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관록에 기대를 건다.
5월 28일, KBO리그가 큼지막한 트레이드 하나에 들썩였다. 맞교환 된 선수들의 이름값 때문이다. KT는 리그 대표 홈런 타자 박병호를 넘겼고, 삼성은 반대급부로 좌타 거포 오재일을 떠나 보냈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니지만,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돼 각 팀을 상징하는 타자로 거듭났던 둘의 이적 소식이었기에 파급력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오재일의 다사다난한 KBO리그 항해는 그렇게 마법사 군단에 도달했다. 2005 KBO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전체 24순위로 현대에 지명됐던 그는 현대를 이어받은 넥센(현 키움)에서 2011시즌까지 소화했다. 이후 트레이드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고, 생애 첫 FA 자격을 얻어 삼성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트레이드를 겪게 됐다.
17시즌 통산 타율 0.274(4317타수 1182안타), 209홈런 843타점, 베테랑다운 성적표를 남겨왔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치른 그도 ‘에이징 커브’는 피해갈 수 없었다. 지난 시즌 타율 0.203(315타수 64안타) 11홈런으로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고, 올해도 이적 전까지 타율 0.234(64타수 15안타) 3홈런 8타점에 그쳤다.
이번 트레이드가 변곡점이 되길 바라는 배경이다. 오재일도 트레이드 후 “주전에 대한 욕심보다 하루하루 나에게 준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좋은 결과가 쌓이면 경기도 많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경기를 못 뛰어도 후배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할 것이다. 무엇보다 더 재미있게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당찬 다짐과 함께 새출발했지만, 갑작스러운 이적은 백전노장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KT에서 치른 첫 17경기에서 타율 0.122(41타수 5안타)에 머물렀다. 그나마 홈런 2방이 나온 게 위안이었지만, 되찾지 못한 타격감 때문에 대타 출전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조금씩 기지개를 켠다. 18일부터 사흘간 홈 수원에서 펼친 롯데와의 3연전이 계기가 됐다. 첫날 4번 1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팀 승리에 공헌했다. 이어진 19일에도 선발 출격해 다시 멀티히트(5타수 2안타)를 빚었다. 이어진 20일에는 대타로 나서 적시타를 올림으로써 달아나는 타점까지 빚기도 했다.
시즌은 절반 가까이 남았다. 조금 느릴지라도 회복세를 보인다는 점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KT 이강철 감독도 “이제는 팀에 많이 적응을 했다. 고참들 하고도 잘 지내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부활을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더 꾸준한 활약이 더해져야 한다. 사령탑은 “천천히, 시간이 있으니까”라며 베테랑을 향한 배려의 메시지를 건넸다.
다행히 부활을 기다려 줄 여유가 있다. KT 1루에 재능을 터뜨리고 있는 문상철이 있기 때문. 그는 타율 0.275(204타수 56안타) 11홈런 32타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풀타임 시즌이 사실상 처음인 만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1루 자원이 버티는 게 KT가 그리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바로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할 오재일, 그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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