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청룡의 해’ 맞는 LG 염경엽 “물음표 아닌 느낌표로 시작…그래도 늘 처음처럼”

프로야구 LG 염경엽 감독이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용학 기자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입니다.”

 

2023년은 프로야구 LG 역사에 길이 남을 해였다. 무려 29년의 타는 목마름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통합 우승, ‘V3’가 수놓아진 시즌이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있다. 전신인 MBC 청룡 포함, 역대 구단 지휘봉을 잡은 17명 중 3번째로 ‘우승 사령탑’ 타이틀을 쟁취한 염경엽 감독이다. 이제는 저문 계묘년에 인생의 가장 뜨거운 영광을 챙긴 그는 새롭게 찾아온 갑진년, 또 한 번 나아갈 채비를 하는 중이다.

 

◆미션 임파서블

 

“두려웠고, 초조했다.” LG 선장이 된 염 감독이 느낀 첫 감정이었다. ‘윈나우’를 천명한 LG가 그를 사령탑으로 발표했을 때, 팬심은 썩 따뜻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KS) 우승을 노리는 팀이 우승 경력이 없는 지도자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2000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선수’ 염경엽은 프런트로 제2의 인생을 출발했다. 2007년 코치로 보직을 바꿨고, 2013년 넥센(현 키움)의 지휘봉을 잡아 감독 커리어 시작을 알렸다. 철저한 계획과 영민한 지략으로 ‘염갈량’ 별명을 얻었지만 KS 우승과는 연이 없었다. ‘가을만 되면 작아지는 감독’이라는 안타까운 수식어도 피할 수 없었다.

 

팬들의 반발이 여기서 기인했다. 그는 “원래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달랐다. 과정보다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승 없는 우승 청부사’ 타이틀은 지금까지 보여준 내 실력에 대한 팬들의 냉정한 평가였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독이 든 성배’를 들어 올렸다. 염 감독은 “지난 실패가 오히려 결정의 이유가 됐다. 2001년부터 쌓아온 내 노력이 무색무취로 바래지는 시간들을 보며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배수진이었다. 그는 “계약 기간(3년)은 의미가 없었다. 올해 우승 못하면 감독으로서 은퇴한다는 생각이었다”며 “내 목 걸고 한 셈”이라고 껄껄 웃었다. 이어 “물론 팬들의 관심이 워낙 큰 LG 감독이기에 고민도 됐고 주변의 만류도 컸다. 리스크가 훨씬 크지 않나. 하지만 반대로 성공만 하면 파급효과는 배가 된다고 봤다”는 결정 배경을 덧붙였다.

 

프로야구 LG 염경엽 감독(오른쪽)이 KT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 도중 득점한 박해민을 안아주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올인(All-In)

 

“나 자신을 믿어야 했던 해.” 염 감독이 바라본 계묘년이 그랬다. 이를 위해 딱 2가지 목표를 내걸었다. 그는 “첫 번째로 어떤 상황이든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며 “스스로 ‘만약을 대비하지 말자’고 되뇌었다”고 말했다. 닥치지 않은 위기와 걱정을 파고들다 현실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선수들이 망설임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법이다. 매달 성과를 되짚었던 월간 미팅에서도 선수들에게 딱 하나만 말했다. ‘우리는 너무 잘하고 있고, 상대가 우릴 두려워하고 있다. 우린 해낼 수 있다’고. 그 자신감과 멘탈이, 내가 밖에서 바라본 LG가 필요한 마지막 퍼즐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져진 ‘긍정 멘탈’ 위에 다음 목표를 더했다. 염 감독은 “LG는 좋은 구성을 갖춘 팀이었지만, ‘어떤 색의 팀’이라 말할 요소가 없었다. 확실한 컬러를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프로야구 LG 염경엽 감독(가운데)이 2023 한국시리즈 우승과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뛰는 야구’가 시즌 초 뜨거운 감자였던 이유다. 그는 “단순히 뛰는 팀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었다. 공격적인 야구,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줄 야구를 위해 선택한 하나의 옵션이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팬들도 많이 힘들어하셨고, 심지어 구단 내부에서도 내게 이야기가 들어왔다. 바로 그때, 반대로 선수들이 내게 자신감을 줬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선발, 불펜 다 무너지면서 잠도 못 자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날아다녔다. 공격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보였다. 그게 내게 ‘우린 변하고 있다. 더 밀어붙여도 된다’는 확신을 줬다”고 회상했다.

 

승부수가 통했다. 그는 “재밌는 게임이 계속되고, 얻는 게 많아지면서 선수들에게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다. 그 신뢰가 내게도 자신감을 주는 선순환이 만들어진 셈이다”고 전했다. 말도, 탈도 많았던 복선을 완벽히 회수하며 원하던 수확물을 얻어낸 것이다. 그렇게 구축된 완벽한 시스템이 마침내 우승이라는 달콤한 결실을, LG에 그리고 염 감독 본인에게 선물했다.

