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 20주년]‘K팝 레전드’ 동방신기, 20년 롱런의 역사

 

‘한류킹’·‘K팝 레전드’·‘K팝의 제왕’·‘K팝의 황제’·‘K팝의 지존’… 이처럼 그들을 표현하는 수식어는 넘친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동방신기(東方神起·TVXQ)는 한류의 초석을 다졌고, 현재까지 K팝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그룹이다.

 

 ‘동방에서 신이 일어났다’는 뜻을 가진 동방신기는 이수만 전 SM 총괄디렉터가 본격적인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기획했다. 유노윤호,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최강창민 사자성어 같은 독특한 예명으로 화제를 모았고, 신드롬을 일으켰다.

 

 동방신기는 2003년 12월 26일 SBS TV 송년특집 ‘보아 & 브리트니 스페셜’을 통해 처음으로 얼굴을 알린 후 ‘허그(Hug)’, ‘믿어요’, ‘더웨이유아(The Way U Are)’, ‘라이징 선(Rising Sun)‘, ‘오정반합(O-正.反.合.)’, ‘주문(MIROTIC)’ 등 히트곡을 내며 H.O.T. 해체 후 침체된 아이돌 그룹 시장을 부활시켰다. 2006년엔 Mnet·KM, 서울가요대상, 골든디스크, SBS ‘가요대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며 아이돌 그룹 최초 연말 가요시상식 그랜드 슬램 달성하는 위엄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2세대 아이돌 대표 주자로 ‘카시오페아’라는 거대 팬덤을 양산해냈다. 2008년에는 카시오페아 회원이 80만 명을 넘어서며 ‘세계에서 팬이 가장 많은 가수‘로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동방신기부터 빅뱅, 샤이니, 2PM 등까지 모두 같은 2세대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 시작을 사실상 동방신기가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세대와 1세대가 산업적 패러다임 측면에서 갈라지는 부분은, 2세대부턴 팬덤 전략이 가속화돼 지금의 K팝 산업 구조 기틀을 만들어냈단 점이다. 당시 동방신기 팬클럽 카시오페아는 그 거대한 규모로 대중문화계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적 관심을 모았고, 기존 대중성 지표에서 팬덤 지표로 대중음악시장 중심축을 바꿔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2005년 일본으로 건너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인지도와 인기를 쌓아나간 동방신기는 글로벌 아티스트로 올라선 방탄소년단 정도를 제외하고서도 일본서 보아와 함께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K팝 아티스트로 꼽힌다. 일본 시장에 진출 2년 만에 오리콘 차트 정상 등극은 물론 일본 최대 연말 음악방송인 ‘홍백가합전’에 한국 그룹 사상 첫 출전하며 일본에서의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2009년 한국 그룹 최초 도쿄돔 2회 공연 피날레 장식과 2012년 한일 통산 음반 판매량 1200만장, 2013년 해외 가수 최초 닛산 스타디움 공연 개최 등 지금까지 20회 공연으로 43만8000여명 관객을 모아 일본 라이브 공연 최다 관객을 동원한 역대 K팝 아티스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평론가는 “한류 흐름이 K팝에서 처음 가시화된 건 2000년 H.O.T.의 중국 베이징 공연 성사였다. 그러나 일반에 충격을 주기 시작한 건 수익적 측면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일본시장의 개척 시점이다. K팝 분야에선 보아와 동방신기가 일본시장 개척의 선봉을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고, 여전히 한류 자체의 개척자들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도 종종 회자되는 불교대학 공연, 애플스토어 계단 공연 등 바닥부터 쌓아올린 언더독 신화의 주인공으로도 기억된다. 한류는 동방신기 같은 팀이 국내에서의 성공과 위상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 제로에서부터 분투해줬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9년 7월 시아준수(김준수), 믹키유천(박유천), 영웅재중(김재중)이 법원에 “부당한 전속계약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며 소속사 SM을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해체 위기에 놓였다. SM 측은 2010년 4월 가처분에 대한 이의 신청 및 전속계약효력정지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했고, 조정 절차를 거쳤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고 갈등은 결국 3년을 넘겨 가까스로 합의에 이르렀다. 

 

  5인조 동방신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동방신기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멤버 수 변화에도 유노윤호·최강창민은 팀을 지켰다. 2인 체제 동방신기는 2011년 ‘왜(Keep Your Head Down)’으로 컴백해 보란듯이 정상의 자리를 탈환했고, 2012년 ’캐치 미(Catch Me)‘로 연타 홈런을 기록했다. 2012년 한 해 한국과 일본 통산 음반판매량은 1200만장, 일본 투어 공연서 55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1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3년에는 아시아 그룹 최초로 일본 5대 돔 투어도 진행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군백기를 가졌다. 유노윤호는 2015년 7월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했고, 최강창민은 2015년 11월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의경으로 복무했다. 군백기를 마친 동방신기는 2017년 8월 아시아 투어를 통해 활동을 재개했다. 2018년 일본 닛산 스타디움에서는 개장 이래 처음으로 3일 연속 공연하는 신기록을 썼고, 일본에서 해외 아티스트 사상 도쿄돔 및 전국 돔 최다 공연을 기록했다. 또 역대 앨범 합산 1000만 장을 넘기기도 했다. 이렇게 동방신기는 그룹 활동부터 솔로 활동까지 수많은 기록들을 세우며 변치 않는 명성을 더욱 공고히 다지고 있다. 그들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평론가는 “‘아이돌’이란 라벨을 단 상품이 20년이나 롱런해 활동할 수 있으리라곤 동방신기 데뷔 당시만 해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당시 ‘아이돌 수명은 5년이 한계’란 통설이 지배적이었다. K팝 아이돌그룹 수명이 동방신기와 함께 이렇듯 대폭 늘어나게 된 데는 상대적으로 음악아티스트 수명이 긴 해외시장 확충과 연관이 있지만, 궁극적으론 해외를 통한 공연시장 확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롤링스톤즈나 마돈나 등 해외 아티스트들도 공연시장 발판으로 초장기 커리어를 구가하고 있다. 국내 공연시장이 해외 못지않게 활성화될 수 있다면 향후 더 많은 아티스트들이 장기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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