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J팝의 본격 유입

요아소비

2일 열린 ‘멜론뮤직어워드 2023’(이하 ‘MMA’)에서 일본 J팝 아티스트 이마세가 J팝 페이보릿 아티스트상을 받았다. 해당 상은 이번 ‘MMA’에서 신설됐다. 단순 이벤트성인지 꾸준히 지속될 부문상인지조차 아직은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이렇게 상까지 신설해야 할 정도로 2023년 한 해 J팝은 국내서 열기가 대단했단 점이다. 이마세는 그 열풍을 처음 가시화시킨 아이콘으로서 수상자로 지목된 것일 테다.

 

한 번 물꼬가 트이자 후속도 계속 등장했다. 아이묭, 요아소비 등 J팝 아티스트들이 계속 국내 음원차트에 등장했다. 그중 요아소비는 12월16일과 17일 내한 콘서트가 예정돼있기도 하다. 근래 젊은 층이 대거 이동한 음원 플랫폼 유튜브뮤직 11월24~30일 주간차트를 보면 상황이 더 잘 드러난다. 요아소비(15위, 91위), 이마세(44위), 유우리(49위), 키타니 타츠야(52위), 에일(59위) 등이 100위권 내 포진해있다. 올해 상반기 유튜브뮤직 한국 차트에서 50위 내 8곡이 J팝으로 채워지며 “K팝 남자아이돌 노래보다 J팝을 더 많이 들었다”는 점이 국내 언론미디어에서 대서특필된 바도 있다.

 

이렇듯 ‘J팝의 본격 유입’이 대단한 화제가 된 만큼 그에 대한 분석도 국내 언론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이뤄져왔다. 결론적으로,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 등 SNS 숏폼을 통해 J팝 트렌드가 일어나고 있단 분석. SNS는 각종 게이트키핑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데다 그중에서도 숏폼은 단순 궁금증 정도로도 가볍게, 무엇보다 짧게 즐기며 J팝에 입문할 통로가 되다보니 저 폐쇄적인 J팝 산업일지라도 콘텐츠가 글로벌로 왕성하게 퍼져나갈 수 있었단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가 가장 가까운 나라 한국서 가장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단 것.

 

물론 그래도 한계가 뚜렷하긴 하다. 공교롭게도 J팝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요인, 즉 J팝은 한국서 SNS 숏폼 기반 인기란 점에 오히려 발목이 잡힌다. 숏폼 기반 음악 트렌드는 말 그대로 유행만 계속 체인 식으로 교체되는 것이지 해당노래를 부른 아티스트에의 관심도 및 충성도와는 별 관계없는 방향이란 것이다. 앞선 이마세만 해도 그렇다. 사실 ‘Night Dancer’가 멜론차트에 진입한 이후로도 이마세는 5곡의 싱글을 더 발표했지만 적어도 한국시장에서의 화제성 및 존재감은 한없이 흐릿했고, 후속곡이 존재한단 점을 아는 이들조차 많지 않다. 이런 게 스낵 컬쳐 속성에 종속된 바이럴 히트 트렌드 본질이다.

 

예외는 있다. 언급했듯 2일간 내한 콘서트를 매진시킨 요아소비, 그리고 내년 2월 내한 콘서트를 발표한 또 다른 일본 아티스트 아도 경우다. 콘서트까지 성사시킬 정도면 충성도 높은 팬덤 실체를 확신한단 뜻이기에 소모적 트렌드 교체 흐름에선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특이점이 발견된다. 애초 아도 내한 공연은 요아소비 내한 주관사인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브랜드 리벳(LIVET) 측에서 성사시켰다. 여기서 리벳 측이 요아소비에 이어 두 번째 내한 공연할 아티스트로 아도를 선택한 이유가 있단 것이다.

 

둘 다 서브컬쳐 기반, 정확히는 일본 애니메이션 기반으로 국내서 인기를 얻어낸 아티스트들이기 때문이다. 요아소비는 ‘최애의 아이’ 주제곡을, 아도 경우엔 ‘원피스 필름 레드’ 주제곡을 부르며 국내 일본 애니메이션 팬층을 팬덤 기반으로 끌어들였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분명 한국 내 확고한 팬층이 존재하기에 그를 기반으로 주제곡 아티스트 팬덤이 성립될 수도 있지만, 그 외엔 여전히 팬덤 충성도가 떨어지는 바이럴 히트 아티스트들로 한국 내 J팝 시장이 형성돼있단 것. 결국 온전히 한국 내 코어 팬덤을 형성한 건 어디까지나 일본 애니메이션이지 J팝 자체라고 보긴 여전히 무리가 있단 얘기다.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2023년 한 해를 달군 한국 대중문화계 화제 중 하나, ‘J팝의 본격 유입’ 또는 ‘J팝의 위협’이라고까지 불린 현상도 그렇게까지 확대해석할 문제는 또 아닌 셈이다. 그중 인지도를 쌓은 아티스트들 경우라 하더라도, 굳이 말하자면, 현재까진 국내 음원차트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디 발라드 가수들과 비슷한 역할 및 위상이라 볼 만하다. 어디든 그 정도가 바이럴 히트 아티스트들 한계다.

 

사실 ‘J팝의 본격 유입’은 한국서 오히려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일단 시티팝으로 대변되는 AOR부터 전반적인 팝록, 팝포크 등 강세 분야, 그리고 일렉트로팝, 상당히 레트로한 소위 ‘8비트 오락실 테크노’ 등에 이르기까지 K팝이 적극적으로 제공해주지 않는 장르시장들을 잘 보완해줘 음악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이런 J팝이 국내 대중음악시장에 있어 일종의 ‘장르 척후병’ 역할을 해주고 있단 점이다. 유입돼 일정수준 이상 인기를 얻는 것만으로도 해당 장르의 국내 시장 가능성을 가늠케 하는 지표로서 기능한다. 그렇게 국내 산업 내에서 해당시장에 도전해볼 의욕도 마련해준다.

 

 

당장 지난 10월 데뷔한 걸밴드 QWER 예가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 같다”는 반응이 많은 데뷔 타이틀곡 ‘Discord’는 50여일 걸쳐 음원차트서 역주행해 이제 멜론 톱100 차트 48위 일간차트에서도 60위까지 오른 상태다. 유튜브뮤직 주간차트에선 아예 10위권 내로 들어와 8위까지 올랐다. 기반이 되는 애니메이션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 풍 노래란 점에서 시장 가능성에 의구심이 따랐지만 기우로 드러났다. 다른 활동들로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멤버들이 존재한다면 그 화제성만으로도 론칭에 성공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단 것이다.

 

2016년 ‘너의 이름은’을 통해 국내서도 인기를 모은 래드윔프스 ‘前前前世’ 이래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팝록 삽입곡들이 국내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면 QWER처럼 ‘자국 내에서’ 해당 장르시장에 도전해보려는 시도도 등장하지 못했을 터다. 그럼 잠재력 있는 시장 하나를 모르고 지나쳐버려 시장 전반의 활성화 기회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자국 산업이 일정수준 이상 역량을 갖춘 대중문화시장이라면 해외상품 유입과 득세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다. 시장을 환기시키고 활성화시키며, ‘고인 물’ 체질이 될 수밖에 없는 자국 산업의 매너리즘을 타파해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기도 한다. 연초의 화젯거리 ‘J팝의 본격 유입’이 연말에 이르니 QWER 역주행으로 돌아오는 현 상황만으로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밖’으로부터 위협받지 않는 시장만큼 위험한 것도 또 없다. 대중문화시장뿐 아니라 상품시장의 모든 부문이 그럴 것이다.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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