 

프로야구 LG 염경엽 감독(왼쪽)이 2023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LG 구광모 회장과 포옹을 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남편’ 염경엽, ‘아버지’ 염경엽

 

어느 때보다 가족들에게 감사한 한 해다. 파란만장한 삶을 보내던 그가 지도자 복귀를 선택했던 그 시점, 사실 가장 큰 고민은 본인보다 가족들에게 지워졌다. 그가 SK(현 SSG)를 이끌던 2020년, 경기 도중 더그아웃에서 실신하는 아찔한 장면이 있었다. 모두가 놀랐지만, 가족들이 느꼈을 충격은 2배, 3배였다.

 

이번 복귀를 앞두고도 그 악몽을 떨칠 수 없었다. 염 감독은 “아내가 ‘우린 자기 건강이 첫 번째다. 다른 걸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데, 굳이 감독을 해야 되냐’는 말을 많이 했다”며 그때를 떠올렸다.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과오를 되풀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인드를 바꿨다. 염 감독은 “과거의 나는 내가 나를 죽이고 있었다. 다시 건강을 챙긴 2년 동안, 비우는 연습을 엄청나게 했다. 예를 들면 이제는 매일 저녁 퇴근할 때 내일 타순까지 다 짜놓고 감독실을 나간다. 이 방(감독실)을 나가면 야구 생각 안 하기로 정하는 거다. 집에 가서도 와이프한테 ‘야구 얘기 하지 마’, ‘하이라이트 틀지 마. 나 다 보고 왔어’라고 딱 말한다”고 웃었다. 당연하게도 아내는 귀신같이 그 말을 지켜줬다.

 

프로야구 LG 염경엽 감독이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독자들에게 보낸 새해 축전. 사진=김용학 기자

 

새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도 염 감독의 미소를 불러일으킨다. 감독실 화이트보드 구석에 적혀있는 ‘나는야 염경엽. 최고의 감독이지. 난 올해의 우승 감독이 될꼬얌’이라는 귀여운 문구는 바로 딸의 작품이다.

 

염 감독은 “페넌트레이스 중반쯤, 1위를 달리고 있을 때 와서 적어줬다. 우승한 게 다 저거 덕분인가”라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이어 “원래 딸이 야구장을 잘 안 오는데, 올해 이상하게 오기만 하면 승률이 좋았다”며 “그때부터 연패하고 있을 때나, 꼭 이겨야 할 때 의식적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짜 ‘승리요정’이었다. LG가 KS에서 유일하게 패했던 1차전 잠실 야구장에 딸은 없었다. 염 감독은 “도저히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티켓 열기가 뜨거울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2차전부터 칼을 갈았다. 그는 “표를 어떻게든 구했다. 그러니까 정말 0-4로 뒤지던 2차전을 택도 없이 이기지 않았나. 딸하고 예비 사위한테 ‘너희가 운발이 괜찮나 보다. 계속 와야겠다’고 했다. 진짜로 남은 경기 다 왔다”며 웃었다.

 

그는 “우리 가족들은 내 인생 과정을 모두 지켜보지 않았나. 어떤 노력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심지어 나보다도 잘 알고 있다. 우승하고 나니까 가장 많이 기뻐해 주고, 가장 많이 울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가족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처음처럼’

 

공교롭게도 청룡의 해가 그를 기다린다. 청룡이 LG에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팀의 전신이자 프로야구 출범을 함께했던 이름 ‘MBC 청룡’을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래 사주나 운세 같은 건 잘 믿지 않는다”는 염 감독도 우연의 일치로 찾아온 ‘청룡의 해’에 괜히 한 번 더 눈이 간다. 이 기분 좋은 우연을 살려, 일찌감치 공언했던 ‘LG 왕조’를 만들겠다는 일념뿐이다.

 

그는 “LG는 왕조를 이룰 수 있는 신구 조화가 잘 된 팀이다. 확실한 건 새 시즌에 우리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거다. 지난 우승으로 망설임과 두려움을 떨쳐냈다는 점은 상상 이상의 효과를 낼 거다”고 자신했다.

 

프로야구 LG 선수단이 2023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감수해야 할 변화는 있다.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미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어 확실한 합류를 장담할 수 없다. 선발진에는 ‘1선발’ 아담 플럿코 대신 디트릭 엔스라는 ‘뉴 페이스’가 등장했다. 알토란 활약을 펼친 이정용도 군 복무로 자리를 비운다.

 

염 감독은 “두렵지 않다. LG 첫 해 채은성도 그렇고, 키움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런 면으로 페넌트레이스 운영하는 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마인드가 있다고 자신한다”며 “오히려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로 시작하는 시즌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해를 맞는 마음가짐을 물었다. 그는 “우승과 함께 ‘인정받은’ 감독으로서 시작하는 첫해지 않나. 내게도 LG에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며 “내 좌우명은 ‘항상 늘 처음처럼’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감독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한 해를 만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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