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수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뇌전증 분야 권위자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뇌전증지원센터장)은 뇌전증 환자들의 삶의 질은 물론 생명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이전까지 전무하던 뇌전증 관리를 위한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위한 산정특례 지정에 이르기까지 환자 챙기기에 분투하는 중이다.
뇌전증 환자들의 수술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하고 있다보니 퇴근은 이르면 밤 10시. 개인적인 시간은 거의 없다. 삶 자체를 뇌전증 환자를 위해 쓰고 있다.
그는 뇌전증 수술을 위한 ‘필수 수술도구’인 수술로봇의 지역별 도입과 국가에서 뇌전증 거점 뇌전증전문병원을 지정하는 것을 목표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30일, 뇌전증지원센터에서 홍승봉 센터장을 만났다.
-뇌전증 수술이 필요한 이유는.
“전체 뇌전증 환자 중 30%는 2가지 이상의 약물을 복용해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이다. 이때 문제는 돌연사(SUDEP, sudden unexpected death in epilepsy)다. 뇌전증 수술은 돌연사율을 3분의 1로 줄이고, 10년 이상 장기간 생존율을 50%에서 90%로 높일 수 있다.”
-정부에 지속적으로 뇌전증 수술 지원을 피력하고 있다. 어떤 지원이 가장 시급한 상황인지.
“수술 장비 지원, 전문 인력 지원 그리고 거점 뇌전증전문병원 지정 및 관리다.”
-수술로봇 지원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있다. 로봇이 없으면 안되나.
“아무래도 로봇 수술 하면 환자의 선택, 업그레이드 요소 정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실제 갑상선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에 쓰이는 수술로봇의 경우 환자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뇌전증은 그렇지 않다. 뇌전증 수술은 로봇이 없으면 아예 수술이 안 되는 유일한 질환이다. 로봇이 메스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수술은 뇌전증이 발생하는 뇌부위를 찾아 절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 뇌에 전극을 삽입해야 하는데 타깃까지 수천개의 혈관을 피해야 한다. 전극 하나를 넣는 데 수기로 할 경우 20~30분이 걸린다. 20개 넣으면 600분이다. 그 사이에 뇌가 아래로 움직이는데 뇌출혈의 위험이 커진다. 반면 로봇으로 전극을 삽입하면 개당 5분이면 충분하다.
현재 뇌전증 수술 로봇이 도입된 곳은 삼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단 두 군데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뇌전증 수술이 14개월이나 밀려있다. 현재까지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의 뇌전증 수술 건수는 0건이다. 선진국에서 이같은 사례는 없다. 다행히 다음 달 부산 해운대 백병원에 수술 로봇이 도입될 예정이다. 정부에 뇌전증 예산 증액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다. 이를 토대로 호남지역에 1대, 충청도에 1대, 수도권에 2대를 더 들여 전국에 7개소에서 수술이 가능하게 되길 바란다. 뇌전증 환자 분포도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1대1을 이룬다.”
-거점 뇌전증전문병원의 지정이 필요한 이유는.
“로봇만 들어선다고 해서 환자가 수술을 결심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관리하지 않으면 환자들은 어느 병원이 뇌전증 수술을 하는지 또는 잘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일본의 경우 전국에 28개 거점 뇌전증지원병원을 지정하고 널리 알려서 뇌전증 환자들이 바로 찾아가게 하고 있다. 미국도 뇌전증센터 홈페이지에 전국 260개 뇌전증수술센터의 위치와 연락처를 홍보한다.
한국은 그럴 수가 없다. 제가 언론에 뇌전증 수술 병원 7개의 이름을 밝혔지만 이 가운데 5개 병원들은 수술 로봇이 없어서 수술을 거의 못하고 있다. 필수 장비(수술 로봇)도 없는 병원을 수술 병원으로 알려야하는 제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향후 목표는.
“정부의 뇌전증지원센터 사업 지원 덕분에 1년에 약 5000명 이상의 환자들에게 의료, 사회복지, 심리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고 있어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이 점차 향상되고 있다. 상담 건수도 매년 1000건 이상 증가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제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의 치료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은 돌연사율이 30배로 생명이 매우 위태롭다. 한국의 뇌전증 수술 건수는 미국의 40분의 1, 일본의 15분의 1 수준으로 매우 저조하다. 정부는 빠른 시일 내에 거점 뇌전증전문병원을 지정하고 수술 장비와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의 뇌전증 환자와 가족들에게 전문간호사, 사회복지사, 심리사의 전문상담을 제공하는 포괄적인 뇌전증 관리를 할 수 있다.
일본처럼 약물, 수술 치료 및 전문 상담을 제공하는 거점 뇌전증전문병원들의 이름을 널리 알려서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이 적기에 최선의 치료와 포괄적 관리를 받을 수 있게 조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젊은 뇌전증 환자들이 매일 죽고 있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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