시스/ 오상욱이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 결승 튀니지 파레스 페르자니와의 경기에서 공격에 성공한 뒤 환호하고 있다.

 

◆ 갑작스런 부상, 그것마저 뛰어넘어

 

가파른 성장 그래프를 그렸다. 고교시절 3년간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휩쓸었다. 2014년 12월 한국 사브르 최초의 고등학생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이듬해 2월 국제대회 데뷔전을 치렀다. 이탈리아 파도바 월드컵서 당당히 동메달을 걸었다. 차곡차곡 경험이 쌓이면서 오상욱은 더욱 무시무시해졌다. 2019년 세계랭킹 1위를 마크했다. 두 차례 그랑프리 우승에 빛난 것은 물론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금메달까지 휩쓸면서 세계 펜싱인들에게 제대로 각인을 시켰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2년 12월 연습경기 도중 오른쪽 발목이 꺾이며 인대가 파열됐다. 바깥쪽 인대 두 개가 완전히 끊어졌다. 펜싱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부상이었다. 올해 초엔 상대와 부딪히며 오른 손목 인대를 다쳤다. 한동안 깁스를 하고 다녔다. 그 여파로 지난 5월 열린 국제그랑프리대회서 개인전 8강에 머물렀다. 이후 마드리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도 개인전 16강전 탈락을 맛봤다. 연이은 실패 속에서 오상욱은 절치부심하며 반등을 준비했다.

 

사진=뉴시스/ 오상욱이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기뻐하고 있다.

 

◆ 다시 한 번, 동료들과 영광의 순간을

 

끝이 아니다. 단체전이 남아 있다. 구본길(국민체육진흥공단), 박상원(대전광역시청)과 함께 또 한 번 금메달에 도전한다. 특히 남자 사브르 단체전은 이번 대회서 올림픽 3연패 위업을 달성하고자 한다. 3년 전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 막내로 나섰지만, 이제는 에이스로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오상욱은 “단체전은 동료들과 같이 한 사람이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메워주는 맛이 있다”면서 “단체전 금메달까지 따고 편하게 쉬도록 하겠다”고 주먹을 꽉 쥐어보였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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