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쳤다.
1960년 이후 64년 만의 우승에 도전했던 축구 대표팀이 요르단과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에서 최악의 경기력으로 패배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조별리그 2차전보다 더욱 실망스러운 경기를 선보였다.
클린스만 감독의 과한 유럽파 의존도가 끝내 탈이 났다. 클린스만호는 이번 대회 내내 특정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상대에게 제대로 간파당하며 무너졌다.
◆ ‘해줘’ 축구
클린스만 감독은 유럽파들을 중용했다. 최근 한국 축구는 유럽 빅클럽에 뛰어난 선수들이 활약 중이다. ‘주장’ 손흥민을 비롯해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등 각 리그에서 주목받는 스타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려가는 것은 당연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엔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즐겁다”면서 “대표팀에는 뼈대가 중요하다. 주축들을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준 높은 유럽파들의 개인 능력에만 크게 의존했다. 축구 팬들은 이를 두고 ‘해줘 축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조별리그부터 큰 부담을 줬다. 손흥민은 매 경기 상대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면서 4강까지 모든 경기를 풀타임 소화했다. 이강인은 호주와의 8강전 연장 후반 종료 직전에 벤치로 향할 수 있었다. 경고 누적으로 4강에서 결장한 김민재도 대회를 치르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우승을 바라보는 팀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조별리그부터 혹사가 이어졌다.
결과도 쉽게 내지 못하며 주축 자원들은 조별리그부터 많은 체력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가장 중요한 4강 무대에서 체력이 고갈됐다. 이를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풀어가야 했으나 클린스만 감독은 지켜볼 뿐이었다. 요르단은 한국의 세부 전술 부재를 제대로 파고들었다. 한국의 반복된 패턴의 공격을 공략해 역습에서 득점을 뽑아냈다. 실점 이후에도 클린스만 감독은 별다른 대안을 내지 못했다. 그나마 이번 대회에서 잘 통했던 선수 교체 효과도 통하지 않았다.
팀 스포츠인 축구에서 조직력은 필수 요소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있더라도 팀적인 움직임을 가져가지 못하며 무너지기 마련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자율적인 판단을 믿는다’는 명목으로 선수들을 능력을 끌어내지 못했다.
◆ K리거 활용은 없었다
숱한 논란을 일으킨 클린스만 감독은 ‘K리그를 등한시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원격 근무를 하면서 유럽파 점검에 지속해서 시간을 쏟았는데 선수들의 개개인 특성을 잘 알아야 할 K리그에는 관심이 적었다. 대표팀은 유럽파들이 이끌어 가지만 뒷받침해줄 선수들은 K리거들이다. 이들의 역할을 간과했다. 선수들의 특성을 잘 모르다 보니 아시안컵에서 기용이 어려웠다.
이순민, 김진수, 문선민은 K리그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다. 특히 김진수는 10여년 동안 대표팀의 왼쪽 풀백을 책임졌다. 하지만 교체로 한 경기 나서는 데 그쳤다. 대회 초반에는 부상 때문에 출전이 어려웠으나 회복 후에도 벤치를 지켰다. 이순민과 문선민은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는 대회 내내 크게 흔들려도 기회를 받았고 이순민에겐 기회가 없었다. 짧은 기회 속에서도 투지를 보여줬던 박진섭도 벤치를 달굴 뿐이었다.
부임 이후 줄곧 지적된 문제가 실전에서 제대로 드러났다. 역대 초호화 전력이라 평가받았지만 이들을 조직적으로 묶지 못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무능과 무지가 아시안컵에서 초라한 성적표로 이어졌다.
최정서 기자 adien10@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