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KT는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쌍용건설에 대한 채무 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2020년 967억원에 KT 신사옥 건설 공사를 수주한 쌍용건설은 2022년 7월부터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는 이유로 공사비 171억원 증액을 요청했다. 하지만 KT는 2020년 시공사 선정 당시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은 없다’는 내용의 물가변동 배제 특약 조항을 추가했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쌍용건설은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 건설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고, KT 사옥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KT는 “공사비를 이미 모두 지급해 쌍용건설 측이 주장하는 추가 비용을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법원으로부터 확인받고자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설 과정에서 쌍용건설의 요청에 따라 공사비를 조기 지급했고 설계 변경에 따라 늘어난 공사비 45억5000만원도 지급했다고 밝혔다.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하고 사안의 명확한 해결을 위해 법원의 정당한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쌍용건설은 KT의 소 제기에 강하게 반발했다. 즉각 입장문을 내고 “KT가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시공사와 원만한 타결을 위해 성실히 협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당사에 내부 논의할 시간을 달라고 해 계획한 KT 본사 집회를 연기했다”며 “처음부터 협상 의지가 없으면서 수개월간 언론과 시공사에 거짓을 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쌍용건설은 KT를 상대로 별도의 공사비 청구 소송을 하고 집회 등도 열 계획이다.
KT는 쌍용건설 외에도 롯데건설, 현대건설, 한신공영 등과 공사비 증액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건설사들은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KT는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내세워 거절하고 있다.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장 곳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건설업계에선 물가 상승을 인정하지 않는 계약 관행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공사비 갈등이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분쟁예방을 위해 정비사업 특화 표준계약서를 활용해 물가 인상을 공사비에 반영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건설분쟁조정위원회와 민관합동 PF조정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중재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가 내놓은 중재방안의 법적 강제성이 없어 분쟁 조정에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건설사들은 물가상승을 반영한 공사비 증액만이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주장하지만, 공사를 맡긴 사업주 측은 증액에 난색을 보여 갈등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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