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와 예술가는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같지만, 사실은 위대한 사업이나 예술은 모두 독창성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나도 모르게 ‘뭔가 하고 싶다’는 열정이 피어오른다.
잠시 잊고 있던 내 안의 ‘기업가정신’을 일깨워주고 열정의 불씨를 이어가도록 하는 전시가 서울 회현동 피크닉(piknic)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시 제목은 무려 ‘회사 만들기: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이번 전시는 피크닉의 ‘만들기’ 시리즈의 일환으로, 아산나눔재단이 공식 후원했다. 장석환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아산나눔재단은 리더십, 불굴의 도전정신과 의지 등 기업가정신을 이루는 다양한 가치들을 문화·예술 작품을 통해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후원했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피크닉과 지난 1년간 전시 콘텐츠를 공동 개발했다.
◆ 모험하다, 시도하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실패’.
1층 전시 시작과 함께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Henry Shackleton)이 남극 대륙 횡단 탐험에 함께할 동료를 모집하는 광고가 관람객을 맞는다. “위험천만한 여행에 참가할 사람 모집. 임금 많지 않음. 혹독하게 춥고, 장시간 암흑이 지속됨. 무사 귀환이 의심스러움. 대신 성공하면 명예를 얻고 인정받을 수 있음.”
‘너, 내 동료가 되라’라는 유명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대사가 스쳐 지나간다. 당시 50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이들 중 26명의 대원이 ‘인듀어런스(영어로 인내라는 의미) 호’에 몸을 실었다.
결론적으로 섀클턴은 횡단에 실패했다. ‘실패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넣는다고?’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시장 속 섀클턴의 모험기를 따라가다보면 그의 리더십에 감명받게 된다. 4개월간의 항해를 목표로 했지만 부빙을 만나 남극을 코앞에 두고 얼음 속에 포위된 섀클턴 대원. 634일만에 ‘전원 생환’에 성공한다.
섀클턴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대원들을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는 결심을 꺾지 않는다. 특히 유머, 웃음, 게임과 음악으로 이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당시 상황이 담긴 사진 작품과 대원들의 일기, 주고받은 편지 내용 등은 관람객에게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 나를 이해하기→해답은 질문 안에 있다
섀클턴의 모험을 지나 2층으로 올라오면 갑자기 현실 속으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피크닉 측은 비즈니스 시작에 앞서 가장 먼저 분석해야 할 대상인 ‘자기 자신’에 대해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아키타입의 ‘유동하는 세계’가 관람객을 맞는다. 직업적 불확실성과 마주한 국내 경제활동인구 1000명의 현재 직업에 대한 가치, 지속가능성, 관점 등이 인포그래픽과 영상 화면을 통해 지나간다. 내 또래, 또는 다른 세대가 마주한 ‘직업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어 관람객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레벨나인의 ‘옵티컬 미, 포텐셜 미’ 작품에 새겨진 QR코드를 스캔하면 짧은 퀴즈가 나온다. 이를 풀면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알려주는 스티커가 인쇄돼 나온다. 테스트 결과는 뒤편의 LED화면으로 넘어가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찾을 수 있는 민구홍 매뉴팩쳐링의 ‘소크라테스 셋(질문을 입력하면 해답을 내어준다)’과도 간단한 질답을 나눠보자. ‘질문하기’가 어색한 한국인에게 질문을 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더 나아가 문제해결의 역사적 사례들이 전시돼 있다. 흥미를 이끄는 질문이 새겨진 나무 문을 열어보면 기업이 어떻게 해답을 내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 ‘현금 없이 식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문을 열어보면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 ‘다이너스 클럽’이 나오는 식이다. 월드와이드웹, 바퀴, 포스트잇, 먹는 피임약, 스타벅스에 이르기까지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업의 시작을 만든 질문을 엿볼 수 있다.
◆ 협력하고 소통하라… 겨울방학 맞은 아이들 ‘우정 다지기’
기업가정신을 실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단연 ‘소통과 협력’이다. 나 혼자만 잘 나서도 안되고, 모두가 한가지 목표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관객 참여형 작품이 기다린다.
소목장세미의 ‘동심 협력게임’은 이 구간의 가장 인기 코너다. 평일 오전 방문한 날에도 초등학생~중학생 아이들이 열정적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2인, 3인, 4인 팟으로 힘을 모아 공을 홀에 집어넣는 결코 쉽지 않은 게임에 도전한다. 줄을 쥔 사람끼리의 호흡 밸런스가 관건이다. 게임이 끝난 뒤 결과를 기록할 수 있고, 서로 메시지도 남길 수 있어 추억을 남기기 좋다.
◆ ‘더 나은 실패’를 위한 마음가짐은
3층은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되도록 더 많이, 빨리 실패할 것’을 조언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도전하는 과정에서 실패는 필연적이고, 이를 감수해 ‘더 나은 실패’가 필요하다.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려는 사람들은 그 심리 때문에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고 분석한다.
이곳에서는 통상적으로 ‘실패작’으로 불리는 B컷들이 대거 등장한다. 아티스트, 큐레이터, 광고기획자로 활동하는 에릭 케셀스의 ‘실패했다!(Failed it!)’ 시리즈다. 작가는 평범하고 특색없는 성공보다 낯설고 기발한 실패에서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기업가의 길을 떠난 기업가들의 여정을 그린 ‘영웅의 여정(입자필드)’에서 만나보자. 작가는 신화종교학자 조지프 캠벨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속 서사를 10단계로 축약해 창업가들의 여정에 빗대어 미디어 아트로 표현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이어지는 ‘기업과 사회’ 공간에서는 국내 주요 스타트업 대표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기업이 추구해야 할 사회적 책임과 사회의 자산으로서의 기업의 면모를 설명한다.
강명진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대표, 김도진 해피문데이 대표이사, 박재욱 쏘카 대표, 백승욱 루닛 의장, 스타일쉐어워 29CM를 창업한 윤자영 전 대표, 이슬아 이슬아컴퍼니 사장,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 등의 인터뷰가 한자리에 마련됐다.
원하는 인물의 영상이 나오는 곳에서 헤드폰을 착용하고 보면 된다.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고 정주영 회장이 낯선 인물인 듯하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인터뷰 영상을 사뭇 진지하게 보고 있다.
마지막 전시공간인 루프탑 라운지에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로 전시를 마무리한다. 이곳에서는 유명 기업의 ‘처음’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커다란 기업이 아닌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전시 기간 피크닉 별관에는 ‘겨울책방: 기업가의 서재’가 운영된다. 전 배달의민족 김봉진 의장이 추천하는 도서를 만나볼 수 있으니 함께 둘러보자. 전시는 2월 18일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글·사진=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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