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그알’보다 뜨겁게, 실화보다 담담하게…‘소년들’

노장 감독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관객의 피가 펄펄 끓는다. 

 

영화 ‘소년들’(정지영 감독)은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사건 실화극. 일명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1999년 2월 6일 새벽,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잠자던 할머니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하고 현금과 패물 등 254만원 어치를 털어 달아났다.

 

사건 발생 9일 후 3명이 체포됐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10대 소년들이었다. 지적장애인도 있었다. 절도 전과가 있었던 이들은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고, 재판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세 소년은 각각 징역 3년에서 6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가 접수된다. 다만 검찰은 자백 번복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부실·조작 수사 의혹이 불거졌지만, 소년들은 결국 만기 복역 후 출소했다.

 

출소한 이들은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고, 이 과정에서 경남에 사는 한 남성이 ‘자신을 포함한 3명이 진범’이라며 자백해 2016년 7월 재심이 결정됐다. 그리고 2016년 10월 법원은 세 소년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영화는 해당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2000년과 재심 과정을 그린 2016년을 오가며 사건을 들여다본다. 

 

극 중 우리슈퍼 강도치사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수사반장 황준철(설경구)은 실존 인물이 아닌 영화적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된 인물. 정 감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사건의 전말을 관객들이 몰입해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황준철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특히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철중을 떠올렸다는 정지영 감독은 설경구에게 나이 든 강철중 느낌의 황준철 역을 가장 먼저 제안했다고.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의롭고 열정적인 황준철을 통해 관객들은 한층 성장한 강철중을 떠올리며 소년들을 보다 흥미진진하게 관람할 수 있다.

 

빨치산을 다룬 ‘남부군’,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부러진 화살’, 금융 범죄 실화극 ‘블랙머니’ 등 사회 고발 영화를 꾸준히 선보여온 정 감독이다.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충무로 명장답게 실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픽션 요소를 가미했다.

 

황준철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 역시 대부분 가상의 캐릭터다. 유일하게 황준철을 믿고 따르는 후배 형사 박정규(허성태), 불의에 맞서는 남편이 못마땅하면서도 끝까지 지지해 주는 아내 김경미(염혜란)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실화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우리슈퍼 사건으로 사망한 할머니의 딸 윤미숙(진경) 역할의 경우, 실제로는 피해자의 조카며느리였다고 알려졌다. 정 감독은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이 사건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도록 일부 캐릭터의 설정을 수정했다”고 전했다.

 

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진범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소년들(김동영·유수빈·김경호)을 범죄자로 내몰았던 검찰과 경찰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서사의 클라이막스에서는 기득권에 대한 분노와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 동시에 든다. 정 감독의 사회 비판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한편, 소년들은 1일 개봉후 줄곧 실관람객 평점인 CGV 골든 에그지수 95%를 기록, 동시기 상업영화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며 식지 않는 관람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사진=CJ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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