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Scene] 걸어온 길은 달라도…한 마음으로 과녁을 뚫었다

사진=뉴시스

한 마음으로 화살을 날렸다.

 

언제, 어떻게 ‘활’을 잡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양궁을 향한 열정 하나면 과녁을 뚫을 수 있었다. 주재훈(31·한국수력원자력), 양재원(26·상무), 김종호(29·현대제철)로 구성된 한국 남자 컴파운드(compound) 양궁 대표팀이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은메달을 합작했다. 5일 중국 항저우의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인도와의 결승에서 230-235로 패했다. 2회 연속 단체전 금메달엔 실패했지만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값졌다. 

 

사진=뉴시스

 

◆ 걸어온 길은 달라도!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다. 김종호와 양재원은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김종호는 한국 컴파운드 대표하는 간판이다. 한국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선수권 개인전 메달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 스헤르토헨보스 대회 개인전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양재원은 촉망받는 기대주다. 2019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8년 울산남구청에 입단한 지 1년 만이었다.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3 현대 양궁 월드컵 2차 대회에서도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주재훈은 동호인 출신이다. 2016년 취미로 양궁클럽에 들어간 것이 시작이다. 활쏘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주경야독이 따로 없었다. 낮엔 한국수력원자력 청원경찰로 일했다. 퇴근 후엔 홀로 2~3시간 훈련에 매진했다. 마땅히 훈련할 곳도. 지도를 받을 전문 코치도 없었지만 외국 선수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한 계단씩 올랐다. 5수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회사에 1년 무급 휴직계를 내고 출전한 생애 첫 AG서 혼성전, 남자 단체전 은메달을 따내며 파란을 일으켰다.

 

사진=뉴시스

 

◆ 열정만 있다면!

 

과녁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세 선수의 공통점이 있다면 스스로 기회를 쟁취했다는 점이다. AG 양궁 엔트리는 최대 4명이다. 개인전에는 2명, 단체전에는 3명 나간다. 혼성전은 남녀 선수 한 명씩만 출격할 수 있다. 단체전의 경우 해당 국가가 선수를 결정할 수 있지만, 한국은 철저히 성적순으로 정한다. 랭킹 라운드 성적을 토대로 꾸린다. 주재훈이 항저우 AG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남자 랭킹 라운드서 당당히 1위에 오르며 출전권을 따냈다.

 

종목 특성도 한 몫을 했다. 컴파운드는 리커브(recurve)와 달리 도르래와 확대경이 달린 활을 활용한다. 적은 힘으로도 시위를 당길 수 있어 접근성이 높다. 대신 표적지가 훨씬 작다. 지름이 70㎝에 불과하다(리커브 122㎝). 한국 리버브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반면, 컴파운드는 도전자에 가깝다.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한국 컴파운드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여자 단체전에서도 동메달을 추가하며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사진=뉴시스

 

성적,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양궁의 대중화를 꾀한다. 양궁은 그간 직접 하는 스포츠라기보다는, 즐기는 종목에 가까웠다. 양궁협회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매년 추계 생활체육 양궁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양궁아카데미도 많아졌다. 접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해졌다. 그만큼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주재훈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 몰랐다. 재능이 있어도 모른 채 살아가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웃었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